음식에서 삶을 짓다
윤현희 지음 / 행복우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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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살 수 없잖아'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애초에 전통음식의 길로 들어선 것 부터가 바람처럼 시작이 되었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고 집안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육포'의 세계로 발을 디딜 생각을 했을까.

운명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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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전생의 어디쯤 수랏간 장금이었을 수도 있고 솜씨좋은 종가집 며느리였을지도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저자 스스로 말한 것 처럼 몰라서 쉬웠을 것이다.

나같이 엄벙덤벙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우리 전통음식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어려운 음식이다.

실제 책에도 그 과정이 소상히 나와있다. 고기를 손질하고 양념을 묻혀 말리고 펴고 포장하고...

힘만 있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솜씨만 좋다고 완성할 수 있는 일도 아니건만 어찌 그리 용감하게

일을 벌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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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낼 모레인 오늘 동태 서너마리 분의 전을 부치고 나물 두어가지, 잡채에 토란탕 한 그릇

끓일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450근의 육포라니...

문학을 전공했지만 손끝이 야물었던 것 같다. 더구나 사업수완도 없는 편이 아닌 것 같다.

오랜 사회생활이 능력을 끌어올렸겠지만 손끝 야문 것과 사업재능은 좀 다른 문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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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실패라는 막막함이 선뜻 다른 길로 그녀를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맘 잘 맞았던 친구동생도 힘이 되었을테고. 그냥 자그마한 연구소정도로 운영하고

제자를 키워내는 심정으로 했다면 마음편하게 살아남지 않았을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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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스스로 일군 전통음식의 창조는 정말 놀라웠다. 단지 손끝이 야물다는 표현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재능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사회생활에도 사람공부는 좀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듯이 그녀 곁에서 그녀를 도왔던 사람들의 배신들은 참 가슴 아프다.

나도 오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게 잘해준다고 다 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돈 배신보다 사람 배신이 더 뼈 아프다.

경영은 더 재능있는 사람에게 맡겼더라면 하는 것과 진작 사람을 잘 골라내어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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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함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노력하는 장면은 정말 멋있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의 집을 담보 잡혀 백화점에 입점하는 장면에 이르러 초조감이 밀려왔다.

분명 후회할텐데...폭주하는 기차를 보는 심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재능은 재능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소진하고 결국 접었다.

20여 년에 걸친 그녀의 여정은 읽는 나도 숨이 가빴다. 택배시간에 맞춰 오리고 포장하고 동동

거리는 장면에 아 나는 해내지 못할 일이었겠구나 싶었다.

 

많은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어서 더 고단한 삶을 살았던게 아닐까.

잘하는 일어로만, 번역으로만, 문학으로만 살았더라면 화려하지는 않았더라도 잔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 많은 재능으로 삶이 고단해진 것 같다.

그래도 불꽃처럼 타오르던 시간에 창조해낸 작품들을 보니 박수가 절로 나온다.

너무 아름다워서...그저 한 때 바람처럼 일어난 불꽃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소소하게 다시

이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 아름다운 작품들이 묻히는 일은 '방관'처럼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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