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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9월
평점 :
지금부터 나는 1885년 프랑스에서 런던에 도착한 세 명의 남자에 여정에 동행한다.
한 남자는 왕자였고 한 남자는 백작, 그리고 세 번째 남자는 이탈리아계 성을 가진 평민이었다.
대체로 왕자와 백작이라면 생애를 짐작할만큼 알려진 인물들이지만 닥터 사뮈엘 장 포치라는
남자의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남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임에도 이 책의 주인공인
포치는 전혀 몰랐던 인물이라니..이 남자의 생애가 줄리언 반스에겐 중요한 사건이었을까.
오히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바다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색깔은 너무 다르다.
내가 어려서 좋아했던 소설가 모파상이 영국에 도착했다가 도망친 이유가 추위와 여자였다니
프랑스와 영국의 간격을 이만큼 극렬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그 극심한 간격을 뚫고 세 남자는 왜 런던으로 갔을까. 그게 또 궁금해진다.
소개글에도 나와 있지만 익히 알려지지 않았던 포치라는 남자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정열적이고
자유로웠던 영혼을 가진 인물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고 전 생애 의사로서의 업적도 훌륭했지만
그의 사랑과 우정을 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오히려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의 초상화에 이어 사진에 담긴 모습은 프랑스이라기 보다 이탈리아인이 아닌가 싶게 건장하고
-난 프랑스남자들은 여성적인 느낌을 가진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휘파람이 나올만큼 잘 생겼다.
당연히 감성적인 프랑스여자들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여자들이 좋아할 만 했다.
1900 년도 전후의 패션이라고 해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유행쟁이였던 것 같다.
공부잘하는 의대생이었다가 유능한 의사가 되어 현모양처를 만나 아이를 낳고 잘 살다간 남자라면
줄리언 반스가 절대 그런 남자의 이야기를 썼을리가 없다. 포치니까 무지개처럼 다양한 삶을 살았기에 주목받았을 것이다. 실제 그와 교제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면 절대 평범한 인물이 없다.
당대의 예술가들이거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포치의 삶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다소 지루할 직업일 수도 있는 의사였지만 부자였고
여행을 자주했으며 상원의원에 심지어 자유운동가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인물임에도 알려지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다.
후세에 명망있고 능력있는 작가에 의해 발굴되어 세상에 드러났으니 지하에서도 뿌듯할 듯하다.
표지의 강렬한 빨간색처럼 그렇게 불꽃처럼 살다간 남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오래전 프랑스의
어느 시간을 살다온 느낌이다. 더구나 포치의 유명한 주변인들을 만나고 보니 더 뿌듯하다.
오스카 와일드며 조르주 상드며 모파상등등....
포치의 열정도 대단했겠지만 이 남자의 삶을 추적한 줄리언 반스의 열정도 그에 못지 않다.
방대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없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 책이다.
포치 못지않은 열정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