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책을 정리할 때 오래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먼 거의 40년이 넘은
사전이 그득한 박스를 발견했다. 당시에 난 이 사전을 사기 위해 청계천 헌책방을 무수히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두툼한 영어사전과 국어사전, 옥편을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책상위에 모셔두고 한동안 머리속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애물단지가 되어 보관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요즘엔 사전이 필요하지 않다. 휴대폰 검색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어느 날, 사전을 훔쳐 서점 주인에게 맡기고 차비를 빌려간 도둑도 있었다.
그 시절 책은 돈과 같은 존재였다. 사전 뿐만이 아니라 전공서적도 수시로 맡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가난했었는데 부끄럽지는 않았다. 지금은 넉넉한 것 같은데 허허롭다.
어떤 것들은 시간에 따라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사람도 그렇다. 나이 들어 가치가 올라가면 좋으련만 기억력 감퇴처럼 자꾸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직 젊으니까. 아파도 견디다 보면 좋은 시간이 온다는 걸 경험으로 난 안다.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해도 어디든 한 번 떠나보라.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살아있는 동안 닿을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으니 누가 불러주지 않는다 해도 못갈 이유가 무엇인가.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긴 장마가 끝나고 태풍이 오더니 갑자기 바람이 차다.
이렇듯 인간은 세속에 흔들리는데도 시간은 무상하다. 그게 삶이다. 외롭다는 것은 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