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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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난 후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영원한 사랑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파리에서 시작된 서른 여섯살의 이자벨과 스물 한 살 청년 샘의 사랑은 비극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고 그런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픈 꿈을 가진다. 하지만 그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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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입학을 앞둔 샘은 파리에서 몇 달을 지내기로 하고 별 한개짜리 호텔에 묵으며

파리 곳곳을 쏘다닌다. 마침 옆방에 있던 남자의 초대로 서점에 가게 되고 번역가인 이자벨을

처음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려 이자벨의 작업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한다. 그렇게 '오후의 이자벨'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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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여행에서 샘은 외로웠고 파리란 도시는 외로움을 더욱 부추기는 도시였다.

더구나 스물 한 살이란 나이는 한창 피끓는 열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나이이기도 했다.

반드시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자벨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재능이 있었고

사랑스러웠지만 결정적으로 유부녀란 장벽이 있었다.

프랑스 금융계의 거물이면서 귀족출신의 남편을 둔 이자벨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게 우선이었다.

샘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후 몇 시간뿐. 이자벨은 샘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언제나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가질 수 없는 사랑이어서 더 애틋했을지도 모를 두 사람의 사랑은 샘이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고 로펌에 인턴생활을 하는 동안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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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섯살이라는 나이차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만의 성을 온전히 지키려는 이자벨과 자신의 성으로 끌어내고 싶어하는 샘과의 줄다리기는 그 후 30년 동안 계속된다.            

그 사이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연인들을 두기도 하고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향한 사랑은 거리의 문제일 뿐 언제나 애틋했고 갈망이었다.            

샘이 변호사가 되고 같은 일을 하는 레베카를 만나 연애를 하자 이자벨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보스턴에 세미나 참석을 하게된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 이자벨은 자신이 묵는 호텔로 샘을 유인하고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의 딸 에밀리와 함께 뉴욕에 오면 자신과 살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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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레베카를 사랑하지만 이자벨을 여전히 원하는 자신을 다시 되돌아본다.

과연 남의 아이를 키우면서 이자벨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부족함없이 살고 있는 이자벨을

만족시켜 줄 수있을까. 결국 샘은 이자벨에게 레베카에게 청혼을 했다는 전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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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와 결혼한 샘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완벽하려고 하는 레베카와의 결혼생활이 조금

불안했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뇌수막염에 걸려 청각을 잃자

레베카는 무너져 내렸다. 알콜중독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여전히 딴 여자를 마음에 두고

사는 샘을 저주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의 길로 접어드는데..

사랑이 뭘까. 결혼은?

읽는내내 자유분망한 프랑스 여자의 사랑법과 자신만의 성으로 상대를 가두고 싶어하는 남자의

심리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때는 1970년대 중반이었고 다소 보수적일지도 모르는 시대임에도

충분히 파격적인 사랑이었다. 사랑과 결혼은 별개이고 섹스와 사랑 역시 별개라는 의식은 참 낯설었다.

아마 지금 젊은 세대라면 얼마든지 당연한 사고이겠지만 고루한 내게 두 사람의 사랑은 조금 무거웠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기적이면서도 자신의 열정을 이어가는 이자벨에게 조금 부러운 마음까지 든다.

양쪽 손에 든 떡을 기어이 다 차지하겠다는 이기심은 어쩌면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벽일지도 모른다.

 

오랜 그리움과 뜨거운 섹스와 막을 수 없는 열정이 가득한 삶도 언젠가 끝난다.

이자벨과 이별하고 돌아서는 비행기안에서 샘은 긴 잠에 빠진다. 마치 오랜 여정을 끝낸 사람처럼.

그리고 새로 시작한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샘은 사랑을 다시 시작할 것이고 만약 그 사랑이 떠난다면 또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인생이란 사랑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허무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섬세한 사랑의 심리와 표현이 놀랍도록 리얼해서 다시금 더글라스 케네디답다

생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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