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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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있는 곳에는 떡볶이가게가 없다. 고로 떡볶이를 먹으려면 편의식으로

사다 조리를 해 먹어야 한다. 요즘 편의식떡볶이가 잘 나와 있는 편이라 어릴 적 먹던

그 맛을 어느 정도 낼 수는 있지만 그래도 떡볶이는 커다란 철판위에서 시뻘겋게 끓어서

어묵이랑 튀김이 뒤섞여있는 그런 맛이어야 정당하다. 그러니 나는 많이 불행하다.

 

                    

청춘을 모두 부러워한다는데 백수가 넘치고 되는 일도 없다는 서른 즈음의 누군가는

그래도 떡볶이는 먹고싶다고 외치다 대박이 났다. '떡볶이'는 그런 존재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고 살아가는 양식이 되고 힘든 시간을 견디다가 먹고 다시 살 힘이

되기도 하는 그런 존재.

이 책은 각자의 떡볶이가 어떤 존재였는지 10편이 실려있다.

 

                        

재혼을 한 엄마와는 멀리 떨어져 살면서 이제는 어엿한 은행원이 된 한대리는 은행앞 떡볶이 가게의

사장 철규가 은근히 신경쓰인다. 엄마가게를 물려받아 대박이 나서 돈이 엄청 많다는데 그 남자의

치근거림이 영 맘에 걸렸던거다. 줄을 서서 먹는다는 남자의 떡볶이를 줄을 서지 않아도 먹는 혜택에는 남자의 치근거림을 받아줘야한다는 암묵의 동의가 존재했던가보다.

결국 한대리는 남자의 치근거림을 받아주지 않아서 다른 남자를 만나보겠다고 넌즈시 거절의 의사를 밝혀서 그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한대리를 죽인 죗값이 떡볶이 한 그릇값도 안되는 것 같아 열받았다. 한대리는 죽었지만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교수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하다고 들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강의를 뛰어다니고 교수들

비위를 맞춰가면서 정말 오랜시간 버텨야 한다고 들었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에서는 매운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이야기다. 선배들 취향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간 매운떡볶이집에서 N분의 1로

음식값을 내면서도 겨우 덜매운 김말이 반쪽이 제몫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할말도 못하고 덜매운 떡볶이와 김말이 5개를 시켜주던 옛연인을 회상하는 남자의

인생이 안스럽다. 그래도 할말은 좀 하고 살자.

 

                        

그러고보니 어쩌다 도시에 나가면 떡볶이가게가 넘친다. 오래전 학교앞 분식집에서 팔던 수준이 아니다. 국보급이란 제목이 붙은 가게도 있고 마약처럼 떨치기 어렵다는 제목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떡볶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제각각 그에 얽힌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떡볶이가 있다. 회수권도 받아주던 문방구집의 떡볶이.

튀김가루를 넣어 독특한 맛을 내던 그 집이 그리워 언젠가 찾아갔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마치 시간도둑에게 얻어 맞은 것처럼 서글펐다.

김동식의 '컵떡볶이의 비밀'편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항상 떡을 적게 담아주는 아줌마처럼

세월이 얄미웠다. 어디로 옮긴 것일까. 아니면 영원히 그 맛을 볼 수없게 된 것일까.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가난했던 시절에 맛보았던 떡볶이들은 죄 맛이 있었다.

그런데 돈이 없었고.

지금은 떡볶이가 넘쳐나고 돈도 있는데 예전에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왜일까.

 

살다보면 이런 일들은 너무 많다. 화려하지 않게 별 들어간 것도 없이 벌겠던 그 떡볶이가

그립다는 것은 이제 나도 늙었다는 뜻일게다. 아마 내가 죽고 나서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떡볶이는 계속 존재하겠지. 그러니 나는 떡볶이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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