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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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호기롭게 외쳤었다. 나는 서른까지만 살겠다고. 무슨 마음으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은 그 말을 들먹이면서 놀리곤 한다.

그 때는 서른도 내가 닿을 수 없는 시간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서른의 딱 두배의 나이에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늙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청춘은 아니겠지만 늙는다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무심한척 한다.

 

                    

늙는다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그저 늙지 않고 나이만 먹는다면 좋을텐데 신은

참 고약하게도 죽음에 이르기전 '늙음'을 얹음으로써 겸손을 배우게 하는 것 같다.

다행이랄까 과년한 자식들은 아직 결혼전이라 '할머니'라 불러줄 손자가 아직 없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어느새 '할머니'라고 불리고 있는데 마치 외계인나라처럼 낯설다.

 

                       

'늙은 여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라는 한 줄의 문장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자들 중에는 늙어갈수록 멋진 사람도 간혹있다. 대체로 여자들은 멋지거나 아름답게 늙기가

어려운 일인지 그냥 안쓰럽게 늙어간다. 물론 나도 늙은 여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단연코.

하지만 세월의 칼날은 어찌나 꼼꼼한지 나 하나쯤 모른척 넘어가줘도 좋으련만 기여코 나를

늙은 여자로 만들고 말았다.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할머니 이야기'에는 손녀의 입장에서 혹은 딸의 입장에서 그리고

할머니 본인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 이어진다.

나는 피를 나눈 할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할머니'란 언어가 참 낯설다.

언젠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를 존재가 생긴다면 그것 또한 엄청 낯선 일이 될 것이다.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구시대의 여성이지만 대학까지 진학했던

할머니의 지성과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하는 할머니의 오랜 꿈이 등장한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 그저 엄마의 대역정도로 기억되었던

할머니에게 설레는 로맨스가 숨어있었다니. 그야말로 '내 나이가 어때서'가 절로 나온다.

 

삼대가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는 장면도 고와보이고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이후 들어간

할머니집에서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는 한 편의 스릴러 같기도 하다.

도대체 할머니 곁에서 일해주던 아주머니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아리아드네 정원'이었다.

할머니이름이 지윤이나 민아인 것은 정말 의외였다. 대체로 간난이나 고만이 정도가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이름의 여인이 할머니가 된 세상이니 아마 조금 더 후의 미래를 그린 것 같다.

비혼이 늘고 저출산이 계속되자 이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유닛이라는

기관에서 생활한다. 아마 대다수의 인구가 노령시대가 된 것 같다.

이주해온 사람들이 낳은 어린 세대들은 노령인구를 먹여살리는 일에 반기를 든다.

과연 이게 소설에서만 가능한 얘기일까. 멀지 않은 장래의 모습일 것만 같아서 두려워진다.

'할머니'라 불리는 일보다 '짐'으로 살아갈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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