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겨울나무
김애라 지음 / 행복우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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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소풍 다니러온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면 난 참 잘 살았다 하고 떠날 수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과 후회과 있을 것이다. 잘 살아오기 참 힘든게 인생이다.

생로병사와 오욕칠정의 구비속에서 그나마 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부럽기도 하다.

1938년 생이면 우리나이로 83세다. 100세 시대라고 해도 이제 서서히 삶을 정리할 시간이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시간을 훌쩍 업어오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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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는 가본 적은 없지만 저자의 말처럼 깊은 산골이면서 산수가 수려한 곳인 것 같다.

춥기는 매우 춥겠지만 일제 강점기시대에도 할아버지의 재력으로 큰 고생없이 자랐던 저자의

어린시절은 부럽기조차 하다.

내 어머니는 고향이 어디인지 모른다. 기차역에서 울고 있던 어린 엄마를 거두어준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 기차의 기점이 신의주였으니 그쯤 어디가 고향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저자와는 거의 동년배이니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다른 환경으로 인해 인생의 길은

전혀 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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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우리나라는 여전히 처첩제도가 남아있었고 저자의 아버지 역시 부모가 정해준 아내와

이혼하고 신교육을 받았던 여성과 재혼을 했고 자식까지 있었던 사실은 모른 채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는 이후 고된 시집살이를 했던 것 같다. 내가 늘 느끼는 감사함중에는 조선시대나 중동지역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사랑'이라는 끈으로 어려운 결혼생활을 이겨냈던 것 같다.            

강계에서의 어린시절은 참 행복했었나보다. 미국 시민권자이니 지금보다 국제정세가 좋아지면

방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시절 모습은 찾기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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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살았던 시간들은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 소용돌이에 그녀가 겪었던 고난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부유했던 집안인데다 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극복하기 조금 쉬웠겠지만 생생한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우울증을 앓고 건강을 잃을만큼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인 것 같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에 그녀와 가족을 구해준 절체절명의 순간들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렇게 어렵게 전쟁을 이기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만큼 수재였다.

진보적인 아버지의 교육으로 원없이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결혼'이라는 족쇄를

채웠던 것 같다.

만난 적도 없는 남자와 사진결혼이라니. 참 어이없는 결혼이었다.

더구나 공비출신의 남자. 전쟁을 겪긴 했지만 나름 사랑받고 자란 여자에게 사랑없는 결혼은 족쇄와 같았다.

그럼에도 기대가 컸던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멈추지 못했던 선택.

후일 그녀는 가장 잘했던 일이 이혼이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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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다. 강계라는 곳이 특히 미인이 많다는 말도 있지만

생활력도 강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뜻이다. 어렵게 이민을 결심한 저자가 미국에서

겪었던 생활고와 외로움은 그녀도 몰랐던 그 의지의 DNA로 인해 극복이 가능했을 것이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그렇다. 모두 그녀의 의지가 부추긴 결과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했던 그 시절을

이기고 이제 평화를 찾은 한 여자의 운명에 박수를 보낸다.

'그만하면 잘 살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흑석동 달마사 밑에 살았고 미국 LA 래돈도 비치에서 향수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나로서는

그녀가 살았던 궤적에 잠시 같이한 느낌이다.

마치 벌거벗은 나무처럼 부끄럽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가 살았던 시간들이 바로 역사다. 그런 시간들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지 않으면 역사는

소멸되는 것이다. 그녀의 삶을 보면서 누군가는 힘을 낼 것이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에서

다시 제대로 된 길을 찾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라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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