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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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시간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택배기사가 되어 배달일을 하게 되는 주인공에서

소설가의 시간들이 겹쳐보였다. 그 시간을 겪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문장들이 있었다.

나도 참 많이 택배기사를 만난다. 그럴 때 마다 내 남편이 혹은 내 아이들이 저 직업을

가지지 않은게 참 다행이다 싶다. 왜냐하면 너무 힘들어 보이니까.

 

          

딱 내 아이쯤 되는 나이의 택배기사가 어마어마한 물량의 물건을 싣고 나르는 모습을 보다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다. 어쩔 땐 따뜻한 커피로 어떨 땐 차가운 커피로 마음을 보냈다.

그리곤 차마 묻지 못했다. 왜 많은 직업이 있었을텐데 이리 고된 일을 선택했냐고.

맡은 구역이 행운동이어서 그냥 행운동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그의 수중에는 십 만원도 되지 않은 돈이 있었고 직업을 구하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어정쩡한 나이 마흔 다섯의 남자가 할 일이라고는 택배가 딱이었다.

그건 오래전 십 개월 정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한 박스에 오천 원 정도면 보낼 수 있는 택배비에서 기사가 갖는 돈은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적어도 천 원은 되지 않겠나 했는데 그 마저도 되지 않는다면 정말 큰 문제다.

그래서 확인해보기가 겁난다. 화가 날까봐. 암튼 행운동 택배기사인 남자가 만나는 진상

고객에 대한 고발은 실랄하다. 젠장 배달기사는 맞는데 서비스까지 해주는 직종은 아니지.

택배는 딱 현관까지만 배달하는게 맞다. 베란다니 옥상이니 하는 곳까지 배달해달라는 건

아니지. 그러고 보니 고작 만 원 정도면 주문할 수 있는 생수 6개의 무게가 확 들어온다.

그걸 이층의 계단을 올라와야 하는 곳으로 주문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어쩌랴.

 

                        

그냥 진상고객들이에게 엿이나 먹이면서 조신하게 살려고 했던 행운동 남자에게 갑작스런

칩입자들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다.

우울증을 앓는다는 여자에 마스크를 쓰고 종이를 줍는 젊은 여자에 매주 토요일 정해진

시간에만 배달을 해달라는 게이바의 여자(?)들까지.

같이 배달일을 하는 동료들은 또 어떻고. 맛사지일을 하는 애인을 구하겠다고 돈을 모으는

조선족 청년에 서울대까지 나왔는데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택배를 하고 있다는 지식인까지.

저마다 사연도 핑계도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들이 허락도 없이 마구 행운동의 삶에 칩입한다.

그러나 어쩌랴 부탁에는 약한 약점이 있으니.

 

                

저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살았던 것 같다. 하긴 그런 눈이 있어야 글이 나오지.

무심코 선택했던 책에서 시크함과 까칠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세상을 달관하는 모습까지.

그래서 간간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허접한 인간들에게 던지는 막말이 시원하고 달콤해서.

 

                           

'나이라도 날로 먹고 싶은데 그마저도 꼭 비싼 비용을 치르는 것 같다는' 문장에 박장대소했다.

맞아. 그마저도 날로 안되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기어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 저자의

운명이 이 책을 낳았을 것이다. 그래서 참 애틋하다. 그리고 참 좋은 글을 썼다.

리얼해서 팩트라서 세상에 한 방 먹이는 그 당당함이 좋아서.

 

 

물론 행운동이 누구이고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밝히지 않는다. 물론 궁금했다. 다만 저렇게

떠돌아야 할 아픔 정도만 이해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니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좀 겸손해도 좋으련만 한성격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 작가 참 마음에 든다.

다음 작품에는 또 어떤 시간을 담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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