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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의 소환이다.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것도
알고 그의 작품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는 읽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줄거리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 작가가 그가 태어난 지 200여년 만에
대한민국 어느 저자로 부터 소환되었다. 별수 없다 다녀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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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던 그는 아마 영광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동안 지구를 살다간 수많은 작가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누군가 기억했다가 불러주다니 말이다.
낮에는 주로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생활비를 벌다가 밤에는 글을 썼다는 저자의 소환에는 뜻하지 않은 계기가 있었다.
이러저러 몇 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며 지내던 저자는 어렵게 다시 얻은 직장을 불과 6개월만에 그것도 대표와 박터지게 싸우고 그냥 회사를 나왔단다. 흠 분노조절이 어려운 다혈질의 사람이군.
하지만 찬찬히 책을 읽다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상당히 이지적이고 이성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지성은 변덕스럽고 어리석음은 진실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바이니 다소 변덕스런 지성을 가진 글 잘쓰는 직장인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왜 하필 도스토옙스키였을까. 그게 궁금했다. 톨스토이도 있고 세익스피어도 있고 피츠 제랄드오 있는데 말이다. 같은 '도'씨 끼리의 친밀감 내지는 지연찬스?
그녀가 지나온 시간속에 존재했던 갑질의 대표주자들이 도스토옙스키가 그린 소설속에 많이 등장해서 인지도 모른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그녀의 관찰력은 심히 놀랍다.
그래도 그 소설속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나오는 조시마 장로의 품에 안겨 울고 싶어졌다니 그동안 정말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인물들이 그녀를 상당히 괴롭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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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너무 오래전에 읽은데다 내용이 좀 어렵게 느껴지던 어린 시절에 읽어서 가물가물한데 저자는 친절하게도 줄거리는 물론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도 아끼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해주었다. 심지어 초상화까지 곁들였다. 그러니 안 읽어봤는데 읽는 것 같았다.
'백치', '백야'는 다른 소설이다. '백치'는 사실 백치가 아니었고 '백야'는 러시아 특유의 자연현상이 벌어지는 날에 일어나는 로맨스 소설이다.
아픈 여자를 위로해주기 위해 떠난 남자를 오랫동안 잊지못했던 아니 사랑이나 연민이라기 보다는 증오가 더 끼여있는 것 같은 못잊음을 간직한 저자는 세상 못돼 처먹은-못돼 먹은 정도가 아니다-여자가 돼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백치'의 여주인공 나스따시아처럼 말이다.
사육당하다시피 성장한 나스따시아는 자신을 늙은 남자에게 떠넘기려는 양부이며 정부인 남자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용기였을 것이다.
200년 전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도 지금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고 온갖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모략하고 증오하고 사랑하고 조롱하며 살았었다. 아마 다시 200년 후에도 이런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고 비슷한 삶들을 살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더 무엇으로 인생을 설명할까.
'도'작가가 '도'작가를 불러낸 이유는 바로 모든 인생의 그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소환한 이유가 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번역가에 따라 읽기도 쉽지 않고
소설속 주인공들의 이름은 더 어려운 그 소설속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영원히 직장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다음 퇴직후에 누가 소환될 지 몹시 궁금해진다.
퇴직을 할 때마다 불려나올 거장은 또 누굴지 아마 위에서도 소환을 기다리는 작가들이 번호표 뽑고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느닷없이 카프카'라던가 말이다. 영광인줄 아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