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책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무심하게 펼쳤다가 갑자기 가슴이 요동치면서 한 줄 한 줄이 아까와지는 그런 책!

그래서 처음엔 정신없이 읽다가 문득 이렇게 다 읽어버리면 어쩌지. 이 감동이 너무 짧은 건

정말 싫어! 하면서 얼른 책장을 덮어두었다가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연인처럼 설레이면서

다시 책장을 슬며시 열게 되는 책.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20200227_111343.jpg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하면서 자신을 다독였다는

함민복 시인의 말처럼 시는 참 박하다. 아니 시 값이 참 박하다.

그런 세상에서 직업이랄 것도 없는 시인이란 이름으로 살면서도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어 이 책이 탄생되었는지도 모른다.

 

20200227_172756.jpg

 

밥이 되고 국밥이 되고 소금도 되는 시를 써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시를 이렇데 다시 들여다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밥벌이를 해야 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글귀가 참 아리다. 살기 위한 밥을 벌기 위해 자신을 혹독한 세상에 던져야 하는 수많은 가장들의 고단함이 시에도 녹아있고 삶에도 녹아있다.                        

 

20200227_223901.jpg

 

가끔 스스로에게 '꿈'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흔히 대통령이니 과학자니 하는 직업적인 꿈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쎄 그 직업군에 속하는 삶을 살면 꿈을 이룬 것이고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건 그냥 되고 싶은 직업정도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교사'가 아니고 '존경스러운 교사', '의사'가 아니고 '생명을 아끼는 의사'같은 그런 명사앞에 형용사가 붙는 그런 삶이 진정한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20200228_143630.jpg

 

가난한 십 대 였을 때에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 보니 얼른 나이를 먹어 고단한

청춘을 빨리 지우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고비든 편한 시간들이 없었다.

'대체 누가 아프니까 청춘이라 그랬습니까? 정말 말을 안해서 그렇지, 되게 아프니까 오십입디다.'라는 말에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먹먹해졌다. 정말 오십은 먼 시간이 아니었는데 닿고 보니

아픈 곳 천지였다. 젊어서는 마음이 아팠고 나이드니 몸이 아팠다.

가수 양희은도 젊은 시절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시간을 지내보니 거기에도

치워야 할 전쟁들이 그득했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면 치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그나마 조금 고요해진 시간들을 다시 되돌리기 싫은 것이다.

 

20200229_222657.jpg

 

맨 몸으로 이 행성에 와서 멋진 삶을 누렸으니 베풀고 떠나지 않겠냐는 말에는 달관한 사람의 여유가 느껴진다. 맞다. 우리는 잠시 이 행성을 다녀가는 손님이다.

지금 겪는 모든 오욕과 칠정들을 이렇게 내려다보면 간단해진다. 소풍온 별에서 잠시 머무른다

생각하면 삶이 단순해진다. 이 다음에 우리 어느 별에서 만나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20200228_135009.jpg

 

시 한편에 이렇게 가슴이 시릴 수 있을까. 난 부모와 불화하면 살아서 이런 애틋함도 없는 사람임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실제 이 시를 쓴 정채봉 작가도 엄마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린 시절에 젊은, 아니 어린 엄마가 세상을 떠났단다. 그저 아련한 채취랄까..그런 것만 겨우 생각나는데.

그럼에도 엄마가 이 세상에 단 5분만 온다면 눈을 맞추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억울했던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노라고 했다.

자식은 어른이 되어도 어린 자식일 뿐이다. 그냥 어른이 되니까 어른인 줄 알고 살아갈 뿐이다.

엄마 품에 들어가 아기처럼 위로받고 싶은 적이 어디 한 두번뿐이던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깃든 사연은 너무도 많다.

그 삶에 깃든 언어를 찾아 이렇게 가슴을 두드리는 저자의 역량이 놀랍다.

그냥 잠깐 눈을 혹은 가슴을 스쳐간 언어들이 그에게 딱 걸려서 세상에 파장을 일으킨다.

때로는 웃다가 때로는 울다가 때로는 무릎을 치다가 읽은 책이 참 오랜만이다.

요리조리 아껴먹다가 마지막에 잔뜩 들은 크림을 만난 것처럼 행복했던 책이다.

위기일발의 요즘. 아끼고 아껴 겨우 3일을 붙든 이 책이 있어 많이 많이 행복했다.

내게 볼안을 이야기 했던 아이들에게도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통스럽다는 질문을

건네온 독자에게도 전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