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 2020년 전면 개정판
정목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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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사는 일이 가끔은 좋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바다가 늘 곁에 있고 가끔 낚시로 고기를 낚아

회를 떠 술도 한 잔하고. 그리고 지금처럼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중국 한복판에서 번진 바이러스가 지금 세계를 돌고 있다. 세상은 이제 이웃 집 만큼이나 가까워지고 몇 시간이면 모든 소식이 공유되는 빠른 세상이 되었다. 아직은 세상 어디에서 밥을 굶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머물 곳 없이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분명 예전보다는 살기 좋은 세상인데 사람들 마음은 예전보다 정말 풍요로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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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죄를 지은 사람들은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꼴보기 싫으니 먼 곳에 보내 눈에 띄이지않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고립무원의 철저한 고독의 세상에서 외로움을 겪으라는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같아서는 일부러라도 사람없는 곳에 머물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이 시끄러울 수록 사람들은 고요한 곳에 이끌리는 것 같다. 산사의 풍경소리가 그립고 스님의 독경소리가 또한 그리운 것은 번잡한 것을 떨구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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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으로 사시는 분들을 대표해서 글을 쓰는 분을 꼽으라면 이해인 수녀님이 있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라고 전하시는 분은 법정스님이나 법륜스님, 그리고 혜민스님과 여기 정목스님이 아니신가 싶다. 이 소임도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인지라 책으로 엮어 내놓고도 겸손하신 마음이실 것 같다.            

달팽이는 참 느린 동물이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텃밭을 그 느린 몸으로 초토화시키는 걸 보면

엄청 부지런한 동물일 것이다. 나는 달팽이가 달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늘 보면 그저 이파리에 붙어있을 뿐인데 다음 날 보면 이파리 하나가 절단이 난다.

그러니 느려도 결코 늦지 않은 존재임을 나는 익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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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아무 죄책감도 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속도대로 소임을 다할 뿐일 것이다.

인간이 심었으되 다 인간의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듯이 아주 맛있게 먹어 치운다. 느리게 아니 아주 빠르게.

단순하게 나눔의 섭리를 실천하고 있으니 달팽이에게도 가르침이 있다. 다만 속이 좀 쓰리긴 하다.

스님의 말씀이 옳기는 하되 다소 껄끄럽기도 하다. 다만 어리석은 중생이기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살았던 시간들이 겹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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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처심 세상으로 떠날 일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말씀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든다.

그것이 순환이고 순리라니 어쩌겠는가. 그저 지금 이 순간 감사하며 살밖에.

상처는 대리석에 새기고 은혜는 다 못 새기면서 사는 한심한 사람이라 부끄러워진다.

언젠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처절하게 되갚아 주겠다는 다짐으로 버틴 시간들이 있었다.

아직 그 다짐이 다 바래지 못해서 난 멀었다.

마음은 퍼내어도 마르지 않고 어떤 것을 담아도 도둑맞지 않는 곳이라는데 난 때때로 마음을 문을 닫아걸고 열쇠까지 채우고도 불안하다. 그러니 아직 아직 멀었다.            

후딱 읽고 싶지 않은 소중한 말씀들에 잠시 마음을 걸어둔다.

그렇게라도 휘둘리는 마음을 세우고 싶어서다.

삼천배는 커녕 삼십배도 올리지 못한 중생은 그저 이렇게라도 잠시 부처의 곁에 머문다.

스님의 말씀에 잠시 숨을 고르고 남은 생을 나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야겠다.

그래도 달팽이의 그 성실함은 이길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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