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고호 지음 / 델피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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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초심: 여우도 죽을 때면 고향으로 머리를 둔다는 말이 있다.

나는 가 본적도 없는 '평양'이란 단어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7순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그 순간 훨훨 날아서

평양의 고향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평양시 경제리 18번지. 호적에 남은 아버지의 고향 주소이다.

검색해보니 그 지명은 이제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으로 바뀌었다.

주소명만 바뀐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 훨훨 날아 올라 고향으로 향했던 아버지의 혼도

고향을 찾지 못해 헤맸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변한 평양의 모습에 당황하셨겠지.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하고 알바로 전전하던 주희는 어느 날 평양에서 온

전화를 받는다. 그것도 1996년의 평양에서. 그러니까 이 소설은 타임슬립 소설이다.

함경도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이북에서 임신중인 아내를 떠나 국군이 되어 남하했다가

주저앉아 다시 결혼을 하고 주희의 아버지와 고모를 낳았다.

그리고 평생 그 뱃속에 있던 아이를 잊지 못한다. 이제 할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사그러지고

있다. 이산가족상봉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떨어졌다. 아니 이북에 가족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불가능하단다.

 

 

1996년의 평양. 설화는 몇 년전 폐병을 앓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북한군대좌인 아버지와

영재로 소문나 국방대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한 오빠 학수와 함께 살았다.

중국으로 유학갔던 오빠가 자본주의 물이 들어 보위부에 끌려가고 그 영향으로 아버지는

군에서 강등되었고 설화역시 예능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설화는 어느 날 오빠의 스승이 사는 회령에 전화를 건다. 그 전화가 서울에 있는 주희에게 연결된다.

그렇게 시작된 통화들. 설화와 주희는 처음에 믿지 않았지만 통화를 거듭하다가 서울과 평양,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얽혔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렇게 시작된 평양과 서울의 이야기.

설화는 오빠의 실종으로 아버지마저 남파공작원으로 남한에 가게 되고 자신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결국 북한을 탈출하기로 결심하는데...

 

 

참 극적인 이야기다. 물론 실제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나처럼 평양에 핏줄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그저 단순한 전화연결같았지만 결국 나중에 밝혀지는 섬세한 비밀들.

무엇보다 이 작가는 1996 무렵의 북한을 너무 잘 묘사해놓았다. 마치 살다온 사람처럼.

그저 하루정도의 나들이였지만 평양의 하늘아래 섰다가 온 기분이다.

혹시 아버지의 핏줄도 남한 어딘가 머물고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소망을 내가 사는 동안 이룰 수 있을까.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내 뿌리의 흔적을 찾아가는 시간이 오기는 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기적같은 스토리에 섬세한 당시 평양의 모습을 잘 입혀서 실감나는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마지막 오빠의 존재는 정말 극적인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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