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같은 것이라고 할까. 죽음에 잠시 이르렀던 사람들 얘기론 숨이 끊어지는 순간
마치 파노라마처럼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이 휘리릭 떠오른다고 하더니 남자는 죽음을 예감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보고 싶어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들에게 다가가 뭘하고 싶었을까. 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 사신-물론 그녀는 자신을
사신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은 그에게 이런 시간은 할애했다.
하지만 과연 일생 일대의 거래에 동의해줄까. 여자는 자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분명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겨울이 깊어지는 어느 날 물이 끓고 있는 난롯가에 앉아 읽고 싶은 소설이었다.
남자도 어린 여자아이도 죽음의 세계가 몹시 추울 것을 걱정했다. 그러니 우선 따뜻한 난롯가가
좋을 것 같다. 이런 슬픈 얘기를 들을 곳으로는.
인간은 어찌나 우매한지 자신이 죽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믿고 있다.
그래서 하지 못한 일들, 나누지 못한 사랑에 관해 후회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멀리 스웨덴에 사는 어느 글 잘쓰는 남자가 이 책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발 늦지 않게 시작하라고.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말이다.
잠시 그가 그동안 썼던 수많은 책들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이제 그들 옆에 이 소설의 주인공도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