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살고 있는 섬에 긴 바닷길을 건너 책 한권이 도착했다.
호스피스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수녀의 책이었다.
마침 내가 '죽음의 에티켓'을 읽고 있던 중이라 '죽음에게 물었더니 삶이라고 대답했다'는
제목의 책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죽음은 무엇인가?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성직자가 지켜본
죽음이 정말 삶의 일부분이었을까?
이 책에서도 죽어간 주인공들 대부분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란 예측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떤 사람은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섬을 뒤덮은 태풍의 구름처럼 마음이 어두워졌다. 나 역시 죽음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주 먼 훗날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떠올랐다.
서른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난 남동생과 그 오빠를 그리워하다 병을 얻어 몇 년전 오빠의 곁으로 떠난 막내 여동생. 그리고 섬에 들어와 살면서 알게된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들.
기쁜 죽음도 있을까? 문득 든 생각이다.
저자는 안락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맹렬히 죽음을 향해 전진을 시작한다.
청춘이라고 부르는 서른 무렵부터 벌써 심장의 힘이 약해지고 마흔부터는 근육이 탄력을 잃고
쉰부터는 뼈의 밀도가 낮아진다고 한다. 흔히 노화라 부르는 이런 현상들은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인 것이다.
대개의 인간들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다. 암진단이나 심각한 질병을 진단받고 대략적인 수명을 언질받을 수도 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더구나 사고로 세상을 떠날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인간들은 대부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니 인지하지 못한다. '죽음은 인간을 벌거벗깁니다'라는 말은 실제 죽음 이후 남은 신체가 겪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때때로 내가 죽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아파서? 아니면 사고로?
전혀 알 수없다. 하지만 고통없이 우아하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란 인간은 배려하지 않는다. 아주 소수의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을 아름답게 마감한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삶속에서 죽음과 마주하고 많이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몸에서 생명이 떠나고 난 후 만약 영혼이 있다면 정말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
'좀 더 느긋하게 살걸...여행을 좀 더 자주 갈 걸...사람들을 더 많이 안아 줄걸....'
실제로 죽음의 마지막 순간은 평화롭지 않은 것 같다. 질병인 경우는 더하고 사고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젠가 죽음을 연구한 책에서는 가장 고통스런 죽음은 익사라고 했다.
호흡이 끊기고 죽음으로 가는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이 찾아온다고 한다. 정말 죽음은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인 것일까. 실제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없다.
아마 영원히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없을 것 같다.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과 죽음 이후 관에 넣어져 무덤이나 화장터로 향하는 과정이 리얼하게 그려져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과 그리움이 전해져서 아팠다.
나 역시 먼저 떠난 사람들 때문에 그런 과정을 겪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과연 내 죽음이후 남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리워해줄 것인지...
아니 난 남은 사람들에게 아픔이 되긴 싫다. 내가 싫다해도 어찌 해볼 도리는 없겠지만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나를 완전히 잊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잊혀지는 일들이 싫을 것이다.
누구나 언제가는 반드시 맞게 되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낸 책은 없었다.
그래서 아팠다. 그리고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맞을 수도 있는 죽음에 대해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조금쯤은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도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역시 죽음은 인간을 발가벗기고 겸허하게 만든다. 누구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