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아온 내가 수의사를 처음 만난 것은 반려견 토리를 키우면서부터였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데도 아이못지 않은 돌봄이 필요했다.
각종 예방주사를 맞히고 중성화수술을 하면서도 수의사는 대체로 동물병원에서 만나는
의사겠구나 정도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단한 직업인지
이 책의 저자 헤리엇을 통해 알게된다.
수의사 헤리엇이 수의대를 졸업하고 동물들을 진료하던 시기는 1930년대 후반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마 당시에는 지금처럼 의료수준이 좋지 않아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의 질병을 치료하는데도
고생이 많았을 것같다. 실제 헤리엇이 항생제를 사용했던 것도 훨씬 후에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의사가 극한직업임을 알게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불려나가야 하는 현실때문이다.
하긴 사람이나 동물이나 의사의 형편을 봐가면서 아프지는 않을테니 당연하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농가에서 키우는 소, 말, 염소를 비롯하여 개를 치료하는 여정을 보면 당시
열악한 환경을 알게된다. 새끼가 자궁에 걸려 나오지 못하고 죽어가거나 젖통이 밟혀 찢어지고
심지어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조각으로 납중독에 걸리거나 햇살에 너무 노출되어 열사병에 걸리는
일까지 정말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출되곤 했다.
눈곱이 잔뜩낀 강아지의 문제는 눈꺼풀이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늙은 주인은 단지
감기가 걸려 그런 것이라고 치료할 생각을 안한다. 수술을 하면 강아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꽤 큰 돈인 1파운드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선술집의 손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거두어
강아지 미키의 수술을 돕는다. 불콰하게 취한 손님들이 죽 둘러싼 수술실이라니.
엘리엇은 돈을 지불한 손님을 물리칠 생각을 못하고 수술을 하고 미키는 고통에서 해방된다.
일선에서 물러나 경마장을 오가는 노인의 개 코브의 일화는 동물의 치료가 문제가 아니고 강아지를
홀로 두었다는 죄책감으로 빚어진 과한 집착이었지만 이런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의사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고자 비타민 알약을 처방하는 장면은 수의사로서의 애환이 느껴진다.
그 알약이 자신의 개를 치료시킬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면 그것도 의사로서 잘한 치료라고 생각한다.
늙은 암소를 팔아버리려던 농부가 평생 자신에게 충직했던 암소가 가축상을 따돌리고 다시 외양간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자신이 속할 곳은 그 곳뿐이라는 걸 당연하게 인식하고
주인을 찾아 돌아오는 늙은 암소. 결국 농부는 팔기를 포기하고 다시 품어준다.
정말 가슴 따뜻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추운 겨울 밤에 바람을 뚫고 아픈 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가던 헤리엇.
오물투성이의 외양간 바닥에 자신의 몸을 누이고 치료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많이 등장한다.
더구나 당시 농부들은 왜 이리 무뚝뚝하고 거칠었는지 마음의 상처를 받을 만도 한데 헤리엇은
참 인내심도 강하고 다정한 의사였다.
힘든 치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넓은 들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고 때로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할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던 헤리엇은 1995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의사 헤리엇도 훌륭했지만 작가 헤리엇도 너무 위대했음을 다시 느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