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정동현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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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음식, 혹은 요리는 단순히 배만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채워주는

중요한 즐거움이다. 최근 TV를 보면 반 가까이가 요리관련 프로그램일만큼 각광을 받는

이유도 먹는 즐거움이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산 영도에서 자란 소년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입학했으니 아마 동네에서는 잔치라도

벌였을 것 같은데 잘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두고 서른이란 늦은 나이에 요리를 배워보겠다고

훌쩍 유학을 떠났단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 아래 중국집에서 먹었던 유니짜장의 맛이나 엄마가 해주었던 김치부침개나 닭칼국수의 맛이 그를 요리의 세계로 이끌었을까. 어찌되었든 영국에서의 요리학교 시절을 지나 호주에서 보낸 쉐프로서의 시간들이 참 고단하게 느껴진다. 낯선 문화, 낯선 요리세계에서 배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생이 아니었던가 싶다.

 

 

최근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한국요리도 사랑을 받게 되었다. 김치, 비빔밥에 불고기까지 세계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불에 구운 음식의 역사를 보면 먼 원시시대로 돌아간다.

우연히 불에 그을린 고기를 맛보면서 불에 익힌 음식의 맛에 인류의 진화는 시작되었을 것이란

저자의 주장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싼 값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간편음식인 김밥에는 누구나 기억되는 추억들이 있을 것 같다.  소풍날이면 꼭 싸가야 하는 음식으로 거의 같은 재료로 만들지만 각각의 맛과 색감으로 거듭나는 김밥에 대한 추억을 안도현의 시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에 빗대는 위트는 이 사람 요리보다 글이 더 맛깔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든다.

'김밥은 내가 먹기 위해 싸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배려가 깃든 음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온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기차여행을 하면서 먹었던 우동이며 치킨에 대한 얘기까지 참 따스한 기억들이 묻어있는 책이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열망을 지녔던 사람답게 전국적인 맛집을 순례하고 글을 쓰면서 나름의 인생요리를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먼 이국에서의 지긋지긋한 고독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인생과 요리를 잘 버무리는 솜씨가 있으니 분명 괜찮은 쉐프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요리를 배우고 지금은 글을 쓰는 다재다능한 쉐프의 글요리에 맛있는 한상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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