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북한 여행기, 아니 유학기라니 어떨떨하다.
적군 승냥이 집단의 미국의 국민을 받아들여 가르친다고? 북한이? 여행이라면 또 모를까.
제목을 보는 순간 든 생각이다.
하긴 철옹성같던 북한도 미국과 회담도 하고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자랐지만 북한 밖으로
도통 나서지 않던 김정은도 싱가포르에 베트남을 오가는 시대가 되었으니 가능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책의 저자 트래비스가 유학으로 북한에 머문 시기는 2016년 이었다.
김정은이 북한 국경선을 넘기 2년 여 전이다. 아직 제대로 된 문을 열고 나오긴 훨씬 전.
정말 될 수만 있다면 그의 몸을 빌어 평양이란 도시를 가고 싶었다.
내 기억속의 평양은 1972년이던가 박정희 정권시절 당시 이후락이 평양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7.4남북성명을 발표했다. 그 때 즈음이었던지 흑백필름속에 찍힌 평야의 모습이 흐릿했었다.
평양은 내 아버지의 고향이다. 스물살 무렵 아버지는 이미 그어진 3.8선을 돌아 바다로 탈출했다.
홀로 남한에 내려와 외로운 생을 살다가 7순을 얼마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경제리 18번지. 평양시내는 아닌 것 같고 평양 근교의 어느 소읍정도가 태어난 곳이고 이후 평양시내에서 중국요리집을 하던 부모님 밑에서 지냈다는데 상상으로도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서울에서 부산가는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시라고 생각되는 평양은 아버지가 알고 있던 그런 모습이 아니더라고 TV를 보던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 때 이미 도시는 기억속의 그 도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는 한반도에 사는 그 누구보다 북한의 역사를 꿰고 있었다.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평양은 철저히 파괴되었다고 했다. 온가족이 피난을 나오다가 다시 평양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도 미국의 공습때문이었다고 하더니 아버지는 그 공습전의 평양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평양이 모습은 국제적인 어느 도시처럼 웅장하다. 콘크리트색의 차가운 도시.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확실히 예전보다 활기차고 조금쯤은 촌스러움을 벗겨낸 것 같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도 집단 무용을 하거나 강변이나 공원에서 춤을 추면서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낯설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문화를 특히 영화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예술가들은 잘 대접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남한에 내려온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 배지를 달 만큼 사상적으로나 신분적으로 무장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
정도가 아니라면 남한에 내려보낼 생각을 못 할 것이다.
내가 무서운 건 그 사람들이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철저히 북한 사상에 세뇌되어 학습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래비스는 왜 북한을 다녀오고 싶었을까. 아니 심지어 한 달 정도라도 머무르고 싶어했을까.
유학의 빌미였던 어학연수라면 남한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미국인이지만 독일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이유도 어쩌면 독일 분단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상적인 경계선은 인간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만한 곳이 없다.
감시인이든 가이드이든 외국인에게 따라붙는 사람들이 없다면 자유로운 여행을 기대할 수없다.
그럼에도 평양 어딘가에는 나이트클럽도 있고 바도 있고 이제 새롭게 등장한 신흥 부자들을
위한 공간들이 숨어있다. 더 이상 북한도 철옹성의 나라가 아님을 그를 통해 보게 된다.
전파마저 넘어 들어가기 힘든 북한에서 그가 보낸 한 달여간의 기록에서 그가 말한 것중 가장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북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는다는 것.
정말 언제가 그들도 우리처럼 제대로 된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에 내가
살아생전 가볼 수 있을까. 나도 그들처럼 품는다. 희망을.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