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한자와 나오키

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이렇게 통쾌한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작가의 이름도 너무 생소하고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스릴러도 아니고 미스터리도 아니고

일본소설만의 특이한 탐정소설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현실적이면서도 짜릿할 수가 있을까.

처음에 제목을 보고 '한자'와 '나오키'라는 사람의 이야기 이거나 아님 정말 '漢字'탄생에 얽힌

에피소드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덮은 지금은 묵었던 체증이 시원스레 내려가는 듯한

상쾌함이 밀려온다.

이 소설은 전직 은행원이었던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은행이라는 조직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한 때는 누구나 선망했던 직장이었고 평생을 책임져줄 수 있으리란 믿음을 주었던 은행이었지만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경제불황과 사고들로 인해 이제 은행은 그저 평범한 직장에 불과해졌다.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은행들이 문을 닫고 거리로 쏟아져나온 은행원들이 갈 곳없어 방황하던 시간을 겪었다.            

어쩌면 이런 현실은 은행의 고압적인 관료의식과 무사안일주의가 부른 예고된 참사였다.

거품경제가 엄청난 불황을 몰고 오기전 어떤 일자리를 골라 갈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절에 한자와는 일본내에서도 가장 명망있는 산업중앙은행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쟁쟁한 경쟁율을 뚫고 입행한다.            

그 때만 해도 한자와의 미래는 핑크빛이었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었던 은행처럼 자신도 그런 회사들을

돕는 진정한 은행인이 되리라는 확신.

하지만 세월이 지나 오사카지점 융자과장이 된 한자와에게 악몽이 시작된다.

한자와의 요청으로 5억엔을 대출해주었던 서부오사카철강이 1차 부도를 낸 것이다.

사실 이 대출은 꼼꼼하기로 유명한 한자와가 미처 서류를 다 검토하기도 전에 지점장인

아사노의 강압으로 이루어졌었다. 거래가 없던 서부오사카철강을 찾아가 대출을 권유한 것도

아사노였고 한자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승인을 올려 대출을 해준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문제가 없어 보였던 제무제표는 분식회계로 교묘하게 위장된 것이었고 뒤늦게

이를 알아찬 한자와는 꼼짝없이 책임을 져야할 처지에 놓인다.

은행의 거래나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물건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회사에서 왜 은행대출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익을 다시 재투자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금의 공백을 대출로 막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분식회계라는 숫자놀음으로 얼마든 위장된 서류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부도를 낸 서부오사카철강의 히가시다는 사건을 수습하려는 노력을 커녕 잠적을 하고 한자와는 서부오사카철강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하청업체의 사장 다케시타와 함께 히가시다의 뒤를 쫓는다.            

결국 서부오사카철강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돈을 빼돌리고 계획도산을 한 것을 밝혀낸다.

실적을 쌓기 위해 충분한 조사도 없이 대출승인을 하고 부도가 나면 부하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사. 그리고 자신의 죄를 대신할 희생양을 철저하게 짓밟은 부조리한 조직사회.            

이 소설은 단지 계획도산을 기획한 인물을 응징하는 것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역경을 발판 삼아 기업을 일으킨 사람들이 겪어야 할 난관들을 하나씩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대기업의 횡포에 고개를 숙여야하는 중소기업들의 고통과 불합리한 구조의

은행과 국세청, 그리고 원가상승에 굴복하고 먼 나라로 이전을 고민하는 기업의 상황까지 생생히

전달된다.

계획도산으로 줄줄이 고통받는 회사들과 직원들. 그럼에도 빼돌린 자금으로 호화주택을 구입하고 떵떵거리며 즐기는 족속들에 대한 한자와의 치밀하고도 통쾌한 복수는 소설에서만 구현되어서는 안된다.

'난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믿어. 하지만 당하면 갚아주는게 내 방식이야. 열배로 갚아줄거야.'

한자와의 이 말은 그동안 선량하게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고 복수다.

자신의 말처럼 이기적이고 악한 상대들을 하나 둘씩 처치해 나가는 장면은 멋지다.

범인을 추적해가는 스릴러나 미스터리 못지 않은 긴박감과 몰입감을 줄 수 있는 이 소설이

놀랍기만 하다.

마지막 한자와가 왜 은행에 들어가야 했는지를 밝히는 에필로그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해온다.

그리고 한자와가 노리는 최후의 인물은 아직 치명상을 입지 않았음에 다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이제 은행에서 본점 영업 제2부 차장으로 영전한 한자와는 다시 최후의 인물을 향해 총을 겨눈다.

'가끔은 정의도 이긴다!.를 외치며.

2편이 더 기다려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