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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여수란 도시를 막연하게 알고 있다가 엑스포가 열릴 무렵 거문도를 방문하면서 자주 오가게 되었다.
여수여객선 터미널에서 2시간이 넘게 배를 타야 닿는 거문도는 참 아름다웠었다.
특히 가을의 바다는 봄 바다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몇 번의 재방문뒤에 섬에 닻을 내린지가 어언
8년이 되었다. 섬에 관광객이 아닌 주민으로 살다보니 아름다운 퐁경보다 불편한 일상과 더 많이
만나게 되었지만 낚시를 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상외에 너무 심심하다는게 문제다.
암튼 여수 남쪽의 섬에 둥지를 튼건 내가 먼저니 선배요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었으니 인생선배이기도 한 내가 위트 만점 김정운교수와 한 도시, 아니 한 바닷가를 공유하고 있다는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뜬금없이 일본으로 날아가 공부를 한다는 소리를 들은게 몇 년 전이었고 한동안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섬에다 아틀리에를 짓고 서재를 들였다니 좀 놀라긴 했다.
그가 섬에 둥지를 틀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 였다.
살아보니 책이 염분으로 썩는 일은 없었고 오늘처럼 태풍에 가까운 바람과 비가 오는 날에는
꼼짝없이 갇혀야 하는 일들이 조금 무섭기는 했다. 섬에서는 태풍이 가장 무섭다.
살면서 집을 짓는건 어리석은 일이라고들 하는데 거기다 섬에다 집을 짓겠다고 나서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자재들을 배로 날라야 하고 일꾼들도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한다. 먹고 자고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자만이 환히 보이는 통유리 안의 그의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이 남자는 잘 하는게 이리 많은가.
400만원 주고 샀다는 그의 애마 '오리가슴'을 난 분명 '오르가즘'이라고 읽었다.
그렇게 읽는게 맞다. 그의 애로적인 취향에 겨우 '오리가슴'이라니 가당치 않다.
'배에서 해 봤어요?" 물론 나도 그의 선배 형처럼 배에서 해봤냐고 이해했다.
그게 어때서. 배에서 해보면 안되나? 해 볼수 있을 때 해봐라. 육지보다 분명 다를 것이다.
그게 왜 변태야. 그의 질문대로라면 난 그의 배보다 훨씬 좋은-거의 리무진급의- 배에서 수없이
해봤다. 배에서 많이 해보면.................엄청 탄다.
단순히 섬생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은 수시로 이빨을 드러내는 그의 맹수같은 글에서 정신이
확 돌아온다. 난 그저 나처럼 섬에 들어와 책 읽고 글쓰는 일상을 상상했는데 그럼 그렇지 이렇게
날카로운 지적질이 그의 특기다. 허를 찌르는 일갈들.
'쉽게 분노하는 A형'의 인간이 바로 나다. 상대의 말을 끊고 내 말부터 해야한다.
일은 너무 잘한다. 칭찬도 듣는다. 분명 한국의 발전에 나의 노력도 한몫 했을 것이라 단언한다.
그럼에도 남의 말 중간에 뚝뚝 끊는 것도 폭언이며 폭력이라는 말에 그저 무릎을 꿇는다.
결혼하지 않은 과년한 딸을 둔 나는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도 좋다.
나는 해봤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그냥 혼자살면서 연애나 할란다...고 작정한 나는 그의 한 번의
결혼은 부당하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혼자 살거나 아니면 여러번 해라.
이왕이면 호적에 여러번 왔다갔다하는 것 말고 그냥 좋아하는 사람있으면 같이 지내보는거지 뭐.
'결혼 10년 단임제'에 한 표 던진다.
정말 사랑하면 한 번의 연임도 가능하다에 또 한 표!
아내 눈치 보지 말자. 아마 그녀도 엄청 좋아할테니까.
도대체 여수 어느 섬인지 찾아보다가 포기했다. 찾아갈 것도 아니고, 옹졸한 나의 서재에 비해
웅장한 서재가 궁금하긴 하지만 사진으로 보니 기가 죽어서 확인하기 싫어진다.
내가 사는 섬을 밝혔으니 여수 시민으로서 언제 한 번 들러보기를 권할 뿐.
얼마 전부터 여수시에서는 인구증가를 위해 주소지를 이전해오면 지원금을 준다는데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그 전에 들어와서 아깝게 놓쳤다. 여수 시민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이상!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