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라면 며칠이고 먹어도 물리지 않을 만큼 내가 애정하는 음식이다.
이북이 고향이신 부모님 덕에 일찌감치 냉면의 요묘한 맛을 알았고 어디를 가든 냉면좀 한다는
집은 외울만큼 냉면을 사랑한다.
사실 냉면은 복잡한 음식이 아니다. 면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함흥냉면이나 평양냉면으로 구분하고 육수를 어떻게 뽑아내는가가 냉면의 맛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메밀의 구수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질감은 좀 포기하고서라도 평양냉면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난 졸깃한 식감을 선호하기 때문에 함흥냉면쪽을 택하는 편이다.
아뭏은 이 '냉면'에 관한 책이라니 당연히 레시피가 등장하거나 맛집 순례쯤으로 생각했었다.
수상작 첫 편에 등장한 '하연옥'은 내가 애정하는 냉면집이기도 해서 역시 맛집 순례였군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소설에 굳이 맛집을 소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걸 읽다보니 알게 된다.
98kg 몸무게라면 제법 뚱뚱하다고 하는 나보다도 더 거구라는 의미이다. 그런 여자가 아주 잘생기고 성실한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고 대충 살아왔던 과거를 지우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냉면을 몹시 좋아하는 이 여자는 한 번의 이혼과 한 번의 연애를 했었는데 대체로 여자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사내들이었다. 남편이었던 사내는 빚까지 얹어주고서 그녀를 떠났다.
국문과 출신이라는 명분으로 글쓰기 교실을 열어 겨우 이자를 갚고 풀칠이나 하면서 살았던 여자를 왜 A라는 남자는 좋았던 것일까. 그녀도 궁금했고 나도 궁금했다.
끝끝내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사랑이란, 인연이란 딱 무엇이다라고 명제한다는 것 자체가
우문일테니 그 남자의 말처럼 그냥 좋아해서라고 해두자.
사랑이든 좋아하는 것이든 그 남자처럼 좋아하지도 않는 짜장면을 혹은 냉면을 같이 먹어줬다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 상대를 들어앉혔다는 의미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냉면을 왜 그 남자는 싫어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같이 냉면을 먹어주는 의미는 알것만 같았다.
아~ 진주의 하연옥이든 부산에 부일면옥이든 당장 냉면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y/hyunho0305/20190430_143329.jpg)
중화냉면이라는게 있었던가? 아스라히 중국집에서 계절메뉴로 본 것도 같은데 딱히 중화풍의
냉면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혼종의 중화냉면'은 주인공들의 국적과 닮은 음식이다.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와 대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각각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하는 바람에 두 여자는 자매가 된다. 한시적으로.
중화요리 주방장인 아버지를 도왔던 언니가 가끔 만들어주던 중화냉면이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여자.
시원하고 깔끔한 냉면이 아니고 땅콩소스가 듬뿍 들어간다는 중화냉면의 맛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그러고보면 음식은 단순히 우리의 허기를 달래주는 것만이 아니라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좋은 사람과 나눴던 어떤 음식이 떠오른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립다는 뜻이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y/hyunho0305/20190430_182011.jpg)
남의 대통령과 북의 위원장이 만나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옥류관 냉면은 맛이 아주 심심하다고 한다.
매콤하게 양념을 더해서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입에 안 맞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면을 들어올려 겨자를 친 다음 먹어야하는 법도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장 맛있는 면을 먹는 비법이 있는 모양이다. 나처럼 이것저것 따지는 것 싫어하는 사람들은 질색이겠지만.
옛날 중국에는 인육을 넣은 만두가 있었다고 하더니 문전성시를 이루는 목련면옥집의 육수의 비밀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연있는 종업원들은 비밀을 알면서도 목련면옥을 떠나지 못한 채 손님을 맞는다. 가끔 없어지는 종업원의 행방을 알고나니 더 으시시해진다.
사실 냉면은 여름에 먹는 음식이 아니다. 얼음이 살풋이 얼은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게 제대로 먹는거라는걸 냉면의 본고장 사람들은 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잇몸이 시릴 정도의 냉면을 먹다보면 왜 겨울에 냉면이 더 맛있는지를 안다.
갑자기 냉면값이 너무 올라서 가슴이 아프다. 봄이 무르익는 요즘 냉면 다섯 그릇을 먹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