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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평점 :
삶이 때때로 지겹고 막막하다가도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임을
깨달을 때가 있다. 태어날 확률로만 봐도 그렇고 수많은 피조물 중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더구나 장애없이 온전한 몸으로 태어났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생후 1년 만에 열병을 앓고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여인이 자신에게 내려진 장애가
'천형'이 아닌 '천혜'라고 생각하다니 믿을 수 없을만큼 긍정적인 이 여인, 바로 이제는 고인이
된 장영희교수다.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서 온전하게 걸을 수 없는 몸을
가졌음에도 절대 기죽지 않음은 물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했던 사람.
이 책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며칠 후 세상에 나왔던 책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그녀의 유고집을 다시 만나니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행복한데 왜 이리 빨리 세상을 떠났는지 가슴이 아파온다.
그 여린 몸으로 유학을 하고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당당한 그녀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었다.
살아가는 동안 틈틈히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세상에 나온 이 책이 더 소중한 것은 교수 장영희가 아닌 인간 장영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게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자신의 삶이 녹아 있을 수 밖에 없다. 생전에 만난 적이 없었던 그녀를 속속히 알 것만 같은 글들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어려서 골목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앉아서 바라만 보던 소녀.
하지만 어떡하든 역할 하나를 챙겨주었던 골목안 친구들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람.
너무나 게을러서 대학안 자신의 방을 쓰레기장으로 오해해서 재활용품을 놓고 가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면서도
기죽지 않은 사람.
요즘 나이와 상관없이 훌쩍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내가 다시금 신의 뜻을 묻고 싶어진다. 정말 귀신은 뭐하나 저런 놈 안잡아가고...하는 사람이 널렸는데 왜 이런 좋은 사람들을 먼저 데려가시는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일화와 조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제자들을 향한 사랑까지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조금 게으르고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킨 적이 거의 없는 느림보였긴 하지만 아마도 일찍 떠날 자신의 시간들을 조금 늦추고 싶은 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65억 인구중 왔다 간 흔적은 별로 없을 것이라던 자신의 말은 틀렸다.
그녀의 흔적은 오히려 세월이 흐를 수록 그리움에 아쉬움을 더해 더 선명해지고 있다.
있으나 마다했던 덤이 아닌 더 많이 우리곁에서 1+1의 삶을 보여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지 하나 그리운 아버지를 그곳에서 만났으리라는 것만 빼곤 이 곳에서 더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나이는 지금 나보다 조금 이른 나이였다.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보여주었던 그녀를 추억하며 아주 천천히 책장을
넘겼던 그리움의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