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 흔들리는 어른을 위한 단단한 심리학의 말
구마시로 도루 지음, 정혜주 옮김 / 샘터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기준 나이는 무엇일까? 문득 이 책을 펴면서 든 생각이다.

성인식을 하는 만 20세가 기준점일까? 법적인 성년과 '어른'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흔히 결혼을 하지 않으면, 혹은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결혼이나 아이의 양육을 거쳐야 진정한 어른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의학의 발달이나 환경의 변화로 급격하게 늘어나기 전에 마흔이란 나이는

거의 중 늙은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100세 시대의 마흔이란 나이는 아직 청년의 느낌이

더하지 않을까? 중년으로 접어드는 늙은 청년쯤이라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암튼 마흔이란 나이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른'임은 분명해보인다.

저자 역시 게임을 즐겨하던 어린시절 30세를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나도 어려서 30세까지

살지 않겠다고 장담한 적이 있었다. 당시 30세면 굉장한 어른이 되는 나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30세는 아직 미숙했고 지금 30세를 바라보면 몸은 어른인데 아직 덜 여문

열매를 보는 것 처럼 어설프다.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세대의

아이들은 부모의 과보호로 키워진데다가 불황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서가 아닐까.

 

암튼 멀어만 보였던 마흔을 어느새 훌쩍 넘기고 되돌아보니 나에게 마흔은 모든 것의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내 사업을 시작한 나이였고 비로서 제대로 된 독립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세대가 거의 그렇듯이 위로는 아직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와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끼인 나이였다.

그러니까 큰 어른은 아니고 청년세대들에게서는 비껴난 어중 띤 나이라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책임과 의무가 정점에 달한 나이였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 끼인 나이에 너무 일찍 노화해버린 사회구조상 직업이나 직장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 그게 바로 마흔의 딜레마가 아닐까.

 

 

 

 

팔순이 예전의 육순정도로 인정받는 시대에 이르고 보니 마흔은 한창 일하고 도약하는 나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마흔'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인생의 가장 혼돈스런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막상 마흔에 이르면 아직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도 많아지고 남은 의무에 대한 묵직함도 느껴지는데 과연 이런 시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 책이다.

제대로 된 어른노릇을 하기 위한 필독서라고나 할까.

급변하는 사회에 발 맞추기도 버겁고 길은 먼데 어떻게 마흔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지 지혜로운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 역시 몇 년 전 마흔을 지나 중반에 이른만큼 자신이 지나온 길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모르고 가는 길은 멀고 알고 가는 길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

처음 닿는 길이지만 네비게이션을 켜고 가는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