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 스페인 고산 마을에서 일궈낸 자급자족 행복 일기
김산들 지음 / 시공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전 TV에서 방영된 미국 드라마'초원의 집'이 떠오른다. 근대기에 접어들던

무렵의 미국의 시골모습이 그려졌는데 소박한 오두막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마차를 타고 물레방아에서 곡식을 빻던 모습들이 참 정겹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아주 가끔 도시의 삶이 지겨워질 때 나는 그 드라마속에 들어가보는 상상을 한다.

기차 정도는 있지만 자동차는 없고 전기도 수도도 없는 그야말로 야생의 삶을 상상하면서

잠시 문명에 익숙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상상일 뿐 전기도 없으니 당연히 인터넷도 안되는 더구나 수세식 화장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편함을 이겨낼 용기가 없음을 인정하고 다시 도시의 삶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는 순간 얼마 전 방영된 '인간극장'이 떠올려졌다.

뭔가 인생에 대한 골똘한 물음이 있었던걸까 20대에 네팔로 떠난 여행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는 산들씨. 사실 이름에서부터 남다른 인생이 깃들었음을 감지했다. 결국 산과 들로 향하고 말지 않았는가.

그녀가 네팔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운명에 대한 강한 이끌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반쪽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어 자석처럼 끌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강한 이끌림.

독신을 주장했던 남자도 동양여자의 등장에 자신의 뜻을 접고 결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에서도 아주 오지인 비스타베야라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도시에서만 살던 여자가 그것도 다른 나라의 오지라니 정말 용기가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할까. 그나마 마을에서 살 때에는 조금쯤 문명에 혜택을 받았지만 자연주의자인

남편이 600만원에 덜컥 사버린 시골집때문에 해발 1200미터 고산의 오지로 향하다니.

사랑이 힘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이름에 깃든 운명처럼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 역시 섬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그리워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거의 모든 삶을 살아온 내가 섬생활은 고단한 것이 너무 많았다.

간절히 갖고 싶었던 텃밭을 가진 대신 정말 싫어하던 벌레들과 친해져야 했고-모기, 지네, 굼벵이,쥐, 뱀....-맛집 순례를 즐기던 내가 그저 내가 손수 해먹는 맛없는 음식에 익숙해져야 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 불편함은 그저 아기 걸음마 수준이라고나 할까.

전기도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하다가 태양전지를 들여놓고서야 가능했고 수도는 지금도 샘물로 해결한다고 하니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고지의 오지이다보니 물도 귀하고 겨울이면 살을 에는 추위에 현관 문을 열고 나가기도 벅차지만

딸 셋을 낳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 여자의 힘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기특하기도 하다.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일상을 올리는 호사도 아주 늦게서야 인터넷을 끌어오고야 가능했다는데 그 글을 보고 흙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댓글에 놀랐다는 말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가 어려서는 아이들을 흙을 집어 먹기도 하고 며칠 씩 잘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 못해도

큰 병없이 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녀 말처럼 사람은 적당히 균에 노출 되어야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믿는다. 최근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병에 대한 저항성이 너무 약하다는 뉴스가 있었다.

누릴 수가 없어 걱정이지 누릴 수 만 있다면 흙도 밟고 풀도 따고 동물들과 친해지는 삶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부만 잘하라고 채근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버려진 반려동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요즘 스페인의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은 정말

부럽기만 하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엄격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예의이며 의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동물로 이왕 태어날 바엔 이렇게 정책이 잘 되어있는

나라에서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반려견 토리라도 내 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보살펴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스페인 남자들은 마초같은 사랑을 할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고 군사문화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출산 문화에 대해서도.

이렇게 세상은 또 좁아지고 닿지 못한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본다.

그저 여행이 아니고 현지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벅찰텐데 오지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부러우면서도 애잔하다. 어쨌든 그리운 사람들을 멀리 두고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될테니까.

그럼에도 언제든 스페인에 간다면 들리고 싶은 '초원의 집'이다.

잘 말려든 하몽에다 올리브유를 뿌린 채소라도 대접받는다면 참 행복할 것만 같다.

그녀의 블로그를 찾아가 아는 척좀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