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에게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1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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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어린시절의 나에게 위안을 보낸다.

나의 태생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1960년 초의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사는 동안 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밑에서

가난까지 덕지덕지 붙은 그런 집에 장녀로 태어나는 일 같은건 정말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태어나보니 그런 환경이었고 그 태생이 불공평하다는건 사춘기 무렵에 극심하게 나를 몰아부쳤던 것 같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를 지탱하게 했던 건 책이었다.

아주 무식한 부모는 아니었지만 사는 동안 무엇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다만 나름 정직한 삶을 살려고 했던 것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길을 익혔던 것 빼고는 책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믿는다. 여기 내가 지나온 길처럼 고독하고 어두웠던 골목에 서있는 한 소녀가 있다.

 

 

 

 

 

열 일곱 연두는 엄마가 다른 동생 보라와 함께 살고 있다. 친엄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 전에 보라엄마를 만나 보라를 낳았던 아버지도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자칫하면 보호소로 보내질 운명이었겠지만 보라엄마는 연두를 거두었다. 둑천변 곁에 물이 넘치는 어둔 집 한칸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에게 연민은 없다.

연두는 늘 축축하고 햇살도 비켜가는 어둔 집에서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보라는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휴대폰을 사달라고 떼를 쓰다 엄마에게 매맞고 욕먹는게 일상이지만 연두는 혹시라도 보라엄마가 자신을 두고 떠날까봐 새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제몸에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게 무엇보다 싫었던 연두는 자신처럼 휴대폰이 없는 같은 반 친구

유겸이가 마음에 든다. 유겸이에게는 자신처럼 무거운 비밀이 깃든 것 같아 더 가까운 마음이 든다.

 

 

 

연두가 사는 저지대는 재개발도 비켜가고 오갈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어쩔 수 없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천변의 다리 건너 고지대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있고 학교 애들은 고지대와 저지대의 아이들이 벽을 두른채 공존한다. 연두도 보라도 저지대의 아이들이라고 왕따를 당하지만 소심한 연두와는 달리 보라는 씩씩하게 자신의 어둔 삶을 헤쳐나간다.

 

 

연두의 집 옆 만두가게가 빠져나가고 새로 들어온 카페 '이상'

숯불로 원두를 볶고 직접 핸드밀로 원두를 갈아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도대체 이런 저지대에 제대로 된 커피를 만들고 그 커피를 먹겠다고 손님들이 들기나 할지 의문이지만 운명처럼 '이상'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난 '이상'의 아저씨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이상이 연인을 위해 만든 다방 '제비'처럼 아저씨는 세가 너무 싸서 들어왔다고 하지만 '이상'은 저마다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몰려든다.

천변근처에서 버려져 프랑스에 입양된 '마농'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긍정의 소년 '이규'

카페 '이상'안에 우체통을 만든 아저씨의 엉뚱한 발상으로 찾아오게 된 '유겸'

그리고 길고양이 '네로'까지.

아무것도 바라볼게 없는 막막한 현실에서 '이상'을 꿈꾸게 하는 카페.

 

연두와 유겸은 서로의 상처를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치유되어간다.

왜 자신을 거두었는지 모르겠지만 보라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카페 '이상'을 통해 억지 어른이었던 연두는 마음의 풍요를 배운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이런 카페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 숯불에서 갓 볶은 커피내음이 풍겨오는 것같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작가 김선영은 유독 청소년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이 소설속 연두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둔 시간을 지나면서 책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던 연두가 쓴 소설이라 더 감동스럽다.

자신의 어린 모습에게 위안의 글을 보내는 '작가의 말'을 보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나 역시 그 시절의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비록 40년 후에도 별볼일 없는 어른으로 살고 있지만 서른조차 상상이 안되었던 어린 소녀가 이렇게 아직 꿋꿋하게 살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니 울지말고 버텨보라고.. 살아보니 살만하다고.

왜 이 좋은 책이 수수한 무명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빛나는 보물은 어디에 쌓여있든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누구든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집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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