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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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었다면 111세 되었을 지 작품의 작가는 10여년 전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10여년 전 101세라면 정말 장수하고도 남는 나이였다.

1907년에 태어나 일본이 한창 전쟁 중일때는 3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여서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겪은 세대였다. 물론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종범국이라 일본국민이 겪었을 아픔이나 고통까지 이해해주기는 싫지만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전쟁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농촌에서 태어난 모모코는 당시로서는 중산층정도 되는 가정에서 막내로 성장했다.

멋진 할아버지가 썰어주는 연어회나 평범한 엄마가 해주시던 토란조림을 먹고 자라난 청정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전쟁이 한창일적에는 시골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소를 기르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도시 토박이였다면 견디기 힘든 시골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었던 셈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고양이와 개를 기르게 되었는데 그것도 일부러 기르려고 한 것이 아니고 안타깝게 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길렀던 것 같다.

매번 마술처럼 사라지는 개를 찾아 헤매기 일쑤였지만 집안에 들어온 생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따뜻함을 엿볼 수 있다.

 

 

도쿄를 오가며 살면서도 한적한 시골생활을 꿈꿨던 모모코는 어린시절 형제들과 어울려 지냈던 추억과 전후 농사를 짓고 소를 길렀던 추억담을 기억하면서 글로 남긴다.

책을 좋아하고 출판일을 하면서도 정작 누구에게 어떤 책을 권할지 주저하던 모습에서 그녀의 소심하면서도 섬세한 일면을 느낄 수 있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의 밤길, 삼나무숲을 걸으면서 마셨던 그 공기의 달콤함을 잊지 못했던 그녀는 다시 고향근처의 시골로 낙향해서 남은 생을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당시에는 서울에도 조금쯤은 시골분위기 있는 동네에서 깻잎도 따고 우물도 길어봤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학교로 향하던 길에 소똥이 간격을 두고 도열해있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드넓던 그 땅은 지금 하늘을 찌를듯한 건물들로 촘촘히 채워졌다.

가끔은 나도 어린시절 졸졸 흐르던 시냇물이 떠오르고 지천이었던 아카시아나무의 향을 기억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오히려 어린시절의 추억이 더 또렷하게 남는 것만 같다.

백수를 누리고 떠나는 동안 그녀의 기억에 담겼던 추억과 마주하니 한편으로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과연 지금의 아이들은 먼 훗날 어떤 기억들을 끄집어내게 될까.

가난하고 청량했던 기억대신 스마트폰의 게임과 학원을 오가던 기억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마당 한 귀퉁이에 채소를 키우고 마당에 고양이를 키우면서 한가롭게 책을 읽었을 작가의 평화로운 말년이 부러워졌다. 나도 그런 기억을 위해 섬으로 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자취'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자취'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외롭지 않게 고양이라도 키우면 어떨까. 담담하고 청정한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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