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현해당 지음 / 부크크(book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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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시 한편이 있다.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이다.
'시 한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인들은 가난하다. 시로만 밥을 버는 시인이 있다면 정말 행운아다.
이 시가 나온게 대략 1999년 쯤이니 당시 쌀 한말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 한편이 쌀 두말이 되어 밥이 되는 '시'가 너무 행복하다는 시인의 말이 중요하다.
요즘에야 쌀을 한 말, 두 말 사먹는 사람이 없지만 당시에 시인은 그렇게 사먹었던가보다.
당시 시인은 보증금도 없는 셋집에서 가난과 동거하면서도 시를 썼다.
쌀 한말을 벌기 위해서 썼는지 작가 누구의 말처럼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배냇병이 있어서
인지는 시인만이 알일이다. 암튼 시인들은 가난하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많은 시인들은 시만 쓰지 못한다.
시가 밥도 되고 고기도 되고 비행기표도 되는 시대가 오기는 하려나.
그래서 시집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
대략 만 원 언저리의 가격을 붙이고 서점에 나올 수 있는 시를 쓴 시인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빛도 보지 못하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시를 쌓아놓은 시인들이 더 많기 때문에.
암튼 나는 어찌어찌 이 시집을 손에 넣었다.


표지를 보니 나와는 분명 인연이 있는 시집임을 알겠다.
섬에 사는 사람에게 갈매기는 한 이웃이 아닌가.
진정한 자아와 자유를 갈망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연상되는 표지이다.
하긴 나도 자주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한다. 꿈이지만 하늘을 날면서 막혔던 숨이 터지는 것 같은
황홀감을 느낀다. '비상'의 꿈은 현실의 도피이면서 이상의 실현이라고 믿는다.


'grace'를 '그라세'로 읽어내는 장면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 앞에 서서
'accessory'를 '악세살이(惡世)'로 읽어내리는 시인의 눈이 남다르다. 고단하게 사는 일이
어디 나뿐이랴. 그저 시인이 건네는 위로의 언어에 마음이 또 짠해진다.


쉰 살이니까 쉰내가 난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해진다. 나도 쉰내가 날까?
수선화향기가 나던 스무 살의 나는 박제가 되어 앨범속에 있고 제대로 된 시인도
못된 사내의 시 한줄이 왜 이리 가슴에 박힐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가 이리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으니 어찌 죽은 시인이랴.
시가 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감탄사 '쉬~'라고 말하고
시집은 변기통이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폭소가 절로 터진다.
배설의 중요성, 뭔가 쏟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작가의 애절함 같은 거....
그리고 시인의 고달픔 같은 것들이 그냥 녹아든 위트가 아닌가.


이렇게 쏟아놓을 수 있으니 부럽다.
여기 저기 산사로 꽤나 돌아다녔을 시인의 일상이 그대로 그려진다.
그래도 내가 사는 가까운 곳의 동백 시가 얼른 눈에 들어온다.
누구든 동백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지.
시인이 아니더라도 감탄사 한 번이라도 남길 수 밖에 없는 향일암 동백은
붉은 빛이 너무 선명해서, 너무 아름다울 때 지고 말아서 더욱 애틋하다.
거기서 배를 타고 두어시간만 오면 내가 사는 섬이다.
막걸리 한 잔 따라드리고 싶으니 한번 건너 오시라.
여기 섬에 작가들이 제법 살고 있다는.
그래서 섬 시도 한번 멋들어지게 읊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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