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한 친구의 남편이 그랬다. 환갑이 되면 그 때부터 일년에 한 달씩 살고 싶은 도시에서
살아보겠다고. 국내가 아니고 파리, 런던, 로마정도 되는 도시를 스쳐가는 여행이 아니라
살 부디끼며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듣고보니 정말 나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훌쩍 떠나서 한 달 동안은 여행객이 아닌 주민으로 살아보는 것이 가능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유래(遊來)라는 한자이름은 사실 잘 쓰이질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름때문에 마음 아팠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잘 놀고 돌아오라는 뜻일거라는 말에 드디어
이름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했다니 참 다행스럽다. 나도 천상병 시인의 '소풍'을 떠올렸으니까.
산다는 건 그저 잠시 머물다 오는 소풍과 같음을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는 일찍 알았던 것이 아닐까.


 


성격이라는 건 대체로 타고난다고 믿는 나는 어린시절부터 소심했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저자의 고백에 토닥토닥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스스로도 참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답답할 것만 같은 소심함속에 이렇게 저돌적인
구석이 있었다니 기특하기도 하다. 스스로 선택한 발리의 우붓으로 향했다는 것만 봐도
대단하지 않은가.


 


너무나도 유명한 발리섬의 한켠이 아마도 우붓인 것 같다. 우연히 갔었는지 많은 계획을 하고
떠났는지는 모르지만 떠나기 전부터 잠을 이루지못할만큼 걱정이었다는 말에 그녀가 얼마나
연약한 마음을 지녔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냥 물 흐르듯 살아온 것 같은 시간들도 사실은 너무 많이 염려하고 지나치게 완벽하고 싶었던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사실 누구나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강박에 가까운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쳤고 쓰러지기 직전 우붓으로 향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갸륵한 심성이 그녀를 옭죄었던가보다.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고 싶었고 차라리 내가 상처받고 말지 할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뭔가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곱씹었을만큼 자신을 극도로 소모하는 삶이었다.
걸핏하면 길을 잃고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며 도마뱀에도 기절할만큼 놀라고 꼬박 밤을
새울만큼 겁쟁이 여행자가 두번 세번 우붓을 찾아갈만큼 그곳은 치유의 낙원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곳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훌쩍 떠나서 주민처럼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짹짹 울어주는 새소리도 좋고 길가에 새겨진 조각상들도 아름답고
꽃이며 나무가 지천인 환경도 좋았겠지만 역시 그녀가 가장 마음을 열었던 것은 사람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신을 돌봐주었던 직원들, 명상을 하면서 친해진 영국인 친구,
멋진 바에서 노래를 들려주던 가수며 모기장을 선뜻 빌려주던 한국인 부부까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급할 것도 없고 초록이 지천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아름다와지고 싶어질 것 같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가는 과정이 좌충우돌 그려져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우물쭈물 헤매기 일쑤인 어설픔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접고
맨몸으로 비를 느끼며 소리를 지르던 모습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어린 새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세상밖으로 나왔으니 하늘을 훨훨 날고 충분히 자유를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좋은 섬에서 한 달을 살아보려면 얼마나 준비가 필요한지 자세히 나왔으면
좋았겠다 싶다. 머무르는 비용이라든지 현지 물가, 군데군데 누릴 멋진 곳들이 좀더 상세하게
소개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마도 자신의 책을 읽고 와하고 몰려갈까봐 아까와서 일부로
누락시켰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훌쩍 떠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나는 그녀의 책으로
잠시 갈증을 달랠 수밖에.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알 수 있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제공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