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때론 소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소설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지는 순간말이다.  분명 소설인데 등줄기에서 뭔가가 훑듯이 지나가는
느낌이다.


2016년 지구, 말하자면 현재의 지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인류는 이제 더 진화할 수 없을만큼 발전하여 더 이상 석유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고
옷을 만드는 공장도 음식을 만드는 식당도 그저 추억여행에서나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가끔 오래전 인류가 누렸던 추억을 그리워도 하니까.
서른 둘의 톰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들고 있는 대천재 배런박사의 아들이다.
새로운 운송수단인 날아다니는 자동차 호버카가 초고층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그런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톰은 어느 날 호버카의 돌진으로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만다.
오로지 과학에만 매달리는 이기적이고 차가운 아버지는 톰에게 다가갈 수 없는 거대한 바위같다.
톰은 우주여행사를 꿈꿨지만 신체의 결함으로 다시 시간여행자를 꿈꾸는 페넬로페와 함께
시간여행자 연수를 받는 중이다. 하지만 톰은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잠시 직장생활을 할때도
그랬듯이 꼴찌에다 찌질이다. 아버지인 배런의 입김으로 이 그룹에 참여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런 톰이 팀의 리더이면서 우주여행사 훈련에 이미 잘 만들어진 몸을 가진 페넬로페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하필이면 시간여행을 하기 전날 잠을 잔다.
그리고 단 한번의 동침은 페넬로페를 임신시켰고 이 이유로 시간여행은 무기한 연기되고 만다.
신체의 변화가 시간여행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처럼 찬란한 문명을 누리게 된데는 1965년 7월 11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연구소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시작된다. 마흔 두살의 과학자 라이오넬 구트라이더가 새로운 에너지를 발명했고 그 새로운 에너지, 타우 방사선의 발견은 인류에게 엄청난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날 방사선에 노출된 라이오넬과 참관자 열 여섯명은 얼마 후 모두 죽고 말았다.
톰의 아버지 배런박사는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던 그 날로 시간여행을 맞춰 진행했었다.
그 순간의 영광을 꼭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들인 톰의 고추가 모든 걸 망쳤다.


 


우주비행사의 꿈을 접고 최초의 시간여행자가 되기 위해 모든 걸 쏟았던 페넬로페는 절망하고
스스로 자신을 분열시켜 자살하고 만다. 톰은 심한 자책감과 후회로 충격에 빠지고 몰래 연구소에 들어가 시간여행의 버튼을 누르고 만다. 그리고 결국 그곳에 도착한다. 1965년 바로 그 연구소에.
역사적인 실험이 있기 직전 연구소에는 인류가 그토록 추앙해마지 않는 인물 구트라이더가 있었고 이 모든 실험의 자금을 얻어온 제롬의 아내 어슐라가 들어온다. 그리고 둘은 깊은 키스를 나눈다.
인류는 구트라이더의 성장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유부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톰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투명필드 밖으로 분명하게 보고야만다.
그리고 드디어 엔진을 켜자 거대한 불기둥은 연구소의 지붕을 태우고 톰의 투명필드까지 침투한다.  그리고 구트라이더도 보았다. 톰을.


 


이제 인류는 국가의 경계도 큰 의미가 없고 노동도 과이 필요없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다만 먹고 사는 일이 아닌 다른 곳에 열정을 갖게 된 것이 문제였다.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연구는 급기야 시간여행을 위한 기계를 만들게 되고
의도치 않은 톰의 시간여행은 과거의 사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인류를 위험에 빠뜨린다.
과연 과거의 조각 하나가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을까.
톰이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구트라이더는 인류에게 커다란 선물을 하고 얼마후
죽을 것이고 영웅으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톰의 시간여행으로 두 가지 버전을 보게된다.
에너지 개발은 실패로 끝나고 인류는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과 또 하나는  엄청난 에너지
방출로 미대륙이 사라지고 멸망수준이 되어버리는 것.
톰은 현실로 되돌아왔지만 과거를 바꿈으로써 존으로 살아가는 세상과 맞닥뜨린다.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예측하듯 과거의 조각하나를 바꾸면 어떤 미래가 될지를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더한다.  미래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초고층사이를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음식맛을
느끼게 하는 캡슐, 그리고 생명도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나게 하는 그런 시대가 과연 인류가
원하는 미래일까.
부엌에서 따듯한 음식냄새가 퍼지고 창가에는 화분이 놓인 소박한 지금의 모습이 가장 행복한
모습은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암같은 병들은 소탕되기를 바라지만.

정말로 '우리가 살뻔한 세상'을 과거의 조각하나를 건들임으로써 다양한 버전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기발하다. 과학을 몰라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도 과학을 향해 무조건 직진하는 인류의 도전의식이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아일랜드'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그만큼 욕망스럽고 이기적이며 멈추는 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제작되어도 아주 좋을말한 소설이다.  다만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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