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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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내 지나온 삶에서 만난 사랑들은 나를 퍽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방패도 없는 적을 향해 꺼리낌 없이 돌진했던 그 숱한 사랑들 말이다.
난 늘 그 놈의 사랑한테 속아왔다는 걸 이제서야 확인한 셈이다. 백전 백패!
많은 연습을 하고도 늘 그랬던 나는 바보였던가.
그러고도 아직 사랑을 꿈꾸다니...나는 도무지 회복불가능의 천치인가.


난 류근이란 사람이 문학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역사학자이거나 예능감이 뛰어난 교수쯤으로
생각했었다. 그가 한참이나 출현했던 '역사 저널 그날'에서 어찌나 입담이 좋고 열정적이었던지
조신한 시(詩]를 쓰는 시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더구나 내가 그토록이나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쓴 장본인이란다. 아니 그렇게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말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암튼 그의 정식 직업(?)은 시인이다.
시 한편 써봐야 쌀 몇 말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시인이 된 것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운명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 그의 시를 읽은 기억이 없다. 시집을 사 본 기억도 몇 번 없는데 아마도 나의 이런 무관심이 많은 시인들을 배곯게 하는 줄 알면서도 말이다.


비에 관한 시가 없다면서 하는 변명은 비가 오면 몽땅 소진시켜서 시에 데려다 쓸 비가 남지
않을 정도로 비를 좋아한다는 그의 산문집은 어떤 색일까.


일단 '시바'자가 가장 많이 들어가서 인간다워 보였다면 칭찬일까 욕일까.
약 먹느라 이틀씩이나 라면을 끊었더니 정신이 혼미해지고 절망감까지 들었다니 분명
라면결핍증의 휴유증이 엄청났던 것 같다. '확 그만 살아버릴까'하는 장면에서 터져나왔던
웃음은 애인은 끊어도 라면은 못 끊는다는 부분에서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애인 보기를 라면 보듯 하라'고 조언할밖에.


인형 눈깔을 붙여 삼선짬뽕을 사주었다는 애인이나 떠나가버린 애인이 있었던 걸 보면
그에게도 분명 몇 번의 사랑이 도래했을터인데 아마도 어느 9월의 마지막 날에는
혼자였던 것 같다. '그대가 오지 않는 나날이 이토록 깊다.'라는 탄식이 절절하다.
나는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는데...참 이 시인 떠나간 사람들 많이 생각나게 하네.


가끔 궁금해서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혹시 이력서든 아니면 포트폴리오를 써야하는 순간에
직업란에 무엇이라고 쓰는지...시인? 이라고 쓸까.
시인이란 모름지기 견디는 사람이라는 말에 슬픔이 느껴진다.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는 시인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시인은 왠지 가난하고 외롭고 고상할 것만 같은 선입견이 있다.
롤스로이스를 모든 시인은 상상할 수가 없다.
다소 우중충한 옷을 입고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골목 어귀를 서성이면서 막걸리 냄새를 쫒는
그런 이미지. 너무 고루한가. 암튼 난 그렇다.
시에 별자리를 남기는 사람이란 말이 너무 좋다. 누구든 죽으면 하늘에 별이 된다고들 하는데
살아서 별자리를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란 말이 더 좋다.  많이 일러바치면 좋겠다.


대체로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이기고 싶어한다. 증오는 속으로 하고 경멸을 드러내놓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인간들이 참 많이 져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고 믿는다.
그리고 때로 져주는 일도 괜찮다고 위안한다. 혹시 져주지 않아서 만난 인연들이 웬수가 되었을지 누가 아랴. 가보지 않은 길과 비켜난 인연들과의 역사는 거의 아름다움으로 남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그렇게 남겨두자. 그래서 져주었던 사랑과 사람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아스라한 상상으로 남겨두자. 아마도 내 생이 다하는 날 까지 나는 늘 사랑을 꿈꿀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랑에 속고..돈에 울고...는 아니고. 함부로 속아준 모든 사랑들이여 위대했노라.
고 나는 외친다. 달변가 시인 류근의 산문집이 난 퍽 마음에 든다.
시바.



*리뷰어스클럽의 도서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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