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평점 :
신통한데도 없고 하찮고 쫌스럽고 쩨쩨한 것이 시시한거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도 뭐
좀 시시한 축에 드는 것 같다.
신통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고 쫌스러운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쩔 때는 좀
쩨쩨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서점에서 만나는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시시한 그룹안에
포함되지 않을 뿐 제법 이런 시시한 인간들은 많을 것이라 위안한다.
일단 포켓사이즈의 책이 제법
시시해서(?) 마음에 들었다.
어디든 폭 안길 수 있는 사이즈가 이제 좀 편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길게 깊숙하게 듣지 않아도
되리란 예감 때문이기도 하다.
어라 근데 이 책 포켓에 들어갈만큼 작은데 절대 시시하지 않아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래서 평소같으면
두어시간이면 읽어 치울 분량을 며칠을 곰삭여가며 아껴 읽었다.
유정아라는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이기도하고 소개글에는 흔한 30대 초반의 직장인..
정도의 정보밖에 없어서 절반
쯤 읽은 후, 그녀가 IMF무렵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단서로
그녀의 나이를 짐작해 보았다.
인천에 살았었는데 금융위기로
서울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한 두명 목걸이 열쇠를
걸고 다니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시리게 가슴에 꽃혔다.
그 무렵 내 첫 아이도
가난해진 부모곁을 떠나 할머니 품에서 자라고 있었다.
가장의 자리를 의지도 없이 차지하게 된 에미의 마음이 되살아났다.
지금 내 아이와 비슷한
나이가 된 목걸이 열쇠의 주인공은 그때의 기억이 각인되어 아이를
낳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가슴이 덜컥했다. 그래서 내 아이도 여전히 결혼 생각이 없는걸까.
쇼핑센터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모녀를 보면 한없이 부럽다.
나나 아이는 대체로 무뚝뚝한 편이고 감정에 인색한 편이라 그닥 다정한 모녀가 아니다.
아니 오랜시간 할머니 품에서
자란 아이는 나를 편한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 아이를 보면서 문득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여인이라는
자각이 마음아팠다. 그런데
여기 이 딸은 엄마를 점이 아닌 선으로 보였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가 되고 싶어 결혼을 한 것이 아니고 결혼의 한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도 속에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엄마의 열사르 스물 살을 보았다는
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아이도 나를 그렇게 봐준 순간이 있었을까.
지금 제 모습처럼 순간순간
방황하고 두렵고 불완전한 시절이 있었음을...그래서 엄마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이해해주었을까.
그래도 난 내 아이가 내가 걸어온 길보다는 더 편한길을 선택해서 씩씩하게 제 운명과
노닥거렸으면 좋겠다. 손주를
안아보는 행운이 없더라도 남은 자신의 시간만큼은 절대
후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싶다.
사실, 결혼이란 건 고귀한
것도 절대적인 것도 불변인 것도, 심지어 필수인 것도 아니란걸
나는 몰랐지만 아이는 제대로 알아서 제 인생을 멋지게 선택했으면 좋겠다.
쉬쉬하긴 하지만, 분명 내 어린시절보다 풍요롭긴 하지만 OECD 국가 자살 1위란 불명예를
걸머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젊은이'로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불행한지 절절히
다가온다.
2호선이 닿지 않은 소위 '낀 대학'출신의 자격지심으로 상처받고 한 때 편입시험준비까지
했던 그녀가 3년 만에
학자금 대출을 갚고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는 대목에서는 대견스럽고
축하주라도 함께 하고픈 기쁨이 전해진다. 어쨌든, 고뇌와 방황을 넘어 해냈으니 기특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말처럼
아프니까 청춘이긴 한데 넘어지지 않고 이렇게 내 곁에 도달해서
자신의 글을 읽고 있으니 제법 잘 컸다. 그래서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중간에 만난 돌부리나
비바람의 크기만 다를 뿐 그녀가 지나온 시간들은 나와 퍽 닮았다.
그리고 그녀가 트라우마를 이기고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또 다시 걸어야 할 길과도
많이 닮을 것이다. 그래도
박완서의 책을 착실히 읽어낸 아이답게 글도 참 잘썼다.
이 정도라면 박완서작가는 마흔에 해낸 미션을 조만간 해낼 수도 있겠다.
손 가는 대로 쓴 글이
이 정돈데 제대로 쓰면 등단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