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학선 16
백남룡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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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문학작품은 처음 접한 것같다. '문학'이라고 표현될 만큼의 수준높은 작품들이
존재하기나 할까 싶을만큼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작품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기계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뒤늦게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한 후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문학성이 상당히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단순한 편이다.
시 인민재판소의 판사인 정진우는 도 예술단의 가수인 채순희와 기계공장 선반공인
리석춘의 이혼문제를 맡게 된다.
북한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 결혼, 이혼등 우리가 겪는 일반적인 것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합의이혼이라는 형식은 없는지 모르겠는데 채순희의 이혼제기로 인해 판사인 정진우는
이혼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우리식으로 하면 결혼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숙려기간을
둔 후 이혼판결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이혼제기는 판사가 상당한 개입을 하는 것같다.
기계공장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 두 남녀가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고 10여 년을 함께 살았으나
더 이상 사랑의 마음이 남아 있지 않은데다 함께 사는 것이 너무 괴로워 순희는 이혼을 결심한다.
기계공장에서 인정받는 성실한 선반공인 남편은 오로지 일에만 열중하고 심지어 창의적인
공작을 하기 위해 자비를 쏟아붓는 등 도무지 가정에는 무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석춘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데다 능력도 대단해서 열정적으로 일하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진우는 순희와 석춘을 만나면서 이 부부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판단하게 된다.
기계공장에서 일하다가 노래솜씨를 인정받아 이제 도 예술단의 일원으로 승승장구하게 된
순희가 공장 노동자인 남편을 업수이 여기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석춘은 외모도 그저그렇고 꾸미는 것에도 소홀해서 이제 스타가 된 순희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말주변도 없고 다정한 면은 없지만 그야말로 진국이라고 하나같이 인정한 남편이지만
아내의 눈에는 촌스럽고 일밖에 모르는 한심한 남자일 뿐이다.
정진우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부가 근무하는 곳의 상사들까지 찾아가 만나면서 면밀한
조사를 이어간다.
이런 점은 우리네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판사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증언을
채집하는 모습이 낯설다. 이런 방식은 법이전에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도 본받았으면
할 정도였다.

                


순희와 석춘의 이혼문제를 따라가면서 순희의 6촌오빠인 도 공업기술위원장 채림은
부부의 이혼에 불씨를 지핀 인물이기도 하다. 야간대학에라도 진학하라는 순희의 조언을
무시하고 선반공일에만 열중하는 석푼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채림은 순희에게 이혼을 부추긴다.
정진우는 석춘이 5년동안 공을 들여 발명한 기계를 3등으로 입상시키면서 아무 혜택도 주지
않은 채림에게 일갈을 던진다.
그리고 순희와 석춘에게 각각 문제점을 상기시키고 일곱살 난 아들에게 불행을 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래전 어떤 부부의 이혼판결을 했던 정진우는 자신의 판결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게된 자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책에 빠진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과연 이런 판사들이 있을까.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되돌아보는 판사들이 있다면 좀 더 공정한
세상이 될텐데 말이다.

두음법칙을 쓰지 않는 필법때문에 다소 읽는게 불편했고 북한 특유의 사투리나 표현법이
낯설기는 하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폐쇄적인 북한내의 결혼이나 이혼, 사회적인 현상들도 조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진우라는 판사의 모습에서 작가의 모습을 본 것만 같다.
쉽게 판결을 내리고 일을 줄여도 좋을 것을 한 가정의 파탄을 막아보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이 따뜻함이 전해져온다. 대한민국의 대작가인 황석영이 왜 극찬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능력있는 작가는 체제가 어떻든 빛을 발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북한 문학의 진수를 본 것 같아 좋은 시간이 되었다.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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