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노란 숲속에 두 갈래로 길이 나 있었습니다.
두길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중략)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중략)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있었는데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많은 길위에 서있게 된다.
고심끝에 선택한 길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선택했다고 믿었던 그 길에 복병같은 불행이 숨어있다고 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전진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

      


스물 아홉살의 찰리는 다니던 대학도 중퇴하고 드링크스&모어라는 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굳이 학위를 따서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바 주인인 팀과는 7년째 일하고 있었고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라기 보다 절친에 가까운
사이였다. 그리고 드링크스&모어로 매일 출근하는 게오르크 아저씨 역시 한팀처럼
돈독한 사이였다. 찰리는 그야말로 자유분망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신용카드 한장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저급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바로 날아온 동창회초청장이 찰리의 화끈한 삶을 바꾸고 만다.
열 여섯 철없던 시절 자신의 순결을 가졌던 모리츠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동창회에
오라고 권유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 동창회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수표까지 끊어가며 겨우 구입한 원피스를 입고 으기양양하게 동창회에 들어선 찰리.
하지만 다들 허세로 가득찬 동창회에서 찰리는 모리츠의 계략에 말려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만다.

      


'헤픈여자'라고 프린트된 티셔츠를 즐겨입던 찰리는 굴욕적인 동창회에서 돌아와
'당신의 인생을 바꿔드립니다'라는 메니지먼트회사의 명함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있던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찰리로 거듭나게 된다.
창피했던 과거는 CD로 덜어내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된 찰리는 모리츠와 결혼식을 하는
당일로 도착한다. 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딴후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었고
첫사랑 모리츠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재산가이고 컨설팅이었던 모리츠가
주는 부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했던 고급스런 삶에는 무엇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엉망진창이었던 지난 7년간의 시간들이 너무도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걸핏하면 원나잇스탠드와 섹스를 즐기고 정크후드로 몸매가 망가졌던 그 삶이 왜 그리운걸까.
찰리가 가지 못했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가보니 뭔가 빠진 것이 있었다.
그리고 과거를 지워준다는 메니지먼트회사에는 찰리만 간 것이 아니었다.
모리츠를 차지하고 싶었던 이자벨은 찰리가 버렸던 과거의 CD를 구입하고 그녀의 시간을
빼앗았고 팀 역시 찰리와 함께 한 어느 날을 삭제했었다.
치명적인 과거의 시간을 지우면 지금 행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혹시 다른 길을 선택해서 또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든 지우고 싶은 과거는 있다.
그리고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또 다르게 선택한 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찰리는 아주 잠깐 지워진 과거때문에 행복했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엇가가 다시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찰리가 목록을 만들었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맞는 장면에서
나는 부러움에 가슴이 떨렸다. 마치 내 자신이 찰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이 꼭 행복이 보장된 길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혼란이 몰려왔다.
하지만 부와 명예도 진정한 소통이 없다면 부질 없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해준 책이다.
한 편의 코믹 영화를 보듯 흥미롭고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가 독일의 인기작가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분망하지만 결국 인간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진실한 삶을
살게 된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요즘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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