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기시미 이치로 지음, 위즈덤하우스
<명상록>은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가 직접 전쟁터에 나가 야영 텐트 안에서 양초 불빛에 의지하여 써 내려간 글이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생각을 노트에 담은 것으로 '자신을 위한 메모'라는 의미인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로 그리스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읽기를 바랬다면 라틴어로 썼겠지만, 그가 따랐던 스토아 철학의 언어인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쓴 글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메모였기에 어쩌면 더 진솔하게 썼을 수도 있다.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는 독창성이 없는 사상내용, 절충안이라는 식으로 평가절하를 하기도 하지만, 명상록은 꼭 읽어야할 고전으로 손꼽힌다.
당시 로마제국은 200년 동안 이어진 번영과 평화시대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아우렐리우스가 황제에 올라 어렵게 로마제국을 이끄는 조타수 역할을 했다. 황제 가문의 양자가 되면서, 일류학자들을 가정교사로 두고, 그리스어, 라틴어, 음악, 수학, 법률, 수사학, 철학을 배웠고, 피우스황제가 죽고 39세에 황위를 계승하였다. 공동통치, 전쟁, 아들의 폭정, 아내의 죽음을 경험하였고, 황제의 권력도 쇠퇴하여 황제가 실권을 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괴로운 일, 원치 않는 일을 해야하는 황제의 삶을 살면서도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명상록을 써 내려가면서 자신의 사고를 가시화 해나갔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이라도 전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살아야 하는 곳에서 잘 살 수 있지만, 궁정에서도 살 수 있느니, 따라서 궁정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거렸다. 오랫동안 계속해 왔던 일이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더라도,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 사이에서 양쪽 모두 다룰 수 있도록 조정하며 살았던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다른 사람의 행함과 행하지 않음에 좌우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남이 나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부모자식과의 관계에서 아이가 기대를 충족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듯이, 인간관계에서도 타인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면 비록 다른 사람의 언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랃도 그것 때문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분노를 느끼지 않더라도 타인의 인생이 신경 쓰이는 부분은 분명 있다. 하지만 내 기분, 내 행복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 쓰면 자연히 기대하게 되고, 또 실망하게 되는 법이다. 다만 도움 받을 일이 있을 때에는 도움을 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게 인간관계인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명상록을 이해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다른 예와 글들을 인용하기도 한다. 플라톤 철학을 전공하고, 아들러 심리학을 오랫동안 연구하였던 기시미 이치로 박사의 해설 덕분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조금더 재미있게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세계인이라고 했고, 아우렐리우스는 로마라는 국가에 속해 있었지만 인간으로서는 우주에 속한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인간은 우주에 속해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니 인종, 국가,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 로고스(이성)를 공유하는 동료로서 이성에 따라 올바르게 판단하고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협한 사고로 아등바등 살 것이 아니라 더 큰 마음으로, 더 큰 곳을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오늘도 참견하기 좋아하고 은혜를 모르는 오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질투심 많고 사교성이 없는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 경멸하면서 서로 아첨하기도 하고, 상대보다 우월하기를 바라면서 서로 양보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매일 아침 다짐을 했을 것이다. 변치 말고 철학이 너를 만들기 원했던 사람이 되도록 힘쓰라고!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은 자연과 일치하여 살아가는 의무를 다하며, 이성에 따라 판단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쌓고 유지하는 인간의 의무를 다하는 삶이다. 지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와 타인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 화를 내거나 미워하며 대립하는 일은 자연에 반하는 일이라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