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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정함을 선택했습니다
안젤라 센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다정함을 선택했습니다, 안젤라 센, 쌤앤파커스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웃어 주며 잘해주었더니 호구 취급하더라. 나의 다정함에 비해 상대방의 무심함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상처가 반복되고 깊어지자, 동료와 친구를 구분하고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힘든데 어떻게 다정할 수 있을까?
저자를 알게된 건 유퀴즈였다. 유튜브에서 편집된 내용 일부만 보았는데, 영국 공인 인지행동 심리치료사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얼굴은 한 없이 밝았고 우아해 보였으며, 어두운 건 못보고 양지에서 그늘없이 잘자란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방송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기에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정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이 없는 일에 휘말리거나 말도 안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열두살 때 어이없는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친구와 친해졌다는 이유로 친구였던 아이와 주변인들에 의해서다. 십 대 때 경험한 한 번의 상처가 20대까지도 이어져 우울증과 반복을 널뛰기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 때 저자를 구원해 준 것은 자신 안에 숨어 있던 다정함이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30년도 더 된 기억 하나가 떠 올랐다. 대학교 입학하고 강의실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토플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약속했던 강의도 열어주지 않았고, 받은 책은 조악했다. 90년대 흔했던 사기였다. 왜 학교와 과사무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확인도 하지 않고 강의실로 들여보내는 것일까? 부모님께 얘기했는데, 왜 그런 일을 당했냐고 오히려 혼이 났다. 20년 내 인생에서 그런 사기꾼은 처음 봤다. 가해자가 나쁜 것이지 피해자가 나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기를 당한 내가 멍청한 사람이고, 내가 그런 상황을 겪었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짜증났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다짐하며, 혼자 애쓰면 살았다.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어른이 없더라도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적어도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게다가 우리는 울음을 참아야하고,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살아서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저자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꼭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누가 감히 가해자를 용서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오히려 위로해 준다. 심지어 그들과 화해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 사람을 용서해야 내가 편해진다고 가르치는데, 반대의 말이라 흠칫 놀랐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용서해야 하며, 그런 일을 막지 못한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혐오해서는 안된다고 덧 붙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을 위한 아낌없는 다정함(compassionate-self) 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소통과 상호작용하는 걸 좋아한다.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 미국의 ADX플로렌스 교도소는 모두 독방이고, 위생적이고, 최고의 보안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깨끗한 지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곳에는 테러 조직이나 갱단 두목, 사이비 교주, 연쇄살인범, 아동 성범죄자들이 수감되는데, 타인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여 다른 재소자는 물론 교도관도 일절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고립감, 외로움이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위해 설계된 사회적 사형 집행을 하는 교도소인 것이다. 악플보다 더 나쁜게 무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면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지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든 적이 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던 것 같다. 저자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답답하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심지어 나 자신의 마음조차 헷갈릴 때나 착각할 때가 있으니, 이런 한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니 한결 덜 답답하고 덜 외롭게 느껴진다.
내가 싫어하는 유형 중 하나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나랑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말에 약간 놀랐다. 말이 안통한다는 사람은 내 말은 안듣고 자기 말만 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이해가 되었다. 다정하면서도 소통이 일방적이지 않도록 단호하게 적절한 거절과 비판을 선을 지켜야 공감피로(empathy fatigue)를 겪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적절한 리액션으로 다정함을 보이고, 지조비평(지적하기, 조언하기, 비판하기, 평가하기)는 덜어내야 한다는 말을 명심해 본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히고 얼어버리는 상황이 있다. 한참 지나서야 그때 내가 왜 아무런 댓구를 못했는지 분하기도 하고, 잘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저자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 배우고 경험해 보지 못가거나, 감정이 마구 날뀌어서 인지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반응(투쟁, 도피, 경직)이 먼저 튀어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게 중심을 잘 잡으려면, 일단 멈추고(stop) 3초 내지 10초를 세면서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내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인지하고(Notice) 이런 반응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대응(Respond)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단단해지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경험적 지식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겠다.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다면 이제 급발진하는 대신 브레이크를 밟고 날뛰는 감정을 다스려야겠다. 흥분한 상태에서 쏟아낸 말들로 인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상황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을 혼동해왔다. 화가 나는 것은 감정이고, 화를 내는 것은 행동이다. 참고 참다가 견디지 못해 폭발해 버리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은 화를 내거나 참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제 3의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말하듯이 화가 난다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내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뉘앙스나 표정 이런 건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면 더 큰 싸움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까.
다정함이 우리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는데,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이용하려는 게 뻔히 보이는 상대방에게도 다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함으로 일관하다 자칫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므로 저자는 '다정하되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정함을 만만함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공정함이나 정의의 잣대가 다를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타인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고 분노와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같은 기준으로 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저자는 관계의 중심은 언제나 '나'여야 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다정한 시선으로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 보는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고 하니, 나에게 다정하고 나를 먼저 들여다 보아야겠다. 우울과 불안함 속에서 저자를 구원해 준 것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 안에 숨어 있던 다정함이었듯이,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은 내 옆에 영원히 있어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 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중요한 사실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다정한 마음과 믿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지" 저자의 말처럼 툭툭 버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