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의학 공부 -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필수 해부 개념
켄 애시웰 지음, 고호관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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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고 공부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태어난 김에 의학 공부, Ken Ashwell, 윌북


약 30년 전, 대학교 때 생리학을 배웠다. 의대생들이 주로 본다는 전공서적은 영어가 난무했다. 임상영양학을 공부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알야할 부분이 인체 생리학이다. 옛날에 내가 배운 책은 비싸기만 하고 올 흑백에 참 재미없었다. 살면서도 계속 궁금한 것이 인체의 신비인지라, 아마존 베트스셀러라는 데 꽂혀서 재미없었던 생리학을 다시 공부해 보고 싶었다.


일단 이 책은 컬러풀하고, 그림이 눈에 확 들어 온다. 이 책은 책표지와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도록 텍스트보다는 그림으로 과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시리즈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임팩트있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비록 전공자가 아니어도 태어난 김에 의학 공부를 해보자는 취지로 일반인들고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이니, 어려운 용어나 영어를 차치하고, 의학의 문턱을 낮춘 책이다. 왜 우리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모든 근육이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까? 등등 짧고 간단한 텍스트 속에 우리가 알고 싶은 내용들이 정말 쉽게 섦명되어 있다. 뼈에 붙어있는 가로무늬 근육은 현미경으로 봤을 때 수축을 일으키는 단백질(액틴과 미오신)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어서 줄무늬가 보이지만, 민무늬근육은 수축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지 않아 무늬가 없다. 평활근(smooth muscel)이고 배웠던 어려운 용어가 민무늬근로 되어 있어서 그 뜻을 유추하기가 좀 더 쉽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목 부상을 잘 입는 이유는 척추에서 목 부분이 가장 작하고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토바이 사고에서 목 부상은 아주 위험하며, 응급처치 시에 목을 고정하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는 깨알같은 설명도 해 놓았다.




이 책은 전공서적이 아니니 용어들이 영어와 병행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첫 챕터를 펴는 순간 용어의 상이함에 당황했다. '말이집'은 유추조차도 안되는 용어였다. 옛날에는 미엘린(myelin)이라고 배웠는데 지금을 말이집인가 보다. 현직 대학교수로 있는 후배들에게 내가 공부한 부분을 사진찍어 보내고, 요즘 책들은 용어가 달라 못읽겠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말이집은 처음 들어 본단다. 뭐지? 저자가 Ken Ashwell이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면 영어로 이 책을 썼을텐데, 번역한 분도 서울대 과학사 석사를 받은 분이고,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자로 일했던 분이라 번역의 오류가 있을리는 만무하다. 그러고보니 아들이 화학 원소주기율표를 외우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달랐다. 영어의 한글표기법이 달라진 거다. 이 책은 모든 내용이 오직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그게 맞나 싶어 네이버 검색을 해 봐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옛날사람이라 그런 걸 어쩌랴.


문장이 길지 않으면서도 자세히 설명해서 인체에 대한 궁금증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해 놓았다. 각 장마다 특정 주제와 증상을 중심으로 인체를 해부하여 설명하고, 생리적 메카니즘과 증상발생, 진단과 치료까지 쉽게 설명하고 있다. 태어난 김에 의학을 맛뵈기라도 공부해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장 한장 공부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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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에서 잔까지 - 차의 마음을 담은 소수민족의 땅, 중국 귀주성 차 기행
이은주 지음 / 대경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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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 지원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잎에서 잔까지(중국 귀주성 차 기행), 산우 이은주 지음, 대경북스


이 책의 저자 산우 이은주님은 차를 직접 덖고 제조하며 카페까지 하는 분이다. 차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 책에 가득 담겨져 있다. '귀주성'이라는 곳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본 지명이다. 저자는 이곳을 차의 마음을 담은 소수민족의 땅이라고 소개했는데, 높은 해발고도, 석회암 토양의 미네랄, 낮과 밤의 온도차, 공기 중의 습도 등등이 차 한 잔에 다 녹아서 차의 맛과 향, 후운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에는 찻잎이 자라, 덖고 말리고, 숙성하는 자연과 사람의 시간과 차를 비로소 마시며 사유하는 모습까지 다 담겨져 있다. 차를 준비해서 마시는 과정은 인스턴트커피나 티백으로 나온 차에 비하면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기를 정성껏 준비해서 차를 마시는 일련의 과정까지도 차를 마시는 것에 포함시킨다. 핸드드립커피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편안함과 비슷하려나?


전문적인 차에 대한 지식이 없지만,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 직접 머나먼 중국 귀주성을 기행한 에세이로 읽어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드넓은 차 밭에서 어린 찻잎을 따는 모습을 머리속에 상상하는데도 뭔가 평온하고 잔잔함이 느껴졌다. 한 잎 한 잎 손으로 일일히 어린 잎만 골라 따는 일이 지루한 반복일지도 모르겠지만, 단순 노동을 하면 잡념이 없어지듯이 나와 자연만 보이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딴 찾 잎을 덖고, 발효하고, 건조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통해 드디어 차가 만들어 진다. 느리지만 천천히 자라나는 찻잎이 이렇게 좋은 향과 맛을 줄지 상상이나 했을까? 빠른 성장과 속도를 요구하는 현대사회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나의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까? 때론 초록색 풀도 보고, 파란 하늘도 보고 자연의 소중함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인간과 자연은 지배와 착취의 관계가 아니다.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고급스러운 책 표지의 재질마저도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성격급하고 일에 치여 사는 나에게 조용하게 차 한잔 하는 시간이 절실하다. 홀로 조용히 차를 마시며 사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차가 주는 행복이 있다. 좋은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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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정함을 선택했습니다
안젤라 센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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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다정함을 선택했습니다, 안젤라 센, 쌤앤파커스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웃어 주며 잘해주었더니 호구 취급하더라. 나의 다정함에 비해 상대방의 무심함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상처가 반복되고 깊어지자, 동료와 친구를 구분하고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힘든데 어떻게 다정할 수 있을까?



저자를 알게된 건 유퀴즈였다. 유튜브에서 편집된 내용 일부만 보았는데, 영국 공인 인지행동 심리치료사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얼굴은 한 없이 밝았고 우아해 보였으며, 어두운 건 못보고 양지에서 그늘없이 잘자란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방송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기에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정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이 없는 일에 휘말리거나 말도 안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열두살 때 어이없는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친구와 친해졌다는 이유로 친구였던 아이와 주변인들에 의해서다. 십 대 때 경험한 한 번의 상처가 20대까지도 이어져 우울증과 반복을 널뛰기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 때 저자를 구원해 준 것은 자신 안에 숨어 있던 다정함이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30년도 더 된 기억 하나가 떠 올랐다. 대학교 입학하고 강의실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토플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약속했던 강의도 열어주지 않았고, 받은 책은 조악했다. 90년대 흔했던 사기였다. 왜 학교와 과사무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확인도 하지 않고 강의실로 들여보내는 것일까? 부모님께 얘기했는데, 왜 그런 일을 당했냐고 오히려 혼이 났다. 20년 내 인생에서 그런 사기꾼은 처음 봤다. 가해자가 나쁜 것이지 피해자가 나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기를 당한 내가 멍청한 사람이고, 내가 그런 상황을 겪었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짜증났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다짐하며, 혼자 애쓰면 살았다.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어른이 없더라도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적어도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게다가 우리는 울음을 참아야하고,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살아서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저자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꼭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누가 감히 가해자를 용서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오히려 위로해 준다. 심지어 그들과 화해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 사람을 용서해야 내가 편해진다고 가르치는데, 반대의 말이라 흠칫 놀랐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용서해야 하며, 그런 일을 막지 못한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혐오해서는 안된다고 덧 붙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을 위한 아낌없는 다정함(compassionate-self) 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소통과 상호작용하는 걸 좋아한다.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 미국의 ADX플로렌스 교도소는 모두 독방이고, 위생적이고, 최고의 보안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깨끗한 지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곳에는 테러 조직이나 갱단 두목, 사이비 교주, 연쇄살인범, 아동 성범죄자들이 수감되는데, 타인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여 다른 재소자는 물론 교도관도 일절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고립감, 외로움이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위해 설계된 사회적 사형 집행을 하는 교도소인 것이다. 악플보다 더 나쁜게 무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면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지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든 적이 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던 것 같다. 저자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답답하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심지어 나 자신의 마음조차 헷갈릴 때나 착각할 때가 있으니, 이런 한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니 한결 덜 답답하고 덜 외롭게 느껴진다.

내가 싫어하는 유형 중 하나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나랑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말에 약간 놀랐다. 말이 안통한다는 사람은 내 말은 안듣고 자기 말만 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이해가 되었다. 다정하면서도 소통이 일방적이지 않도록 단호하게 적절한 거절과 비판을 선을 지켜야 공감피로(empathy fatigue)를 겪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적절한 리액션으로 다정함을 보이고, 지조비평(지적하기, 조언하기, 비판하기, 평가하기)는 덜어내야 한다는 말을 명심해 본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히고 얼어버리는 상황이 있다. 한참 지나서야 그때 내가 왜 아무런 댓구를 못했는지 분하기도 하고, 잘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저자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 배우고 경험해 보지 못가거나, 감정이 마구 날뀌어서 인지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반응(투쟁, 도피, 경직)이 먼저 튀어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게 중심을 잘 잡으려면, 일단 멈추고(stop) 3초 내지 10초를 세면서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내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인지하고(Notice) 이런 반응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대응(Respond)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단단해지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경험적 지식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겠다.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다면 이제 급발진하는 대신 브레이크를 밟고 날뛰는 감정을 다스려야겠다. 흥분한 상태에서 쏟아낸 말들로 인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상황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을 혼동해왔다. 화가 나는 것은 감정이고, 화를 내는 것은 행동이다. 참고 참다가 견디지 못해 폭발해 버리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은 화를 내거나 참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제 3의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말하듯이 화가 난다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내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뉘앙스나 표정 이런 건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면 더 큰 싸움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까.


다정함이 우리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는데,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이용하려는 게 뻔히 보이는 상대방에게도 다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함으로 일관하다 자칫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므로 저자는 '다정하되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정함을 만만함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공정함이나 정의의 잣대가 다를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타인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고 분노와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같은 기준으로 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저자는 관계의 중심은 언제나 '나'여야 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다정한 시선으로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 보는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고 하니, 나에게 다정하고 나를 먼저 들여다 보아야겠다. 우울과 불안함 속에서 저자를 구원해 준 것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 안에 숨어 있던 다정함이었듯이,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은 내 옆에 영원히 있어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 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중요한 사실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다정한 마음과 믿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지" 저자의 말처럼 툭툭 버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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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함정
낸시 스텔라 지음, 정시윤 옮김 / 정민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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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함정(Fear Traps), 낸시 스텔라 지음, 정민미디어


이 책은 시작부터 너무 강렬했다.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두려움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거기서 수년간 헤어나오지 못한 당황스러운 순간이 그려진다. 심지어 저자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전문 심리치료사가 아닌가? 때때로 이론과 실제 생활의 적용은 갭이 있는 법이다. 시누의 황당한 전화로 시작된 당황스러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20년 결혼생활을 오랜 외도를 인지하고, 남편과의 이혼으로 마무리된다.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외도하는 남편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내가 예민해서 그렇다며 진정제를 주거나 신경쇠약이 지나쳐 미쳐간다며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장면이 떠 올랐다. 남편은 저자가 싸 놓은 짐 가방을 들고 순순히 사라졌다. 솔직히 변명 조차 없는 이 상황에 더 화가 났다.


우리 대뇌 양 측두엽에 있는 편도체는, 작지만 매우 강력하다. 두려움과 스트레스 반응을 주관하고, 기억이 저장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편도체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믿을 때 활성화되는데, 저자는 편도체를 공포 중추라고 부른다. 트라우마가 된 기억은 편도체에 기록되는데, 트리거가 작동할 때 뇌는 과거와 같은 수준의 위험에 처했다고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느닷없이 과거로 보내져 그 때의 트라우마를 다시 겪게 하고, 우리는 그 끔찍한 경험을 하면 느꼈던 감정에 압도당하고, 과잉반응하며 현재 닥친 위협의 크기를 넘어서 반응하게 된다. 이 보다 완벽한 설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려움에 함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뇌과학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위기 상황에서 부모님, 언니,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 위기 상황에서 나의 든든한 부모님이 더이상 곁에 없다는 생각이 트라우마로 작용했고, 나쁜 기억이 종종 트리거로 작동하여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두려움의 함정에 빠졌다.


나 역시 저자처럼 자기 파괴 패턴 2단계를 경험했다.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은 너무너무 끔찍했따. 나는 두려워하는 단계를 지나 분노와 함께 상대방을 벌주고 싶었고, 내가 당한 고통을 그 역시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은 패턴이 상대방에 대한 것이고 내 감정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신경계를 침수시키게 되고, 비참함을 느끼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며, 면역계를 손상시킬 뿐이다.


저자는 자신을 더 잘 돌보고 보호할 힘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두려움이 힘을 잃고 희미해지기 시작했으며, 전두엽이 활성화되었고, 공포에 휩싸인 편도체의 손아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패배 패턴을 끊어낼 더 수준 높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내가 그 결과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을 때, 내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강인하며 더 역량이 있음을 인지했을 때, 우리는 회복력이 생기고, 새로운 자유와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저자가 제안한 용기있는 사고 프로세스(Courageous Brain Process, CBP)이다. 너무 명쾌한 설명이라 나 역시 두려움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혼자라고 느끼거나 고립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8년 시그나(Cigna)에서 2만명을 대상으로 한 'UCLA 외로움 척도'를 보면, 응답자의 저의 절반이 가끔 혹은 항상 고독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약 47%는 의미있는 대면 상호작용을 매일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43%는 다른 이들에게서 고립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혼자될까 두렵고, 거절당할까 두렵고, 대립이 두렵고, 무시당할까 두렵고, 실패가 두렵고, 미지의 것이 두려운 우리들에게 용기있게 사고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오랜 상담가로서의 경험과 함께 본인이 겪은 감정들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함으로써 내용이 더 풍성해지고 신뢰도가 높아졌다. 두려움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 볼 것을 추천드린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강인하며, 능력이 있으니, 저자가 추천한 대로 하다보면 분명히 새로운 신경회로를 형성하고 더 잘 살아낼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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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 - 마음에 쓰는 에세이 필사 노트
오유선 지음 / 베이직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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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 송길영 지음, 베이직북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필사가 도움이 된다. 우리 엄마는 그 두꺼운 성경을 3번이나 필사하셨고, 4번째 필사 중 이셨다. 눈도 잘 안보이면서도 성경을 쓰고 있으면 잡생각도 안나고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가끔씩 필사를 한다. 좋은 시나 글귀를 따라 손글씨로 직접 쓰다보면 오로지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는 마음에 쓰는 에세이 필사 노트이다. 필사책에 쓰는게 아니고 마음에 쓴다니! 카피 문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지었다. 책 표지에는 꽃과 나비가 가득하다. 인생 후반으로 건너온 우리에게 두 번째 봄을 여는 52편의 따뜻한 에세이가 담겨져 있다. 52편의 에세이마다 몇 문장을 골라 필사를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저자인 오유선님은 방송작가인지라 확실히 문체가 깔끔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냥 읽기만 하기에는 문장들이 너무너무 소중했기에 책을 받자마자 필사를 시작했다.




이 책은 180도로 쫙 펼쳐지는 사철누드제본이고, 종이는 적절히 도톰해서 어떤 필기구를 사용해도 비침이 없다. 게다가 칸도 넓직넓직 쓰기 좋은 13 밀리의 넓은 줄 간격으로 되어 있다. 편집자이든 저자이든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필사를 많이 해 본 사람이 기획한 책임에 틀림없다. 나는 필사를 할 때 만년필을 주로 사용한다. 만년필로 슥삭슥삭 종이에 쓸 때의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책은 종이가 너무 얇아 만년필을 쓰면 뒷장에 베껴 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코팅된 종이는 연필로 쓰면 잘 써지지가 않는다. 이 책은 연필이든 만년필이든 혹은 볼펜이든 어떤 필기구를 사용해도 다 만족스럽다. 요즘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손글씨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보니, 펜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이런 작은 배려가 필사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좋은 날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주어진 날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이 진짜 성숙이라고 한다. 내 인생은 늘 밝게 빛났으면 했었는데, 그것도 욕심인가 보다. 필사를 하면서 조급해 하던 마음을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었다. 책을 읽기만 하면 금새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필사를 하면 확실히 내 마음에 더 새길 수 있다. 천천히 되새김하면서,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쓰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니 마음도 안정되고 감동도 더 오래 머물게 된다.


나이들면서 급하고 불같던 성격도 내려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려고 하는데, 이 필사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팔이 아픈줄도 모르고 필사를 하며, 내 감정도 추스려지는 것 같았다. 만년필 잉크로 꼭꼭 눌러쓴 문장들이 내 마음에 꼭꼭 새겨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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