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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 - 마음에 쓰는 에세이 필사 노트
오유선 지음 / 베이직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 송길영 지음, 베이직북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필사가 도움이 된다. 우리 엄마는 그 두꺼운 성경을 3번이나 필사하셨고, 4번째 필사 중 이셨다. 눈도 잘 안보이면서도 성경을 쓰고 있으면 잡생각도 안나고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가끔씩 필사를 한다. 좋은 시나 글귀를 따라 손글씨로 직접 쓰다보면 오로지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는 마음에 쓰는 에세이 필사 노트이다. 필사책에 쓰는게 아니고 마음에 쓴다니! 카피 문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지었다. 책 표지에는 꽃과 나비가 가득하다. 인생 후반으로 건너온 우리에게 두 번째 봄을 여는 52편의 따뜻한 에세이가 담겨져 있다. 52편의 에세이마다 몇 문장을 골라 필사를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저자인 오유선님은 방송작가인지라 확실히 문체가 깔끔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냥 읽기만 하기에는 문장들이 너무너무 소중했기에 책을 받자마자 필사를 시작했다.

이 책은 180도로 쫙 펼쳐지는 사철누드제본이고, 종이는 적절히 도톰해서 어떤 필기구를 사용해도 비침이 없다. 게다가 칸도 넓직넓직 쓰기 좋은 13 밀리의 넓은 줄 간격으로 되어 있다. 편집자이든 저자이든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필사를 많이 해 본 사람이 기획한 책임에 틀림없다. 나는 필사를 할 때 만년필을 주로 사용한다. 만년필로 슥삭슥삭 종이에 쓸 때의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책은 종이가 너무 얇아 만년필을 쓰면 뒷장에 베껴 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코팅된 종이는 연필로 쓰면 잘 써지지가 않는다. 이 책은 연필이든 만년필이든 혹은 볼펜이든 어떤 필기구를 사용해도 다 만족스럽다. 요즘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손글씨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보니, 펜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이런 작은 배려가 필사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좋은 날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주어진 날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이 진짜 성숙이라고 한다. 내 인생은 늘 밝게 빛났으면 했었는데, 그것도 욕심인가 보다. 필사를 하면서 조급해 하던 마음을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었다. 책을 읽기만 하면 금새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필사를 하면 확실히 내 마음에 더 새길 수 있다. 천천히 되새김하면서,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쓰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니 마음도 안정되고 감동도 더 오래 머물게 된다.
나이들면서 급하고 불같던 성격도 내려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려고 하는데, 이 필사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팔이 아픈줄도 모르고 필사를 하며, 내 감정도 추스려지는 것 같았다. 만년필 잉크로 꼭꼭 눌러쓴 문장들이 내 마음에 꼭꼭 새겨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