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ㅣ 똑똑 세계사 시리즈
제임스 데이비스 지음, 김완균 옮김 / 책세상어린이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메로스가 쓴 시에 전하는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 그리스 사람들이 지금의 터키에 있던 도시 국가 트로이를 무너뜨린 사건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냐 하면….

p.12



트로이와 그리스는 오래도록 사이가 좋았지만,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가 스파르타의 헬레네 왕비를 보고 반해서 그녀를 납치함으로써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연합해 왕비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는데….


고대 그리스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사건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호메로스의 서사시로 전해지는 트로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트로이 목마에 대해서 아이들이 귀여운 전쟁 전략을 짜는 듯한 삽화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목마 이전에 여러 모양을 시험 삼아 설계해 봤지만 전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탈락, 그래 말 모양 너로 정했어~.

그런 다음 트로이 사람들이 모두 잠든 틈에 줄을 타고 내려와 돌격~. 게임 끝!

아이들이 보기에 지루해하지 않을 재미있는 그림과 설명으로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쓰여진 전체 10권으로 된 윤리학 저서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데, 이 책은 그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좋음"의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즉, "좋음"과 동시에 "가장 좋음"은 다른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추구된다.

정치학은 인간에게 가장 좋음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개인의 좋음을 실현하거나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족이나 국가의 좋음을 실현하는 것은 더 고귀하고 신성한 일이다. 이때 정치학이 달성 가능한 모든 좋음 중에서 가장 좋음을 "행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대중과 철학자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


가장 좋음은 최종적인 것이다. 어떤 하나의 최종 목적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우리가 찾는 가장 좋음일 것이다. 여러 개의 최종 목적이 존재한다면, 그중에서 더 최종적인 것이 우리가 찾는 가장 좋음이다. 최종적이라는 것은 어떤 다른 것을 위해 바라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행복이 그러한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것이다. 행복이란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선택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체만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그 자체만으로 삶을 바람직하게 만들어주고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부족함 없고 충분한, 자족적인 것을 의미한다.


미덕에는 지적 미덕과 도덕적 미덕이 있다. 지적 미덕은 주로 가르침에 의해 얻어지고 도덕적 미덕은 습관에 의해 생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도덕적 미덕을 받아들여 습관을 통해 완성한다.

특정 성품은 그 성품과 닮은 행위에서 생기므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좋은 행동을 하여 습관화를 통해 도덕적 미덕을 완성하고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덕은 지나침과 모자람을 피하고 중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중용이다. 그리하여 미덕은 실체와 본질의 관점에서는 중용이지만 가장 좋음과 잘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최고가 된다.

하지만 모든 행위와 모든 감정에서 중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쁜 감정이나 행위에는 중용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행복이 인간의 고유한 목적이라고 했다. 행복은 그 자체로 선택할 만한 활동 중 하나고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해 선택하는 활동이 아니다. 미덕에 따른 행위가 그러하다. 고귀하고 훌륭한 활동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고 선택할 만하다.

행복이 미덕에 따른 활동이라면 그중에서도 최고의 미덕을 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고의 미덕은 인간을 구성하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음과 관련된 미덕이다. 행복을 논하기 이전에 살펴보았던 관조적 활동이 그러한 활동이고 그것은 곧 최고의 활동이다. 지성의 활동은 관조적인 것으로 인간의 일이며, 이러한 지성의 활동이 일생에 걸쳐 이루어지기만 하면 이 활동은 인간의 완전한 행복이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윤리와 절제하는 삶과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그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에 다다르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정말 단순하고도 심오한 질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이해에 대한 조언을 구하며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쁜 토끼 ㅣ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은 하무라 아키라. 국적은 일본. 성별은 여자. 나이는 서른한 살. 하세가와 탐정사무소의 계약직 프리랜서 탐정이다.

하무라는 꿈에도 몰랐었다. 4월의 어느 날 저녁 '도토종합리서치'에서 하무라를 지명하여 들어온 간단한 지원 요청이 이후 최악의 9일을 보내게 되는 전초전이었다는 사실을.


지원 요청의 내용은 도토 측에서 이미 소재 파악이 끝난 다이라 미치루라는 가출한 열일곱 살 여고생을 집으로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도토 측에서 나온 직원 중 세라 마쓰오라는 직원이 일을 엉망으로 꼬이게 만들었다. 그는 잠복의 기본 수칙도 전부 무시하더니 결국은 이야기가 잘되어 하무라가 미치루가 신세 지고 있는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하무라를 밀치고 그 집을 뛰쳐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하무라는 세라에게 오른발을 세게 밟혔다.

세라는 집 안으로 들어가 집주인인 미야오카 고헤이의 목을 조르고 미치루에게는 더러운 욕을 해대며 겁탈하려 했다. 미치루의 머리를 휘어잡은 세라는 자신을 말리는 도토의 직원 사쿠라이의 안면을 강타한 뒤 이죽거리며 자신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하무라는 세라의 급소를 차 미치루를 떼어낸 뒤 미치루를 부모님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그 순간 뒤에서 사쿠라이의 고함소리가 들려 돌아봤더니 세라에게 목이 졸렸던 고헤이가 과도를 들고 서 있었다. 잠시 뒤 칼은 하무라의 옆구리에 꽂혔다.


세라 때문에 칼에 찔리고 오른발에 금이 간 하무라는 2주간의 입원 후 퇴원을 했고, 집에서 요양을 했다. 퇴원 후 10일째 되는 날 하세가와 소장이 연락해왔고, 열일곱 살 여고생이 사라진 사건의 의뢰가 하무라를 지명하여 들어왔다고 알린다. 그가 하무라의 부상을 설명했음에도 의뢰인은 막무가내로 하무라를 데려오라며 억지를 부렸다는 것이다.

의뢰인 다키자와 기요시는 세계적인 호텔 체인의 회장이다.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버블 붕괴 후 큰 실수를 저질러 지금은 명목뿐인 회장이었다.

하무라는 의뢰인을 보고는 미치루의 아버지 다이라에게서 자신을 소개받은 것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다키자와의 사라진 딸 미와가 미치루처럼 단순한 가출이 아닌 어떤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음을 제시한다.


다키자와의 의뢰로 미와의 친구 미치루를 만나 미와에 관해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대화를 나누었으나, 미치루는 미와와는 부모님끼리 친해서 알뿐 서로 조심스러워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와가 사라진 당일 만나러 나간 미와의 또 다른 친구 야나세 아야코에 대해 물었더니 미와와 아야코는 공통된 어떤 지인이 있었고 미치루 자신도 미와에게서 아야코를 소개받았을 뿐 자신은 그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아무 성과 없이 미치루와 헤어진 하무라는 그날 밤 경찰서로 데리러 와 달라는 미치루의 전화를 받는다. 미치루를 데리러 간 경찰서에서 하무라는 우연히 야나세 아야코가 살해된 채 공원에 유기된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일본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 와카타케 나나미가 귀환했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의 프리퀄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쁜 토끼』는 『이별의 수법』보다 13년 전에 발표되어 2002년 제55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후보에 올랐던 소설이라고 한다.

미안하다 하무라, 이걸 몰랐다고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소설은 한 여고생의 가출사건을 시발점으로 그 인물과 관련된 다른 사건이 발생하며 점점 더 덩치를 키워나가다가 추악한 사회의 이면에 다다른다.

역시나 소설은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으로 시작한다. 찔리고 밟히고 밀쳐지고 갇히고 굴려지고…. 오죽하면 하무라가 자신은 오래전부터 부조리의 신에게 찍혀 부탁하지도 않은 은총을 충분히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하무라는 묵묵하게 자신이 맡은 일과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불사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28회 멤버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학업성적도 우수하여 자연스럽게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능력을 사회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까라는 고민도 했었지만 그것은 점차 눈앞의 이익이나 실적, 물욕, 과시욕 등으로 변질되어 비극에 이르게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 했으나 각자가 가진 콤플렉스와 왜곡된 엘리트 의식,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 등으로 모든 것이 썩어가고 비틀리고 무너질 줄 누가 알았을까.


이것은 비단 28회 멤버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우시지마 준타라는 인물 또한 이들과 비슷한 환경과 배경을 가진 인물로 왜곡된 엘리트 의식과 비틀린 욕망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고 과시한다. 우시지마의 만행은 소설로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감히 하무라가 뭐 어쩌고 저째?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더라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면 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받게 해야지, 그것을 비전문가인 더군다나 아직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 참으라는 말만 하고 자신은 일이나 모임을 핑계로 바깥으로만 도는 무책임한 아버지 다이라 요시미쓰를 보고 다시 한번 누구나 부모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도 은연중에 어머니랑 같은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토끼와 게임의 진실.

소설은 폭풍이 휘몰아치듯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 잠시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다키자와 미와의 실종사건이라는 큰 흐름에 관계없는 자잘한 사건들도 일어나지만 이 사건들 하나하나 전부 개연성과 완성도가 뛰어나고 소설의 흐름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나가는 가운데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전말이나 범인에 관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건의 진실과 범인을 예측해서 '난 그럴 줄 알았어!' 이 말이 하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끝까지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나쁜 토끼』, 진심으로 강력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노인과 바다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멕시코 만에 돛단배를 띄워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다. 앞서 40일간은 그가 고기잡이를 가르친 소년 마놀린과 함께였으나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의 지시로 소년은 다른 배로 옮겼다.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제 확실히 '살라오'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매일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은 소년을 슬프게 했고, 소년은 노인이 고기잡이 도구들을 준비하거나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그날도 허탕친 노인을 위해 소년이 테라스에서 노인에게 맥주를 사 주었는데, 테라스에 앉아 있던 많은 어부들이 허탕친 노인을 비웃었다. 그러나 노인은 화내지 않고 소년에게 85는 행운의 숫자이고, 내일 자신이 손질을 하고도 천 파운드가 넘는 물고기를 잡아오는 걸 보면 어떨 거 같냐며 85일째인 내일은 큰 물고기를 잡을 거라는 의지를 보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둠 속에서 소년의 도움을 받아 고기잡이 준비를 마친 노인은 바다로 나간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노를 저은 결과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가 있었다. 그는 실제로 날이 밝아지기 전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낚싯줄을 드리웠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정확하게 낚싯줄을 드리운 노인은 자신이 최근 물고기를 못 잡은 것은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은 다를 것이라 기대하며, 운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하여 정확히 준비하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오랜 기다림 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떠다녀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85일째인 오늘 하루는 제대로 낚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낚싯줄을 지켜보고 있던 바로 그때, 노인이 드리웠던 낚싯줄 중 녹색 찌가 격렬하게 잠기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가볍게 줄을 잡아 100패덤 아래에서 아주 큰 청새치 한 마리가 갈고리에 달린 미끼를 먹고 있음을 느끼고는 그것이 완전하게 낚싯바늘의 정어리를 삼키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물고기가 미끼를 완전히 삼켰을 때 노인은 양손으로 힘껏 낚싯줄을 낚아챘다. 그러나 물고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노인은 예인줄 말뚝 신세처럼 그 물고기에 의해 끌려가기 시작하는데….



노인은 수도가 없어 씻기 위해서는 소년이 두 블록 아래 길에서 물을 가져와야만 하는 오두막에서 살고, 다른 생필품이나 식사 한 끼 조차 소년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절대 비굴하지 않고 매사에 당당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노인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굳센 의지를 보여준다.


바다는 그런 노인에게 치열한 삶의 공간이자 친구였다. 다른 어부들이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고 남성형으로 부르며 경쟁상대나 심지어 적이라고 말할 때, 노인은 그것을 라 마르(la mar)로 생각하며 여성으로 여겼다. 만약 바다가 거칠거나 심술궂은 일을 했다면 어쩔 수 없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는 노인에게 고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품 같은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 바다에서 노인은 부상으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큰 청새치를 잡는데 성공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힘과 의지를 그러모아 잡은 청새치를 상어떼가 공격하였을 때는 마치 노인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노인의 물고기를 공격하는 상어떼는 노인의 적들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자부심을 공격하는 적들에 맞서 죽기 전까지 그들과 싸울 것을 다짐한다.

인간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어.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


비록 마지막에는 잡은 물고기를 상어떼에게 전부 뜯기고 배 손잡이가 상처를 입었지만 노인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상어떼라는 또 다른 자신의 운명의 시련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기에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육체적 한계를 느끼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노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며 노인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인이 마지막에 꾸는 힘과 용맹의 상징인 사자 꿈을 통해 노인은 다시 한번 불굴의 의지를 다져 내일을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자는 바로 미래에 대한 노인의 희망과 의지의 표상일 것이다.

우리는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처럼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세상의 고난에 맞서며 앞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방인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뫼르소는 양로원으로부터 어머니 사망과 장례식에 대한 전보를 받았다. 이에 알제에서 멀리 떨어진 마랭고에 있는 양로원에 가기 위해 사장에게 이틀간의 휴가를 요청했지만 사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뫼르소는 양로원으로 가 원장을 만난 뒤 어머니의 관을 모셔둔 작은 영안실로 갔지만,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도록 관의 뚜껑을 열어 주겠다는 관리인의 제안은 거절한다. 그러고는 밀크 커피를 가져다주겠다는 관리인의 제안에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다음날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슬픔으로 울면서 실신하는 토마 페레와는 달리 슬픔을 느끼지도 슬픈 척하지도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열두 시간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쁨을 느낄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그날이 바로 토요일인 것을 깨달은 뫼르소는 전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항구의 해수욕장에서 뫼르소는 같은 사무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했던 마리 카르도나를 만난다. 그들은 함께 수영을 즐긴 뒤 저녁에 페르낭델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를 보고 뫼르소의 집으로 가 함께 밤을 보낸다.

다음날 뫼르소가 일어났을 때 마리는 집에 가고 없었고 뫼르소는 여느 일요일과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어머니는 땅속에 묻혔고 뫼르소는 일상을 이어갈 것이고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뫼르소는 같은 층의 레몽 생테스와 어울리게 된다. 동네에서 레몽의 평판은 좋지 않았지만 뫼르소는 그와 말을 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를 못 느끼며 그의 초대에 응한다. 레몽은 뫼르소에게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온 레몽의 정부의 오빠와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무어인 정부와의 일을 이야기해 주며 그녀를 혼내주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했고 뫼르소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뫼르소는 레몽을 만족스럽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가 만족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애썼다.

다음 일요일 레몽은 자신의 집을 찾은 정부와 다툼 끝에 폭력을 행사했고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에게 제지당하며 경찰서로 소환 명령을 받는다. 이에 레몽은 뫼르소에게 증인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다음 토요일 뫼르소가 무어인 정부가 레몽을 그리워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레몽은 주의 조치만 받고 경찰서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뫼르소와 마리, 레몽은 레몽의 친구 중 한 명인 마송의 초대를 받아 해변가 작은 별장으로 간다. 집을 나섰을 때 길 맞은편 담배 가게 근처에 무리 지어 있는 아랍인들을 보았고 그 무리들 중에 레몽의 정부의 오빠를 발견한다.

그들을 피해 서둘러 버스를 타고 해변의 별장에 도착한 뫼르소 일행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점심을 먹고 난 후 마리와 마송 부인은 남겨두고 남자들만 해변을 산책했다. 그때 레몽을 쫓아온 아랍인들과 마주쳤고 시비 끝에 레몽이 칼에 찔린다. 그 후 아랍인들은 재빨리 달아났고, 뫼르소와 마송은 레몽을 부축하여 별장으로 돌아온 뒤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한다.


상처를 치료한 레몽은 침울해하며 해변으로 홀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 레몽을 뒤따라간 뫼르소는 해변가 끝에서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들을 다시 발견한다. 레몽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을 만지며 쏘고 싶어 했으나 뫼르소가 이를 저지하며 총을 받아둔다. 대치 상황 속에서 아랍인들은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고 레몽은 기분이 한결 좋아져 마송의 별장으로 돌아간다.

레몽과 달리 별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혼자 산책에 나선 뫼르소는 레몽을 노렸던 아랍인과 다시 마주친다. 뫼르소는 아랍인이 꺼내든 칼에 반사된 햇볕이 눈을 파고들자 레몽의 권총을 움켜쥐고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데….



소설에서 보여지는 뫼르소의 태도는 한마디로 무관심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포함한 주변의 일과 사람들에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나중에 재판에서조차 이런 뫼르소의 무관심과 비정함이 판결의 원인이 된다.


뫼르소의 이런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고 거부감을 일으킨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더라는 양로원 원장의 진술,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밀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잠을 잤다는 관리인의 증언들은 뫼르소를 인정없고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뫼르소는 이러한 것들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런 것들은 살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진술들이므로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변호사가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 기소된 것인가 아니면 한 사내를 죽여서 기소된 것인가를 물었을 정도다.


뫼르소는 자신의 재판에서조차 방관자였다. 뫼르소 자신을 제외하고 그 사건이 다뤄지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일이 뫼르소의 발언 없이 진행되었다. 누구 하나 뫼르소의 의견은 구하지 않은 채 뫼르소의 운명을 정했다. 뫼르소는 그저 공판과 공판을 보러 온 사람들과 기자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뫼르소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부조리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이 세상의 무의미함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과연 뫼르소가 생각한 것처럼 우리의 삶이 무의미한 것일까?


카뮈는 비록 우리가 무의미한 세상 속에 던져져 있을지라도 어딘가에 분명 의미를 가진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가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방인』은 읽을 때마다 현실의 부조리를 의식하며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삶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