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 6 : 다이달로스 이카로스 탄탈로스 에우로페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6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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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6』의 키워드는 '탐험'인데, 얼핏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탐험이 아닌 것을 찾기 어렵지 않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충 생각해 보아도 탐험과 모험을 어느 정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의 8할 이상은 탐험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굳이 몇몇을 꼽자면, 아마 이 책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십 년이 넘는 타향 생활을 가장 먼저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트로이 전쟁과 그 전쟁의 주역인 오디세우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매우 큰 공로를 세웠음에도 아이러니하게 다른 장수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오랜 시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떠돌았던 비극적인 이야기는 아마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 중 인물이 가장 고생했던 이야기 가운데 으뜸이라 생각되는 것 중 하나인 헤라클레스가 겪었던 일들과 얼추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어떤 관점에서는 더 심하다 여겨질 정도로 참담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런 오디세우스에게 가장 처참했던 사건 중 하나가 이 책에 나오는데, 바로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의 호의로 고향인 이타케에 거의 도달할 수 있었으나 눈앞에 이타케를 두고 또다시 고향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일이다.

아이올로스는 포세이돈의 미움을 받는 오디세우스를 불쌍히 여겨 그의 항해에 방해되는 바람들을 가죽 주머니에 가두고 오디세우스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그 주머니를 열지 않으면 금세 이타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순항 끝에 이타케를 목전에 두게 되었으나, 오디세우스에 대한 질투심에 눈이 먼 부하 몇이 주머니 속에 보물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해 이를 열어 훔치려 하였고, 풀려난 바람들 때문에 배는 부서지며 오디세우스의 표류는 계속된다.



탐험에는 지혜가 꼭 필요한 것이나, 트로이 전쟁을 지혜를 이용해 승리로 이끌었던 오디세우스조차 자신 앞에 놓인 시련을 수월하게 헤쳐 나가지 못한 것을 보면 지혜가 탐험을 위한 모든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지혜, 혹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믿는 과도한 자신감이 때로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탄탈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탄탈로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프리기아의 왕이었다. 탄탈로스는 자신이 신들보다 우월하다는 자만심에 취해 신들 앞에서 거짓 맹세를 하며 속이는 등 각종 만행을 저질렀으나 제우스의 용서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신들을 속일 수 있다는 자만심에 가득 찬 탄탈로스가 자신의 아들을 죽여 신들에게 음식으로 내놓았고, 이에 분노한 신들에 의해 지하세계에서 영원히 갈증과 허기, 두려움에 시달리는 형벌에 처해진다. 탄탈로스를 처벌한 신들은 탄탈로스가 죽인 펠롭스를 다시 살려주었다.


이처럼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는 단순히 용기로만 가득 찬 탐험들만이 아닌, 지혜를 통해 극복해내려 하는 시련들, 자신이 가져온 불행들과 같이 다양한 양상의 사건들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6』을 통해 여태껏 알고 있었던 전형적인 모습의 탐험을 벗어난, 다양한 양상의 탐험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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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5 : 디오니소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5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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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5』의 키워드는 '놀이'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놀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용이 그다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만큼 '놀이'라는 단어를 연관 지으면 생각나는 것들 또한 한정되어 있다. 그중에서 아마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일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이 주로 알고 있듯이 포도주가 상징인 신이기도 하지만, 축제와 같이 즐기는 대부분의 것들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디오니소스는 멋지고 매력적인 신으로 자랐으며 언제나 즐겁고 명랑했다.

디오니소스는 세상에서 포도를 처음으로 재배한 신이었고, 사람들에게 포도밭을 보살피는 방법, 포도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웃음과 축제, 춤과 노래로 생활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보여 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p.51~52


디오니소스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는데, 어쩌면 디오니소스가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인 축제가 다양한 면모를 지니는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포도주의 신이면서 축제의 신이다 보니 디오니소스에 대하여 '술주정뱅이에 놀기를 좋아하는 신'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디오니소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이와는 어쩌면 정반대라고 할 수도 있다.

스승인 실레노스를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미다스 왕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점에서는 온화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카리오스의 대접에 대한 보답으로 포도밭을 일구는 방법과 포도주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에서는 작은 고마움에도 보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마냥 유한 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해적들과 얽힌 일화를 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적들이 디오니소스를 납치해 팔아버리거나 몸값을 받아내려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 중 유일하게 한 명은 디오니소스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어 풀어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다른 해적들은 이를 무시하였고, 결국 자신의 힘을 드러낸 디오니소스에 겁을 먹어 갑판 밖으로 뛰어내렸다. 디오니소스는 이들을 돌고래로 만들어버렸는데, 자신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눈치를 채고 풀어주기를 주장하였던 그 선원에게만은 자비를 베풀었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디오니소스는 자신에게 무례하고 예의를 갖출 줄 모르던 이들에게는 돌고래로 바꿔버리는 것과 같은 벌을 내리는 냉철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경외감을 가지고 예의를 갖추려고 했던 이에게는 그가 해적이었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자신을 납치하려 하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그의 상징인 포도주와 축제처럼 변화가 많은 모습인 것 같다.



'놀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이 진심으로 즐기는 것에는 디오니소스가 관장하는 것들 외에도 여럿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음악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음악이라는 단어와 연관을 지으면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세 단어가 있다. 바로 '아폴론', '뮤즈', '오르페우스'이다. 이 중 전자 둘(정확히는 하나와 집단 하나라고 해야 하는데, 뮤즈는 9명의 여신들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기 때문이다)은 신인데 반해, 오르페우스는 인간임에도 신에 필적한다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녀 말 그대로 죽음조차 감동시킨 인물이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게 물려 죽었고, 상심한 오르페우스는 갖은 방법을 쓴 끝에 지하세계로 찾아가게 된다. 그러고는 괴로운 마음을 담아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에 감복한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오르페우스가 하데스가 금지한 것을 어겨 다시 에우리디케를 잃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페우스는 상심한 가운데 다른 이들에게 맞아 죽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어쩌면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 모두 '놀이'의 아름다운 면과 동시에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면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들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다양한 것들이 제시가 되지만, '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는 것은 그 자체부터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 속에서 '놀이'라는 키워드를 연결 지을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어떠한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놀이'라는 것을 단순히 노는 것만이 아닌, 진심으로 즐기며 좋아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점과,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조차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의 자격을 갖추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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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즈워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0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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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를 졸업하고 자신만의 꿈을 가진 스물여덟의 새뮤얼 도즈워스는 1903년 현재 제니스 기관차 회사의 부감독관으로 있었다. 그는 기술이 발달하여 약 20년쯤 뒤면 자동차가 마차만큼 흔해질 것이라고 예상하여 자동차를 연구해 자동차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기관차 회사를 그만두고 레벌레이션 자동차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어 했다.

그는 일명 제네스시의 귀족들이 이용하는 케네푸스 카누 클럽의 파티에 갔을 때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지만 성장 후 처음 만난 프랜시스 볼커를 보고 감전된 듯 이끌리고 매료되며 운명적 사랑을 느꼈다.

그렇게 그녀에게 관심을 표하며 교류를 시작한 샘은 그해 11월 어느 날 프랜에게 청혼하고 결혼한다.


장인 허먼 볼커의 재산을 등에 업은 샘은 레벌레이션사의 부사장 겸 생산관리자가 되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동차 연구와 생산을 계속해 이후 20여 년간 레벌레이션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 돌풍을 일으키고 베스트셀러 자동차를 만들어내게 하는 주역이 되었다.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샘 도즈워스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쳤다. 바로 샘이 청춘을 바친 레벌레이션사가 수십억 달러의 자본을 가진 유닛 자동차 회사에 흡수합병된 것이다. 샘은 유닛에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다른 동료 임원들의 우려로 유닛에 회사를 넘겼다. 샘은 지배권을 넘기는데 서명하며 이제 더 이상 그는 아무것도 아닌 위치에 있게 되었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어디론가 떠나자는 프랜의 말처럼 떠날 마음을 먹는다.


샘과 프랜은 거대한 증기선을 타고 유럽으로 떠났고, 샘은 드넓은 바다를 보며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그는 그 기쁨을 프랜과 나누고자 했지만 프랜은 짜증을 내며 짐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샘은 프랜을 사랑했지만 프랜은 항상 샘의 기운을 빼고 주눅 들게 했다. 그녀는 교만했고 샘에게 열등감을 심어주었으며 샘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녀는 샘이 좋게 평가하는 인물들은 별로라고 평가하는 반면 샘이 의심쩍어 하는 인물들은 멋지다고 추켜세웠다.

샘은 그런 프랜에게 배에서 새로 사귄 클라이드 로커트 소령을 소개해 주었고, 샘의 예상대로 처음에는 냉랭하고 냉소적으로 로커트를 봤던 프랜이 대화를 해나가면서 열의를 가지고 로커트를 대했다. 심지어 로커트가 그녀를 속물이라고 무례하게 이야기해도 프랜은 로커트의 말에 굴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프랜은 로커트를 보호자 삼아 배 위에서 수많은 남자들을 사귀게 된다.


그렇게 영국에 도착한 프랜은 끊임없이 샘에게 잔소리를 해대고 짜증을 냈다. 호텔을 예약하는 것부터 저녁 식사 초대 손님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샘은 모든 상황을 인내하며 프랜의 놀이 상대를 참을성 있게 물색했다. 그녀는 샘을 못마땅해하며 빈정거리다가도 그를 용서해 주는 대신 호화로운 쇼핑을 했다.

그 후 배에서 만난 로커트가 도즈워스 부부를 사촌인 헌던 경 집에 초대했고, 샘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프랜이 그가 장군이고 귀족이라서 그 집에 꼭 가야겠다고 우겼다. 샘은 점점 더 프랜에게서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헌던 경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순간, 로커트가 프랜에게 우정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다는 확신을 얻게 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프랜에 대해 불편함과 심한 반감을 느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프랜은 과연 샘을 사랑한 적은 있었던 걸까? 그저 샘은 프랜에게 ATM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즈워스』는 도즈워스 부부가 회사를 경쟁사에 매각하고 아들, 딸을 훌륭히 다 키우고 그중 딸을 결혼시키고는 치열한 경쟁과 전투 같은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느끼고 자유로워지고자 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50이 되기까지 일에 매달려 사느라 정작 삶의 여유를 느껴보지 못하고 해외여행도 가보지 못했던 성공한 사업가 샘 도즈워스는 레벌레이션사를 최고로 성장시킬 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상과 사업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샘 자신은 아내 프랜의 눈치를 보고 프랜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소극적인 남자였다. 그런 그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알아가며 자아를 찾아간다.


반면 프랜은 고상한 척 위선을 떨지만 친교라는 미명 아래 외도하며, 실제 뛰어나지도 않는 자신의 능력을 크게 부풀려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과대포장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를 좋아하는 허영심 많고 이기적인 여자였다. 오직 남편만 아니면 여행에서 만난 어떤 남자든 전부 오케이라는 듯, 남자에 굶주린 여자 같다.

또한 자신의 조국인 미국적인 것은 모두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유럽의 것은 유럽의 거지라도 찬양할 듯한 속물적인 프랜의 태도에 속이 울렁거리고 불편해서 이 소설에서 프랜이라는 인물 자체를 도려내고 싶었다.

대체 프랜은 왜 여행을 떠난 걸까? 아마 좁은 지역사회에서 바람피우면 손가락질 당할까 봐 자신을 모르는 해외에서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남자를 만나고 다니고 싶어서 간 것 같다.


20여 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샘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프랜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걸까? 프랜의 부당함과 외도를 알지만 프랜을 단죄하기보다는 샘 혼자서 모든 것을 지고 가려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고 화가 난 와중에 이디스의 등장은 정말 샘이 아닌 독자인 나에게 한줄기 빛 같았다.


유럽으로 떠나는 부부의 여행을 다룬 이야기라고 해서 아름다운 유럽을 배경으로 다시 예전의 사랑을 불태우는 중년부부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도즈워스 부부는 왜 이런 진흙탕 같은 여행을 떠난 걸까? 그렇다고 깨달은 순간 집을 돌아왔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여행을 함으로써 오히려 샘의 인생에 올바른 전환점이 된 것 같아 고구마 수백 개 먹다가 끝에 사이다 한 모금 마신 기분이다.

이 여행으로 도즈워스 부부는 각자 깨닫고 성장한 바가 있지 않을까?

둘은 부부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각자의 길로?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읽고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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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덕후 현정쌤의 50일 드라마 중국어 말하기 : 원어민 어감 살리기 편 - 지금 당장 중국에서 써먹는 100가지 상황별 표현
박현정 지음 / 시대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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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중국어 말하기는 실제 드라마 상에 나온 대본인가요? 중국어 공부하는데 정말 재미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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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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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마다 하나의 테마로 찾아오는 <휴머니스트>의 세계문학 시즌 중 그 두 번째 '이국의 사랑' 시리즈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그중 한 작품이 바로 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니오 크뢰거』이다.

'이국의 사랑'이라는 테마에 걸맞게 이 작품들 또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적 사랑이 아니라 닿지 않는 상대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제목부터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치고는 이미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작가이자 귀족의 작위를 받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힘든 작업 후에 기력을 되찾기 위해 점심 식사 후 산책에 나섰다. 영국 정원을 한참 거닌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차를 기다리면서 그 주변의 광경을 둘러보며 몽상에 빠져들던 중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나무속껍질로 엮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아셴바흐로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국의 휴양지를 꿈꾸며 간 베네치아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바다와 하늘이 우중충했고, 때론 안개비까지 내렸다. 베네치아가 맑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아셴바흐는 리도에 도착한 이튿날에도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즉시 베네치아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침 뷔페식당에 간 아셴바흐는 도착한 날 보았던 아름다운 용모의 소년을 가까이서 보고는 경탄했다. 그리고 해변의 풍광 역시 아셴바흐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마음을 바꿔 리도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베네치아에서의 산책은 아셴바흐의 기분과 결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이에 아셴바흐는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다음날 떠날 생각에 아셴바흐는 잠을 설쳤고, 다음날이 되자 여전히 흐렸지만 공기가 상큼해진 것 같아 떠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후회되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에서 평생 명성을 지향하며 도덕을 중요시 여기고 예술가로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아셴바흐는 이국의 베네치아에서 만난 소년 타지오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타지오와는 다르게 늙고 추한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은 집어던지고 타지오의 마음에 들기만 바라며 자신이 그리 경멸했던 배 안에서 본 화장을 한 노인처럼 화장을 하는 아셴바흐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리 타지오를 향한 거대한 이끌림으로 억눌린 감성과 감각이 길을 잃고 표출되었다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끄떡하지 않던 냉철한 지성이 단지 소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이라는 굴욕적 몸부림을 친 것에 마치 나의 자존심이 스크래치 난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왜 작가는 아셴바흐를 끝까지 고결한 지성으로 지켜주지 못했을까?

그리고 단지 타지오의 아름다움을 경배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실제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까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 크뢰거의 아버지는 영사인 동시에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 시내의 유력인사였다. 친구인 한스 한젠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토니오는 모든 면에서 자신과 다르고 반대인 한스를 사랑했다. 그의 모든 것을 동경하고 사랑했지만 자신을 바꾸고 싶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었다. 토니오는 굳이 한스 한젠처럼 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저 한스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한스는 토니오와 단둘이 있을 때는 겉으로만 친한 척했지만 다른 사람이 오면 토니오에게서 등을 돌리고 토니오와 함께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토니오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토니오 크뢰거는 열여섯 살 때에는 금발의 잉게보르크 홀름을 사랑했다. 토니오는 잉게를 이미 수없이 많이 보아왔음에도, 무용 강습을 위해 마련된 후스테데 영사 부인의 살롱에서 잉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 느끼는 사랑은 예전 한스 한젠을 보며 느꼈던 감정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토니오와 잉게는 서로 달라 낯설고 서먹했지만, 토니오는 변치 않는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한스 한젠에 대한 사랑이 식은 사실을 떠올리고는 지상에서 변치 않는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간다.

할머니에 이은 아버지의 죽음,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해서 멀리 떠나버린 부도덕한 어머니 등 크뢰거 가문의 점진적 해체와 분해로 그를 그 도시에 묶어두었던 죔쇠와 끈이 풀어짐에 따라 토니오 크뢰거는 고향 도시를 떠나는데….



한스 한젠을 사랑했던 것이 그에 대한 동경이었다면, 잉게 홀름을 사랑한 건 어떤 의미였을까? 잉게보르크 홀름은 한스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소녀도 아니었다. 잉게에 대한 사랑은 단지 토니오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토니오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비하하는 게 많다. 자신의 뛰어난 예술성을 비하하고, 시를 쓰는 것을 마치 더러운 죄를 짓는 것처럼 부끄러워하면서 예술을 모르는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동경과 갈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소설은 단지 이국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토마스 만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가진 것은 피곤하고 평범한 게 최고다? 그것은 남들은 가지지 못하고 부러워할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자의식 과잉을 표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예전 어떤 가수의 허세와 자의식 과잉의 셀카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뭐 그런 느낌?

그런 토니오가 낯선 타국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의 도플갱어를 만난 후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다니.

<토니오 크뢰거>는 읽으면서 토니오의 감정에 공감이 느껴지지 않고 난해함을 느껴 당황했다.

다시 한번 정독을 해보고 토마스 만이 말하고자 하는 예술적 고뇌가 무엇인지에 집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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