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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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마다 하나의 테마로 찾아오는 <휴머니스트>의 세계문학 시즌 중 그 두 번째 '이국의 사랑' 시리즈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그중 한 작품이 바로 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니오 크뢰거』이다.

'이국의 사랑'이라는 테마에 걸맞게 이 작품들 또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적 사랑이 아니라 닿지 않는 상대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제목부터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치고는 이미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작가이자 귀족의 작위를 받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힘든 작업 후에 기력을 되찾기 위해 점심 식사 후 산책에 나섰다. 영국 정원을 한참 거닌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차를 기다리면서 그 주변의 광경을 둘러보며 몽상에 빠져들던 중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나무속껍질로 엮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아셴바흐로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국의 휴양지를 꿈꾸며 간 베네치아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바다와 하늘이 우중충했고, 때론 안개비까지 내렸다. 베네치아가 맑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아셴바흐는 리도에 도착한 이튿날에도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즉시 베네치아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침 뷔페식당에 간 아셴바흐는 도착한 날 보았던 아름다운 용모의 소년을 가까이서 보고는 경탄했다. 그리고 해변의 풍광 역시 아셴바흐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마음을 바꿔 리도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베네치아에서의 산책은 아셴바흐의 기분과 결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이에 아셴바흐는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다음날 떠날 생각에 아셴바흐는 잠을 설쳤고, 다음날이 되자 여전히 흐렸지만 공기가 상큼해진 것 같아 떠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후회되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에서 평생 명성을 지향하며 도덕을 중요시 여기고 예술가로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아셴바흐는 이국의 베네치아에서 만난 소년 타지오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타지오와는 다르게 늙고 추한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은 집어던지고 타지오의 마음에 들기만 바라며 자신이 그리 경멸했던 배 안에서 본 화장을 한 노인처럼 화장을 하는 아셴바흐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리 타지오를 향한 거대한 이끌림으로 억눌린 감성과 감각이 길을 잃고 표출되었다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끄떡하지 않던 냉철한 지성이 단지 소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이라는 굴욕적 몸부림을 친 것에 마치 나의 자존심이 스크래치 난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왜 작가는 아셴바흐를 끝까지 고결한 지성으로 지켜주지 못했을까?

그리고 단지 타지오의 아름다움을 경배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실제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까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 크뢰거의 아버지는 영사인 동시에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 시내의 유력인사였다. 친구인 한스 한젠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토니오는 모든 면에서 자신과 다르고 반대인 한스를 사랑했다. 그의 모든 것을 동경하고 사랑했지만 자신을 바꾸고 싶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었다. 토니오는 굳이 한스 한젠처럼 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저 한스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한스는 토니오와 단둘이 있을 때는 겉으로만 친한 척했지만 다른 사람이 오면 토니오에게서 등을 돌리고 토니오와 함께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토니오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토니오 크뢰거는 열여섯 살 때에는 금발의 잉게보르크 홀름을 사랑했다. 토니오는 잉게를 이미 수없이 많이 보아왔음에도, 무용 강습을 위해 마련된 후스테데 영사 부인의 살롱에서 잉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 느끼는 사랑은 예전 한스 한젠을 보며 느꼈던 감정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토니오와 잉게는 서로 달라 낯설고 서먹했지만, 토니오는 변치 않는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한스 한젠에 대한 사랑이 식은 사실을 떠올리고는 지상에서 변치 않는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간다.

할머니에 이은 아버지의 죽음,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해서 멀리 떠나버린 부도덕한 어머니 등 크뢰거 가문의 점진적 해체와 분해로 그를 그 도시에 묶어두었던 죔쇠와 끈이 풀어짐에 따라 토니오 크뢰거는 고향 도시를 떠나는데….



한스 한젠을 사랑했던 것이 그에 대한 동경이었다면, 잉게 홀름을 사랑한 건 어떤 의미였을까? 잉게보르크 홀름은 한스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소녀도 아니었다. 잉게에 대한 사랑은 단지 토니오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토니오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비하하는 게 많다. 자신의 뛰어난 예술성을 비하하고, 시를 쓰는 것을 마치 더러운 죄를 짓는 것처럼 부끄러워하면서 예술을 모르는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동경과 갈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소설은 단지 이국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토마스 만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가진 것은 피곤하고 평범한 게 최고다? 그것은 남들은 가지지 못하고 부러워할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자의식 과잉을 표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예전 어떤 가수의 허세와 자의식 과잉의 셀카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뭐 그런 느낌?

그런 토니오가 낯선 타국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의 도플갱어를 만난 후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다니.

<토니오 크뢰거>는 읽으면서 토니오의 감정에 공감이 느껴지지 않고 난해함을 느껴 당황했다.

다시 한번 정독을 해보고 토마스 만이 말하고자 하는 예술적 고뇌가 무엇인지에 집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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