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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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시인했듯이 그건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되었다. 머나먼 새로운 곳을 향한 동경, 짐을 벗어던지고 잊어버리고 자유롭게 벗어나고 싶은 욕구, 경직되고 차가우면서도 열정적인 일상의 작업장으로부터, 작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었다.

p.15



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오전 동안의 힘든 작업 후에 신선한 공기를 쐬며 기력을 되찾으려는 목적으로 점심 식사 후 산책에 나섰다. 영국 정원을 한참 거닌 후 황혼 무렵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북부 묘지 정류장에서 전차를 기다리면서 그 주변의 광경을 둘러보며 몽상에 빠져들던 중 비잔틴 양식 건물의 주랑에서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나무속껍질로 엮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셴바흐는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그를 무례할 정도로 뜯어봤다. 그 남자가 아셴바흐의 시선에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자 아셴바흐는 그곳을 황급히 벗어났고,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확장되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여행에의 욕구였다.


모든 것을 누릴 경제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삶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창작의 의무에 사로잡혀 자신의 생활권을 멀리 벗어나지 않고 금욕적이고 고독하게 정신과 창작에 몰두하며 살아가던 아셴바흐. 그 삶이 그에게 명예를 가져다주었을지는 몰라도 권태로웠기에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이 그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이 될까, 아니면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 여행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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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미사키 요스케의 귀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6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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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침, 한 남성이 무방비 상태의 유치원에 난입해 유치원생 세 명과 교사 두 명을 칼로 무자비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후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곧바로 몽타주를 작성했으며, 그 용의자가 마약 소지 혐의로 현경 본부 수사부 조직범죄 수사5과가 쫓는 인물임이 드러나며 정체는 곧장 밝혀졌다. 그렇게 용의자 센가이 후히토를 뒤쫓던 경찰은 폐점한 편의점에서 마약을 투약하고 저항하는 그를 체포했다.


올 2016년 7월에 장애인 시설에서 전후 최다 사망자 19명을 낸 살인 사건이 발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포함해 다섯 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데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마약을 악용한 악질적인 센가이 후히토를 향해 언론과 여론은 '헤이세이 최악의 흉악범'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언론과 여론 모두 센가이의 엄벌을 요구하며 검찰에 적절한 대처를 기대했다. 그에 부응해 사이타마 지방 검찰은 아모 다카하루 형사부 1급 검사를 담당 검사로 지목했다.


아모는 검찰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입청 10년차 시니어 검사로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열혈 검사였다.

그러한 아모의 강렬한 출세욕은 사법 연수생 시절 미사키 요스케와 같은 조에 있으면서 그에게서 받은 자극으로부터의 반동이었다. 미사키 요스케는 사법에 관해서나 음악에 관해서 아모가 범접할 수 없는 천재였고, 그런 그에게 굴복했던 자기 자신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에 지금껏 항상 높은 곳만 보며 달려왔다.


아모가 기소할 센가이의 재판의 향방을 좌우할 요인은 센가이의 책임 능력 유무였다. 즉 유치원 습격에 계획성이 인정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논란이 되고 있는 형법 39조의 적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의 범행이 계획적이고 그가 마약을 하기 직전까지 제대로 된 판단력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센가이의 소환 조사 중, 센가이는 다른 부분에서는 명확한 대답을 했지만 정작 사건에 대해서는 범행 당시 기억이 없다는 진술만 되풀이하며 자신의 심신 상실 상태를 계속 주장했다.


그렇게 조사를 진행하는 중 아모는 잠이 쏟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아무리 바빠서 잠을 제대로 못 잤어도 피의자 소환 조사 중에 잠이 쏟아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모는 그렇게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쏟아지는 잠에 당황하며 점점 멀어져 가는 의식과 사투를 벌였고, 옆에서 조서를 작성하던 검찰 사무관 우가는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며 자리를 비운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지만 어느새 정신을 잃은 아모를 누군가 세차게 흔들어 깨웠고, 눈을 뜬 아모는 아연실색하고 만다. 자신의 눈앞에 피의자 센가이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장 길 건너에 있는 현경 본부에서 온 감식반을 비롯한 형사들에 의해 현장 조사가 진행됐다. 흉기로 쓰인 총에는 온통 아모의 지문이 검출됐을 뿐만 아니라 아모가 입고 있던 양복 소매에서는 초연반응도 나타났다. 같이 온 검시관에 의해 센가이의 사망이 확인되자 아모는 검사에서 살인 피의자가 되어 체포되는데…….



이 작품의 이야기는 전작 『다시 한번 베토벤』에서 10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조인의 길을 걸어가려는 자신에게 음악가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용기를 준 아모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미사키는 자신의 스케줄을 모두 뒤로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다.

가끔 문득문득 떠올리던 과거에 동경하던 이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모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얼마나 기대되고 설렜을까?

소설이 중반부를 향해 가는데도 미사키가 살짝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아 그의 등장만 기다리고 있던 나도 그가 나타나 아모를 향해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장면을 보고는 울컥해버렸다.


『다시 한번 베토벤』 이후의 현재의 미사키는 어떻게 변했을까? 아모의 표현처럼 미사키 요스케는 여전히 미사키 요스케일 뿐이었다.

침착하고 진솔하고 예의 바르고 상대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며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 또한 상대를 한없이 신뢰한다. 그러니 미사키와 잠깐의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아모가 희망의 빛을 보며 기운을 차린 것이겠지?

10여 년 만의 갑작스런 미사키의 등장에 당황하며 얼떨떨해하는 아모. 정작 아모 본인은 자신이 미사키에게 음악을 선택할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을 몰라, 미사키가 왜 자신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약속 때문에 거액을 들여가며 자신을 도우려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작가님의 큰 그림이 있었겠지만 읽는 내내 미사키가 왜 사법 연수원을 중간에 퇴소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사법 연수원을 완벽하게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이라도 얻은 다음에 음악가의 길로 들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겨우 몇 개월만 기다리면 가능했을 일이었는데.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더 멋있을 것 같다는 것은 그저 속물적인 내 생각일 뿐이겠지?

미사키 요스케가 등장하면서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는 설렘과 전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는…. 꼭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떨림과 흥분과 전율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소설은 크게 아모의 살인 혐의를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지만,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일본의 형법 39조의 이야기는 심신 상실에 관련된 법의 맹점에 대해 고민하게 했고, 국민감정을 살피는 것과 대중영합은 별개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심신 미약으로 인한 형의 감경, 특히 음주 후 심신 미약으로 인정받아 감경 받는 사건이 계속해서 되풀이되어 발생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마신 것이므로 심신 미약이 절대 적용되지 않는데, 한국만 유독 술에 취해 저지른 사건의 경우 심신 미약으로 감경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두순 사건'같은 말도 안 되는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의 정서를 읽고 꼭 올바른 방향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렇게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독성이 좋은 것과 동시에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인기 주인공인 악덕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 법의학자 미쓰자키 교수, 경시청 수사1과 이누카이 형사 등이 등장하는데 미사키가 그들을 집결시킨다.

그들은 이 소설 속에서도 무시 못 할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역할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잘 해낸다. 그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미사키가 한 데로 모아 웅장하고 강렬하게 더욱 증폭시키며 정점을 찍는, 그야말로 제목처럼 베토벤의 〈합창〉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나카야마 시치리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종합선물 같은 소설이니 후회 없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제 미사키 요스케가 귀환했으니 앞으로의 그의 새로운 활약이 기대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너무나 아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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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
다케시타 후미코 지음, 스즈키 마모루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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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오카 켄은 집에서는 '켄의 가출 사건'이라고 부르지만 본인은 홀로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두 살 때부터의 여행을 시작으로 홀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

지금은 혼자서 아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켄의 아빠는 건설 회사 직원으로 해변가에 새로운 큰 호텔을 짓는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다. 그래서 평소 일이 바빠 집에 잘 오지를 못하는 관계로 켄이 엄마를 졸라 혼자 아빠에게 가게 된 것이다. 홀로 여행이 처음이 아님에도 엄마는 켄이 출발하기 전 몇 번이나 주의 사항을 이야기했다.


드디어 열차는 출발했고 켄은 왠지 자신이 조금 더 자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깥 경치를 구경하고 가다 보면 아빠가 마중 나와 있을 역까지는 금방일 것이다.

몇 개의 역을 지나 열차가 정차했고 손님들이 탔다. 그런데 켄의 비어 있는 옆자리에 고양이가 와서 앉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는 켄에게 말을 걸며 켄의 목적지를 물었다. 켄은 비록 상대가 고양이기는 했지만 어른이기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켄은 종착역 하나미사키 역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고양이는 하나 앞의 역인 아라이하마 역에서 내린다고 했다. 고양이는 자신을 '후루야 산호랑'이라고 소개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켄이 지금 아빠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말하자 산호랑은 자신은 보물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산호랑은 켄에게 어떤 지도를 보여주며 자신이 억새바람 영감으로부터 그 지도를 얻게 된 경위와 그것이 바다고양이족의 보물 지도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서 켄에게 보물을 찾으러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는데…….







이 책은 켄이라는 소년이 홀로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에 산호랑이라는 고양이를 만나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와 함께 실려 있는 삽화는 검은 펜으로만 그린 그림인데, 그렇기에 왠지 더 정감 가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몽골몽골한 옛 추억을 더듬는 듯한 기분…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이 그림체를 보며 어떤 기분을 느낄까?


산호랑과 켄은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데, 일확천금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보물을 찾는 모험은 그 기대만으로도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게 해서 가치가 있고 좋은 것이었다.

즉,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보물이라는 알맹이가 아닌 보물을 찾아 나선다는 낭만과 도전, 즉 결과물보다는 그것에 도전하는 행위와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보물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고 한 단계 더 나은 성장을 이루어 그들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기에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갑자기 어떤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거센 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시련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산호랑과 켄은 보물을 찾기 위해 어떤 모험을 할까?

그들은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나는 산호랑의 정체가 더 궁금한데….

자~, 산호랑과 켄과 함께 보물을 찾으러 갈 준비가 되었나요?





*출판사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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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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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평범한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서 광신주의자가 유치원에 들이닥쳐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을 향해 소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을 시발점으로 인간 세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내전이 발발한 것은 물론이고, 인간 사회 질서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그러자 거리에는 쓰레기가 쌓였고, 쓰레기 더미에서 바퀴벌레와 해충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때 지하의 쥐들이 슬금슬금 지상으로 올라와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쥐들은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며 페스트를 퍼뜨렸지만 광신주의자들의 손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죽임을 당한 인간 사회는 감염병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인간의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고양이 바스테트는 고양이와 인간, 개, 돼지, 앵무새의 힘을 한데 모아 연합군을 형성한 후 프랑스를 점령해 버린 쥐들에 맞서 세상을 구하겠다는 목표로 치열한 전투를 거듭했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쥐들에게 계속 밀리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쥐들의 극악무도한 왕인 티무르가 바스테트의 목에 걸려있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확장판>을 저장해 놓은 USB를 노리는 바람에 결국은 <마지막 희망>호라는 대형 범선을 타고 프랑스를 떠나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그들이 행선지를 뉴욕으로 정한 이유는 미국의 인간들이 초강력 쥐약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달한 뉴욕은 그들이 떠나온 프랑스 파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쥐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뉴욕의 쥐들은 거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있는 범선까지 헤엄쳐 공격해 왔다. 이에 배 위에 타고 있던 고양이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들의 승객들은 결사항전을 하였고, 결국 바스테트와 집사 나탈리, 나탈리의 커플 로망 웰즈 교수, 바스테트의 파트너 샴고양이 피타고라스, 바스테트의 아들 안젤로, 바스테트의 경쟁상대인 암고양이 에스메랄다, 앵무새 샹폴리옹 이렇게 일곱을 제외하고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항전의 잔해들을 정리하고 사체들을 정리한 뒤, 나탈리와 로망은 특별히 가까웠던 인간들과 동물들의 소박한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렇게 잠시 폭력으로 점철됐던 하루를 뒤로하고 쉬려고 하는데 멀리 해안의 한 고층 빌딩에서 반짝이는 불빛, 모스 부호가 보였다.

맨해튼 빌딩의 인간들은 바스테트 일행과의 몇 번의 신호 교환 후 빌딩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으로 드론을 활용해 로프를 묶어 빌딩 꼭대기로 끌어올려 주겠다고 하였다.


먼저 나탈리와 바스테트, 안젤로, 피타고라스가 로프에 묶인 의자에 앉았고, 그렇게 빌딩 위로 끌어올려지던 중 갑자기 바람이 거세져 의자가 크게 요동치더니 로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의자가 아찔한 높이의 허공에서 흔들리자 나탈리는 의자를 부여잡았고, 바스테트는 나탈리를 피타고라스와 안젤로는 바스테트의 양 뒷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고 의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바스테트는 자신에게 매달린 고양이들이 버겁게 느껴졌고, 슬그머니 피타고라스가 매달려 있는 뒷다리의 힘을 덜 주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피타고라스는 괴성을 지르며 추락한다. 그때 바스테트의 아들 안젤로가 말한다.

「후유, 엄마, 우린 이제 살았어요.」



나는 『고양이』에서 시작한 <고양이 시리즈>를 한 편도 읽지 못하고 시리즈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행성』을 처음으로 읽었다.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행성』만 따로 읽어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소설을 시작했다.


일단 소설은 가독성이 엄청나게 뛰어나다. 내가 소설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성』은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며 흥미진진하고 기발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엔 고양이 바스테트가 인간과 소통하며 자신이 모든 동물들의 리더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단순히 바스테트가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착각인 줄 알았다.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카툰을 보면 인간과 그들이 키우는 애완동물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지만 제3자인 관객이나 독자들이 볼 때는 묘하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그런 상황을 상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혹성 탈출>처럼 인간 문명이 멸망하여 인간이 완전히 침팬지 같은 동물들의 노예가 된 상황도 아니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고양이가 지배자인 것처럼 행동을 하니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라니.

하지만 인간들은 예로부터 마치 본능처럼 계층을 나누고 상대를 차별했던 것처럼, 공정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 바스테트는 오만하며 능력도 성격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이기적인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능한 자신의 모습을 거짓과 눈가림으로 적당히 포장해 다른 종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는 모습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동물들을 과감히 희생시키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들을 보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흔히들 잘못된 모습들을 보이는 정치인들에게 따끔하게 정치를 잘못 배웠다고들 말하곤 한다. 바스테트가 자신이 불리할 때 떠올리는 그녀 어머니의 대처 방법들을 보고 바스테트는 어머니로부터 인생 사는 법을 잘못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테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반사이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의 계획이었던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바스테트는 절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

과연 2권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운명에 맞닥뜨리게 될까?

그들은 쥐 떼들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과연 지구의 패권은 누구에게로 돌아갈까?

모두가 만족하는 엔딩을 바라며 2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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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 외롭지 않은 혼자였거나 함께여도 외로웠던 순간들의 기록
장마음 지음, 원예진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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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배우이자 작가 장마음님이 외롭지 않은 혼자였거나 함께여도 외로웠던 순간의 기록들을 엮은 에세이 집이다.

읽고 있노라면 이유는 다르지만 그러한 감정을 가졌었다는 점에서 지난날의 어린 내 모습들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나는 짜여진 고등학교 생활을 벗어나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나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서 도전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인생의 의미와 내 존재의 가치에 대한 갑작스런 고민으로 외로움과 고독, 고뇌, 공허함 같은 감정을 많이 느끼며 혼자이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모든 젊은이들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 번씩은 거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작가처럼 사랑이 끝난 후에 밀려드는 상실감으로 혼자가 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사랑으로 힘들었던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파 혼자가 되고 싶다는 감정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런 사랑을 하지 못했던 내 지난날이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상실감과 분노, 괴로움, 우울감 심하게는 무기력함까지 글자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가 있는 느낌이다.

작가는 이별의 아픔과 상실감으로 인해 헤어진 상대의 불행이 영원하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상대도 작가도 행복하지 않으면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가 이별로 불행한 만큼 상대도 똑같이 불행의 자리에 머무르길 바란다는 것일까? 아니면 상대가 더 이상 발전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한 것일까?

아름다운 이별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무너졌기에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애달팠다.

가끔 사랑의 상실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만큼 불같은 사랑은 못했지만 차라리 못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페이지가 뒤로 넘어가면서 작가는 내적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저 아프고 힘들다는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으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던 작가지만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을 느끼고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외롭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스스로가 가끔씩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혼자 오롯이 자신과 마주해 자신과의 내면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사랑이 끝나서 고독하고 외로운 것만은 아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전부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삶의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 자체의 고독과 소외감과 허무감은 짙어질 것이다.



솔직한 감정을 편안하게, 하지만 생각과 감정을 잘 갈무리해서 적어 내려간 장마음 작가님의 에세이를 보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춘인 것이 아닐까.

작가님의 이야기로 지친 삶의 위안을 얻으며, 작가님의 더 풍만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내일을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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