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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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우타카이에서 큰이모 다치하라 다카코를 만난 와카바야시 유키는 다카코로부터 두 달 전 애견과 산책하던 중 괴한에 의해 목을 졸려 살해당한 이모부 다치하라 교고의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양자이자 손자인 시후미가 교고를 살해한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원래 시후미는 다치하라 부부의 외동딸인 미나코가 낳은 아들이었다. 미나코는 아버지 교고의 뜻을 거스르고 야반도주하여 자신이 사귀던 애인 사이키 아키라와 결혼해서 시후미를 낳았다. 당시 연극을 하던 사이키는 잘생긴 외모에 팬도 제법 있었지만 극단 일로만 먹고살기는 빠듯해 호스트바에서도 일했었다.

그러나 시후미가 태어나고 얼마 뒤 극단은 해체되었고 호스트로 잘나가기에도 한물가버린 사이키는 미나코의 기둥서방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사이키는 늘 술에 취해 살았고 어린 시후미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이에 미나코는 시후미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시후미를 데리고 이혼한다.


반년 뒤 미나코는 아버지 교고가 소개해 준 다치하라 법률 사무소의 미타 다다히코와 재혼했고 시후미는 어머니와 양아버지의 보살핌 아래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6년 후 미나코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시후미는 미타 집안을 나와 조부모 다치하라의 양자가 되었다.


교고는 시후미가 양자가 되었을 때부터 친부 사이키처럼 될까 봐 불쌍할 정도로 엄하게 대했다. 시후미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교고가 보는 앞에서 교고의 물건을 빌려 사용했다. 또한 교고의 방침으로 용돈도 받지 못했고 엄격한 귀가 시간 때문에 방과 후 친구랑 놀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외출다운 외출도 못했다. 대학교 전공도 시후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교고가 마음대로 정했다.

다카코는 이런 시후미의 사정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잘 알았지만 남편의 뜻을 거스르거나 시후미를 감싸주지도 않고 철저하게 방관자처럼 지냈다.

그런데 남편이 불행한 사고로 죽은 뒤 장례식에서, 고개를 숙이고 분향하면서 조용히 웃고 있는 시후미를 발견한 것이다.


다카코의 의뢰로 시후미의 범행 가능성과 사건 당일 알리바이 조사를 하던 유키에게 다시 시후미의 친부 사이키의 죽음 소식이 날아든다. 유키는 사이키가 죽은 사건 현장에 가 보았다가 그곳이 시후미와 관련 있는 인물 고구레 리쓰의 소유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이 소설은 아동 학대와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제발 틀리기를 바랐던 나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아니 틀리기에는 이야기 전개 중에 사건의 단서가 너무 많이 나와 있다.

그들의 불행에 읽는 내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우울한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거기다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남을 이용하고 죽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책을 읽어갈수록 가슴을 옥죄어 드는 답답함을 토로할 길이 없어 몇 번씩 책을 덮고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여기에 나온 어른들의 등이 전부 그릇된 모습이기 때문일까?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불행한 삶에 발을 들인 아이들은 피해자였지만, 그들 스스로가 행복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올바르지 않은 방법을 택한 순간부터 그들은 결코 피해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들의 '편'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한 도구로 죽임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던 사람을 죄책감 없이 죽인 시점부터 그 아이들은 더 악랄한 가해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마땅히 죽임을 당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판결은 이미 내려졌다는 유키의 생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어린 그들을 정신적, 육체적 폭력으로부터 지켜줄 진짜 어른이 없었다는 사실에는 깊은 슬픔과 동정을 느끼지만,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꼭 합당한 벌을 받았으면 한다. 그들의 범죄에 '피해자였기에 당연히 남을 죽여도 된다'라는 면죄부가 주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끝났는데 나의 착잡한 마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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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오너러블 스쿨보이 1~2 - 전2권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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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상 최고의 첩보 시리즈라고 불리는 영국 정보부의 스마일리와 러시아 스파이 카를라의 대결 시리즈인 <카를라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나는 겁도 없이 첫 번째 작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읽지 않고 이 책부터 손댔다가 초반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버벅거리며 많이 헤맸다. 끝없이 쏟아지는 그들만의 은어를 보며 '아니, 남들이 듣는 것도 아니고 지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왜 굳이 은어를 쓰는 거야?'라며 진심으로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그른 것 하나 없었다. 소설이 대략 1챕터를 넘어가면서 나도 소설의 흐름과 은어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소설 읽는 속도와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었던 수많은 내적 갈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일단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닌 실제 스파이 세계를 최대한 섬세하고 현실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태까지 영화나 소설로 흔히 접해왔던 정형화된 스파이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전역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첩보 이야기와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생생한 심리와 상황 묘사는 오히려 이 이야기야말로 진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리얼한 현실이라는 생각에 더욱 집중하며 소설에 빠져들 수가 있었다.

그러나 소설은 제리의 헌신과 활약에도 불구하고 과연 누구와 무엇을 위한 작전이었는지 허무함과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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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어른들을 위한 화학 이야기 - 엄마 과학자 윤정인의 생활 밀착 화학 탐구서
윤정인 지음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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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화학물질을 접한다. 그중에는 목말라서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을 구성하는 플라스틱 고분자 화합물도 있고, TV나 인터넷 광고에 나오는 OLED 디스플레이도 있고, 그러한 광고를 보는데 이용하는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의 각종 구성 요소도 있다.


이렇게 많은 화학물질들 속에서는 의약품처럼 사람들에게 이로운 작용을 하는 것도 있고, 반대로 흔히 환경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내분비계 교란물질과 같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물질들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화학물질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도, 그렇다고 딱히 이익을 주지도 않는다.

일일이 세다가는 이름만 대충 나열하는 데에도 며칠 꼬박 밤새우는 것은 각오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화학물질들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으며, 그 종류가 급격하게 늘어난지는 대략 10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날이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발견되고, 또 기존에 있던 화학물질들의 부작용과 같은 것들이 밝혀지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화학물질이라는 개념 자체에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일부를 꺼려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해롭고 이로운 것의 구분을 현명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괜히 근거 없는 두려움에 우리에게 이로운 것들을 배척하고, 잘못된 기준 때문에 정작 피해야 할 것들은 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 많은 어른들을 위한 화학 이야기』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화학물질들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점들을 고치고, 불완전하게 알고 있거나 모르고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채워 넣어주어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는 화학물질들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하고 이용하게 되는 의약품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열 작용을 하는 의약품으로는 타이레놀과 부루펜 등이 있다. 타이레놀은 유효 성분이 아세트아미노펜이고, 부루펜의 유효 성분은 이부프로펜이다.(유효 성분이란 특정 의약품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성분을 가리킨다)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모두 해열 진통 작용을 하며, 이부프로펜은 추가로 소염 작용도 한다.


이러한 해열진통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는 바로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열이 나더라도 내성이 생길까 봐, 또 해열진통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약해질까 봐 해열진통제를 먹이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으로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모두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성이 생긴다고 느끼는 이유는 진통 작용을 유지하기 위해 통증이 나아졌는데도 계속 복용하면 진통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인데 이를 내성이 생겨서 그런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약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픈데 내성이 생기거나 자연 치유력이 감소할까 봐 의약품 복용을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현대인들은 '방부제'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거부감을 표시한다. 음식물이나 의약품에 방부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면 앞뒤 재지도 않고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부제가 무작정 나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의약품과 화장품, 그리고 장시간 보관해야 하는 음식물 등에는 무조건 방부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관 과정에서 변질되어 이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한 양의 방부제가 포함되어 있으면 인체에 해로운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설탕이나 소금 같은 각종 조미료부터 시작해서 물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위 사진의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심지어 물조차도 과하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통되는 의약품들은 모두 식약처의 철저한 검사를 통해 포함된 물질과 그 안정성을 확인받은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유통될 수 있기에 이러한 약들은 걱정 없이 이용해도 된다.



주부들이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자극하여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하게 만드는 제품 중 하나가 바로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일 것이다. 코팅 프라이팬에는 유독 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들먹이며.

그런데 과학적으로는 코팅 프라이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아는가?


마케팅에서 코팅 프라이팬의 유해성을 언급할 때 항상 걸고넘어지는 것이 테플론이라는 불소화합물이다. 그러나 실제 독성이 있는 것은 테플론이 아니라 테플론 합성 공정에 사용되는 보조제 PFOA였다.

이것은 듀폰의 화학물질 무단 방류 사건으로 촉발되었는데 <뉴욕 타임스>와 영화 <다크 워터스>로 인해 PFOA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은 정점에 찍는다.

이에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 PFOA는 테플론 공정상에서 어쩔 수 없이 잔류하지만 그것은 안전한 수준이라고 확인되었다. 그러나 테플론이 위험하다고 인식해버린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테플론 공정에 PFOA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제는 테플론을 프라이팬 코팅에 이용하는 경우는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430℃의 높은 온도로 가열해 남은 불순물도 모조리 제거한다고 한다.

이 책의 뒤에는 이렇게 안전한 코팅 프라이팬을 안심하고 쓰는 사용법과 주의사항이 자세히 나와 있다.



위에 언급한 내용 외에도 이 책에서는 공기 청정기보다 중요한 환기, 자외선 차단제, 편리하지만 인류 최대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플라스틱, 슬라임, 충치를 막는 불소, 계면활성제, 화장품, 락스와 비누,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 등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화학제품들에 대해 정확한 화학 지식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화학물질 속에 둘러싸여 살지만, 정작 화학물질이 어떻게 이롭고 해로운지를 잘 알지 못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이용되는 물질들에 대한 잘못된 오해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는 『걱정 많은 어른들을 위한 화학 이야기』를 통해 괜한 걱정으로부터 해방되고 화학물질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불편함을 겪거나 손해 보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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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2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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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와의 작전회의 끝에 제리 웨스터비는 리카르도의 여자였던 리지 워딩턴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캐내려 시도한다. 그는 리지가 위스키를 팔았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인 척 가장하며 리지에게 접근했고, 그녀에게 리카르도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리카르도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음을 이야기하지만, 리지는 리카르도가 비행기 추락으로 죽었다고 일축하며 자신이 그에게 위스키를 팔았다면 이렇게까지 그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내심 의아해하며 그를 의심했다. 그것은 그녀가 드레이크 코의 측근인 관리인 티우를 그 자리에 불러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 사람은 아슬아슬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도발하는 듯 모욕적인 티우의 발언들을 무시하며 제리는 리지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고 결국 자신의 최종 목적인 러시아의 돈에 대해 물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8일 후 스마일리를 필두로 버로어들이 각자 자신의 보스 주변에 모여 앉아 총회를 열었다. 거기서 독 디샐리스가 통칭 넬슨 코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넬슨의 성장과정과 러시아의 눈에 띄어 인재로 양성된 것, 더불어 그가 러시아의 호의를 많이 받은 만큼 극심하게 몰락해 숙청당했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국 넬슨은 두뇌와 기술적 노하우, 경험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1973년 초에는 공식적으로 복권되며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에서 알려지지 않은 자격으로 활동하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스마일리는 넬슨이 카를라의 두더지라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제리는 작전 수행 후 현장 요원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죄책감과 표적 인물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화를 리지를 향해 느끼며 이 작전이 끝나면 리지 워딩턴과 잘 될 가능성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루크의 전화를 받고 살인 사건 현장으로 간 제리는 그곳에서 은행 신탁 담당자인 프로스트의 시체를 마주한다. 프로스트는 왜 죽은 것일까? 강도? 영국 정보부? 그것도 아니면 카를라?

취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간 제리에게 루크가 다시 전화해서 전쟁지역으로 가라는 스텁시의 전보 내용을 전한다. 그렇게 제리는 홍콩을 떠나 전쟁 지역인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을 누비며 코의 흔적을 뒤쫓는데….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스마일리의 지휘 아래 그와 공조하여 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드레이크 코를 뒤쫓고 파헤치는 제리의 본격적인 첩보활동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첩보 공작원으로서의 제리는 우리가 첩보영화에서 흔히 접했던 냉철하고 완벽한 스파이는 아니다. 그는 고뇌하고 상처 입기도 하지만 자신의 조국이 쇠락한 지금 자신과 같은 귀족 계급이 그 책임을 짊어지고 조국을 위해 일하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무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영국을 위해 일하던 제리가 리지 때문에 자신이 가졌던 신념과는 다른 뜬금없는 선택을 하는 것을 보고 이럴 거면 '그깟 신념 입에 올리지 말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자신의 개인적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 충족과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대의를 내세운 것뿐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제리가 사랑에 빠지는 리지에 대해서 공감이 안 갔다. 사랑은 부지불식간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지만 한 번의 접근으로 절박하게 리지에게 빠져들어 사랑을 느끼게 된 포인트가 무엇이지? 표적 인물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화? 한 번으로? 첩보활동하다가 서사 없이 뜬금없는 갑분사랑이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현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해도 역시 소설은 소설이라는 건가?

그래 놓구 위층 여자에게 구애하고 같이 밤을 보낸 뒤 잠든 그 여자를 바라보며 리지를 그리워하는 이 혼란스러운 애정의 작대기는 무엇?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대결구도로 시작되었던 소설은 뒤로 넘어가면서 드레이크 코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이 첩보 활동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케 한다. 과연 드레이크 코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제리의 선택은? 영국 정보부를 정상궤도로 올리려 했던 스마일리의 운명은?

소설은 크게는 상충되는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만 결국엔 그 속에서 존재하는 개인들의 욕심으로 점철된 이해관계가 얽혀 자아내는 비극을 보여주는 것 같다.

왠지 모를 허무함이 가슴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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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개정판 밀실살인게임 1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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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컴퓨터에서 인터넷 화상 채팅을 통해 비디오추리회의를 한다. 가상의 살인사건이 아닌 그들 중 범인을 맡은 사람이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진짜 살인을 저지르고 이야기를 공개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야 한다. 네 사람이 각자의 답을 말하거나 서로 힘을 합쳐 하나의 답을 내놓는 방식으로 추리게임은 진행된다.

단, 답은 논리적으로 추리해서 증거에 기초한 설명이 있어야지 어림짐작으로 내놓은 답은 인정되지 않는다.


다스베이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두광인, 영화 《13일의 금요일》에 등장하는 살인마 제이슨처럼 하키 마스크를 쓴 aXe, 잭 푸트렐의 소설의 등장인물인 탐정 오거스터스 S. F. X 반 도젠을 데포르메 해놓은 노란 아프로 모양 가발에 소용돌이치는 장난감 안경, 가짜 면도 자국을 그린 마스크를 입가에 부착한 반도젠 교수, 자신의 모습 대신 투명한 수조에 든 늑대 거북을 화면에 비치게 해놓은 잔갸 군, 유일하게 웹캠 앞에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지만 화면을 흐릿하게 만든 콜롬보 경위의 애차의 차량번호를 닉네임으로 가진 044APD가 추리 게임의 참가자들이다.


제일 먼저 문제의 출제를 맡은 aXe는 마쓰오 아즈미라는 전문대생을 교살한 후 그녀의 기본적인 사항과 사건 현장의 사진들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제공하며 범인이 다음으로 누구를 죽일지 묻는다. 그는 나머지 네 명에게 3일 동안의 추리 시간을 주고는 그 시간 동안 사건의 법칙성을 알아내 정답을 맞히면 다른 사건의 발생을 막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두 번째 살인을 일으키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단 한 건뿐인 살인사건에서 어떠한 법칙성도 발견할 수 없었고, aXe는 예고했던 대로 두 번째 살인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이번에는 대담하게도 인파로 붐비는 도쿄 전철 야마노테선 안에서 희생자를 칼로 찌르는데….



이 책은 독자의 선입관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반전의 진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작가 우타노 쇼고의 작품이다.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밀실 살인 게임』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봤고 이 책의 존재를 알고들 있었다지만 부끄럽게도 추리소설 마니아를 자청하는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책에 대해 알고 읽게 되었다. 나는 추리소설은 좋아해도 마니아는 아니었나 보다.😅


그저 단순히 인터넷상에 몇 명이 모여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서로의 추리를 이야기하는 소설을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가 너무나 당황했다.

처음부터 소설은 등장인물이 저지른 살인의 법칙성에 대해 묻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잠깐! 진짜라는 거야 뭐야. 추리게임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라며 정신없어하는 사이에 살인사건은 계속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논하는 그들의 잔혹성과 대담성과 태연함에 소름 끼치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들은 아무런 원한이나 목적 없이 그저 단순히 문제를 만들고 자신들이 고안한 트릭을 적용하고자 실제 살인을 저지른다. 더군다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마치 트로피처럼 성공한 살인과 그 트릭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주인공인 두광인도 2년 가까이 탐정놀이를 하고 있고 실제 살인도 저질렀다. 아니, 중학교 때 과학실에서 훔쳐낸 비소를 교사들에게 실험하고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동급생의 열쇠를 훔쳐내 벌인 알리바이 트릭을 실천하고 쾌감을 느꼈던 일까지 포함하면 10년 가까이 일명 탐정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들이 일으킨 살인 사건들은 그들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보여주었다. 특히 잔갸 군은 평소 추리게임에서의 공격적인 대화와 그의 닉네임이 보여주는 것처럼 너무 끔찍하고 잔학한 살인 사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렇게 자꾸 발생하는 살인사건에 대한 거부감만 참아낸다면, 그들이 일으킨 사건의 트릭이 밝혀졌을 때 다시 사건 하나하나를 되짚어 퍼즐을 끼워 맞춰보며 무릎을 치게 된다.

'아! 이래서 그런 단서를 던져 줬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경찰은 범인이 누군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한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렇게 사이코패스들의 향연이 될 것 같은 소설은 반전을 맞이한다. 과연 어떤 반전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될까?

소설을 끝내고 나니 다음 작품인 『밀실 살인 게임 2.0』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등장인물들의 엽기적 살인 행각을 참아낼 비위가 강하고 강심장을 가진 미스터리 추리 마니아들은 주저 말고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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