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청춘
정해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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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물류 회장 주석호는 첫사랑에 실패한 이후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성공을 위해 고집스레 앞만 바라보고 달리며 청춘을 바쳐 한국 굴지의 회사를 일궈냈다. 그런데 평소 건강을 위해 피트니스로 몸을 단련하고 전문 조리사의 건강관리 식단을 먹으며 건강관리를 했음에도 65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치료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3개월, 길어야 6개월을 살 수 있다는 선고를 받는다.

석호는 버텨낼 자신도 있었고 버텨야 했다. 호시탐탐 자신을 회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주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궈 낸 회사를 지켜내야 했다.

물론 회장직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물러나도 회사에 타격이 없도록 자신의 회사 경영 이념을 관철시킨 뒤 차근차근 보기 좋은 모습으로 내려오고 싶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병은 가장 믿을만한 김범주 사장 외에는 비밀로 한 채 바쁜 업무 중에도 고통스럽고 힘든 항암치료를 병행했음에도 한 달 반 만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외로이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억울하다'


그런데… 찰진 욕설과 '짝'하는 소리와 함께 등에 느껴지는 고통으로 눈을 떠보니 눈앞에서 천사 같은 여인이 일어나라며 성화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죽어 사후세계에 왔나라는 생각에 주위를 돌아봤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초라하고 작은방에 있었다. 이런 곳이 천국 일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완력을 행세하던 천사 같은 외모의 여인은 자신이 엄마라며 일하러 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간다.

석호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몰라 하다가 무심코 들여다본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거울 속에는 생전 본 적 없는 잘생긴 외모의 소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석호는 계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있던 방을 뒤져 자신이 있는 몸이 누구의 몸인지 알아낸다.

고등학교 2학년 '김유식'

살아 돌아왔다. 하늘이 기회를 준 것이다. 석호는 꽃다운 청춘을 즐겁게 누려보지 못한 자신의 억울함을 하늘이 알고 선물을 주신 거라고 생각했다.


죽은 지 하루 만에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더운 8월의 날씨에 홀로 죽은 예순다섯의 자신을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뉴스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자신의 시체는 발견될 것이었고, 자신이 고독사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면 회사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변 정리도 끝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이 원래 살던 집으로 갔다.

자신의 고급 아파트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려 했지만 자신이 보안을 위해 달았던 지문 인식 시스템만 있는 현관 잠금장치에 막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자신의 최측근인 김범주 사장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그러나 정문으로 회사 출입하는 것을 저지당한 석호는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를 통해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자신의 차에서 내리는 김범주 사장을 보게 된다. 그리고 곧이어 그를 따라 내리는 65세의 주석호를 만나게 된다. 바로 자신이 들어가 있는 김유식의 영혼이 65세 주석호의 몸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유식으로부터 65세 주석호의 몸에 나타난 100이라는 숫자가 99로 변했음을 듣고는 18세 유식의 몸에 나타난 숫자 표식을 확인하는데…….




이 소설은 성공을 위해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는 65세 대기업 회장 주석호와 편모슬하 가난한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풍족하고 기깔나는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18세 소년 김유식의 영혼이 뒤바뀌어 백 일의 삶을 더 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가진 게 없던 석호는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매사 긴장하고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며 한 번도 인생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며 경제적 성공을 이룬다. 그러나 그렇게 쉼 없이 일만 해오던 중 죽음을 맞이하며 청춘이라는 게 뭔지 즐겨보지 못하고 일만 했던 삶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유식과 바뀌어 살아가는 백 일이 자신에게 놀지 못한 청춘을 즐기라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겪고 생활하며 진정한 청춘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저 놀기만 하는 것이 청춘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닥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청춘인 것이었다.


유식 또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폼 나게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에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돈 많은 석호의 몸으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원하는 '기깔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철없이 기뻐했다.

그러나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생면부지의 석호와 생활하고 석호를 보면서 진정한 '기깔나는 삶'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많은 사람들을 지켜내고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던 진정한 기깔나는 삶이라는 것을.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르고 누구에게든 삶의 후회는 있을 수 있으니 우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산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이다.


어쩌면 석호에게 있어서 백 일은 가족의 사랑을 느끼라는 하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유식과 은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석호는 유식과 유식의 엄마 은희와 같이 생활하며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 속에서 자신이 살면서 진정 누리지 못했던 따스한 온기와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석호는 자신의 외로웠던 첫 죽음의 순간을 위로받는 순간 그들과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작가는 나중에 조금 더 상황이 좋아지면 표현하리라 미룰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서로 사랑을 표현하며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은 중간중간 섞여 있는 코믹한 요소들로 웃음을 주는 동시에 진정한 가족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참을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고 있다.

재미와 감동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은 소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진정 멋진 삶을 산 주인공 주석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동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난 지금껏 청춘을 잃어버렸던 게 아니라 청춘을 살아냈던 거야."

p.306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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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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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런. 그래도 힘내렴. 어차피 진흙투성이 신발이었잖니."

바바라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말해도 빨간 모자는 이제 화를 낼 기운도 없었습니다.

p.11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빨간 모자는 조금 전에 만난 바바라 라는 마법사 할머니가 마법을 써서 빨간 모자의 허름해 보이는 빨간 망토를 예쁜 옷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자신이 평소 마음에 들어 하던 옷이므로 옷 대신 신발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낡은 지팡이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 신발이 예쁘기는커녕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설상가상 더러워진 신발을 냇가에서 빨던 빨간 모자가 순간 신발을 놓치며 신발은 순식간에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데….


빨간 모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마법사 할머니가 신데렐라에 나오는 마법사 할머니에다가 연이어 신데렐라를 만난다.

기발하게 다른 동화들의 등장인물들과 접점을 만들며 빨간 모자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참신한 이야기를 만났다.

과연 빨간 모자는 여행에서 어떤 모험을 하며 어떤 활약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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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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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괴담은 여름에 많이 유행하지만 겨울의 문턱에서 나온 괴담이라니 이건 정말 이야기에 자신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생각됩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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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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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니 3245.12에 대한 심스 뱅코프의 사업권이 박탈되면서 심스 뱅코프 컴퍼니의 피고용인으로서 콜로니에 이주해 살아가던 주민들에게 30일 후에 이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컴퍼니 대리인들은 주민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며 모든 것이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그들의 다음 이주지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고 다음 이주지를 결정한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아들의 성화에 회의에 참석해 투표했지만, 콜로니의 개척민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했던 그녀는 40년이란 세월을 산 콜로니에 그냥 남기로 결심한다.


다음날 컴퍼니는 이주민들에게 갈 곳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29일 안에 떠날 준비를 마치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1인당 짐을 29킬로그램만 가져갈 수 있고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다며 재통보를 한다. 오필리아의 아들과 며느리는 짐을 싸느라 바빴지만 이미 남겠다는 결심을 한 오필리아는 사람들이 떠나간 후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것을 벗어던지는 상상을 하며 아들 부부의 짐을 싸는 것을 도우며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들 바르토와 며느리 로사라는 컴퍼니가 자신의 어머니 오필리아가 너무 늙어 일을 못한다며 퇴직이라는 표현을 쓰며 계약자가 아닌 오필리아를 위해 자신들이 이주 비용을 낼 수 없으니 그 비용을 아들 부부 앞으로 달아놓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들 부부의 빚으로 남는 것이었다.

컴퍼니가 그런 계약서에 관한 규칙을 이야기한 적도 없었기에 오필리아는 분노를 느꼈다. 공식적인 직업은 없었지만 그녀는 아들 부부를 위해 집안일에 관한 모든 것을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오필리아는 자신은 남을 것이라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들의 극심한 반대에 더 이상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못하고 속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이주 닷새 전 컴퍼니의 또 다른 거짓말이 드러났다. 30일 후에 시작된다던 이주는 그전에 시작되었고 행성을 완전히 비우기까지가 30일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컴퍼니는 아들 부부와 오필리아의 탑승 셔틀을 다르게 배치했다. 아들 부부는 컴퍼니 대리인들에게 어머니 오필리아와 함께 셔틀을 타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오필리아는 그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이주 마지막 날 결국 먼저 셔틀을 타고 떠나가는 아들 부부는 오필리아에게 늦지 말라는 당부를 했고, 오필리아는 다 괜찮을 거라고 아들을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될 것임을 생각했다.


아들 부부가 떠나간 뒤 오필리아는 줄을 서는 셔틀 탑승자들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짐을 싼 다음 숲으로 가서 숨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콜로니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고 전기까지 끊겨 있었지만 오필리아는 센터의 발전소 제어실로 가서 메인 스위치들을 조작하여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서도 오필리아는 자신이 바라던 자유를 누리며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오필리아는 시간감각을 잃었고 어느 날 결국 캘린더를 보기 위해 통제실 로그 파일을 열어 기록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끔 무언가 쓰고 싶을 때, 생각나는 지난 시절의 진짜 이야기를 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센터의 제어실 회색 상자들 가운데 하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콜로니 3245.12의 북쪽 지역에 새로운 이주민을 실은 셔틀이 도착해 착륙한다는 무전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지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100여 개체의 아주 큰 갈색 괴동물들이 습격해 새 콜로니에 착륙한 이들을 전부 죽이는 현장의 참상도 생생히 전해 듣게 되는데….



여태껏 외계인과 조우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어린이나 청년들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잔류 인구』는 인간 사회에서 나이가 들어 퇴직하여 쓸모없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노인 오필리아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삶의 연륜을 내세워 외계인과의 친화를 강조했다.

그녀는 다른 젊은 인재들처럼 학식이 뛰어나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외계인들을 선입견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인간을 바라보는 동등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교류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인간은 인류애를 내세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인가 보다. 이 소설을 보면 컴퍼니와 정부 지도자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익 창출의 도구와 수단으로 여긴다. 그러니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라도 공생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으리라.

콜로니 사무국에서 파견한 이들은 괴동물들이 인간의 친구가 아니라 외계인, 자생종이라며 못박는 오만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실수라 하더라도 외계인들의 둥지를 파괴하고 그들을 죽여 놓고 미안해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는 권한은 원래부터 그 행성에 살았던 종족인 괴동물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인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이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오만함에서 나온 태도이며 엄연한 침략행위였다.


하지만 지능을 가진 외계 <종족>들은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그들의 둥지체를 파괴했고, 그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막으려 하고 그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배운 것 없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흔한 할머니일 뿐이라며 무시당하는 오필리아가 외계 <종족>에게 인정받은 유일한 딱-카우-키이어, 둥지 수호자로서 인류 역사에 어떤 업적을 이뤄낼까?

미래에 인류가 우주에 콜로니를 만들며 개척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외계인을 처음 발견하여 위기를 겪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진 삶의 끝에 서 있는 노인을 통해 소통하여 공존에 성공하며 새로운 시대를 이뤄나간다는 참신한 설정이었다.

이 책을 읽고 오필리아를 보며 다시 한번 나 자신과 인생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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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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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에서 사토하라는 미즈타니와 함께 길거리에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를 가지러 자신의 집보다 가까운 할아버지 집에 가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찾는다. 그런데 우유를 꺼내려다 실수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드신 벚꽃절임 병을 쳐서 떨어뜨렸다. 할머니는 작년 여름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벚꽃절임은 할머니가 만드신 남아있는 유일한 벚꽃절임이었다.

할아버지는 올해도 분명 벚꽃차 마실 날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었다.

사토하라는 바닥에 꿇어앉아 엎질러져 먼지와 머리카락이 뒤섞여버린 벚꽃절임을 긁어모아 병에 다시 담아 들고 조용히 할아버지 집을 빠져나와 미즈타니에게로 달려가는데….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은 사토하라의 심경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사건이다.

작년 가을에 전학 온 가와카미는 학교에서 늘 그림의 세계 속에 있다. 다른 여학생들이 그리는 만화풍 일러스트가 아닌 실사를 마치 사진처럼 정밀하게 잘 그린다. 가와카미가 전학 왔을 때 다른 아이들이 가까워지려 했지만 가와카미는 거부하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만의 그림의 세계에 갇혀 홀로 지낸다. 그런 가와카미가 자신의 아버지가 파친코 게임장에 못 다니게 하고 싶다며 방과 후에 미즈타니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초등학교 운동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운동을 못하는 사토하라는 운동회가 평생 오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이다. 5학년이 되기까지 네 번의 운동회에서 이겼는지 졌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아무런 의지 없이 운동회에 참석한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는 마음으로 대충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서로 수준이 비슷하게 팀을 나눴음에도 이번 운동회에서는 청팀과 백팀의 점수 차가 유례없이 벌어졌고 이대로 가다가는 청팀의 참패가 확실했다. 이에 같은 청팀이자 같은 반 중심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난폭하고 드세고 제멋대로인 와타베가 승부욕을 드러내며 5학년 기마전에서 꼭 승리하여 득점을 해야 한다며, 어제 기마전에서 적팀의 모자를 빼앗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손을 뻗지 않고 자신의 모자를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미쓰하시를 다그치며 으름장을 놓는데….

그리고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사토하라는 가와카미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3학기 들어 학교에 퍼지기 시작한 저주의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1학기에 학교에 다녔던 가와카미가 죽었는데 그 가와카미의 귀신이 붙은 책을 끝까지 읽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괴담이 실제인 것처럼 나돌았다.

내용인즉슨 아빠로부터 학대를 당하던 가와카미가 결국은 아빠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그 후 자신을 구해 주지 않은 아이들을 원망하며 저주의 책에 원한이 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즈타니는 소문을 들은 아이들이 흔한 괴담과 도시전설을 적당히 조합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냉정하게 분석했지만 사토하라는 미즈타니의 그런 냉철함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은 반 친구 구로이와가 저주의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 자신에게 벌어진 이상한 일을 이야기하며 해결책을 구하고자 미즈타니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봄방학에도 여전히 미즈타니하고만 어울리는 사토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은 딱히 하는 것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데 멀리서 3학기 말에 전학 갔던 옆반 학생 이다가 미즈타니를 향해 뛰어오더니 자신의 네 살짜리 동생이 행방불명되었다며 찾아달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다의 사건이 해결된 후 드디어 사토하라는 자신을 억누르던 사건의 진실을 대면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화자는 사토하라로 같은 반 친구인 '신'이라 불리는 미즈타니가 친구들의 곤란한 일을 해결해 주는 과정을 옆에서 보며 독자에게 그대로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네 편의 짧은 단편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고,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토하라와 미즈타니의 1년의 학교생활 중에 나온 이야기들이므로 결코 동떨어지지 않고 예전 사건들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의 고민과 문제 해결을 보여주는 소설이기에 자칫 가볍고 유치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라고 추측한다며 전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소설 속 문제를 해결하는 '신'이라고 불리는 미즈타니는 5학년 중에서 키가 제일 작지만 어른보다도 더 어른 같다. 그는 항상 추리를 시작할 때는 코밑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확실히 수수께끼 냄새가 나는걸."하고 특유의 대사를 한다.

아이들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미즈타니와 상의한다.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푸념 섞인 이야기들도 많다. 그러나 미즈타니는 무슨 이야기든지 아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잘 들어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함께 고민해 준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힌트를 놓치지 않고 찾아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아맞히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것은 아마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부분이 아닐까?

어른들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가볍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치부해 버리지만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길잡이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은 미즈타니를 '신'이라 부르지만 미즈타니는 항상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한다.

사토하라는 그런 미즈타니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미즈타니를 따라다니며 실제 그를 '신'이라 부르지는 않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미즈타니를 '신'같다고 여기고 동경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화자 사토하라의 고뇌의 원인이 되는 가와카미 사건.

사토하라는 세상 풍파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부모의 보호를 당연한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사토하라는 어른들의 보호가 자신이나 일반적인 아이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아빠를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할 만큼 어린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폭력을 휘두른 가와카미의 아빠.

가와카미를 괴롭힌 것은 잠시 참을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자신의 미래의 꿈 따위는 포기해 버릴 수 있을 만큼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었던 아빠로부터의 폭력과 그것으로 인해 아이가 느꼈을 절망과 공포.

가와카미는 고양이가 아빠에게 학대를 당하는 광경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그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그동안은 자기가 맞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되는 모순된 감정을 느끼며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로 인해 생기는 자기혐오로 정신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사토하라는 보호받지 못하는 가와카미를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지만 자신이 한 그걸로 충분했을까, 어딘가에서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까지 가와카미 아빠의 폭력에 휘말릴까 두려워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아직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만 될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왜 이런 고민에 괴로워해야 할까.

아이는 어른에게 의지해도 된다. 아니 의지해야 한다. 아직 미성숙한 단계이니 어른들이 보호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과 세상을 천천히 가르쳐줘서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


고뇌하는 사토하라는 미즈타니는 '신'이니까 항상 옳다고 믿고 싶었고, 그래서 가와카미에 대한 자신의 조치도 '신'인 미즈타니가 동의한 일이었기에 자신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음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리하여 미즈타니가 틀리는 경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미즈타니와 그를 뒤에서 좇는 사토하라의 관계는 미즈타니의 날카로운 지적과 사토하라의 고뇌와 심리적 성장으로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됨을 암시한다.


미즈타니는 자신이 항상 옳지 않지만 두려움 없이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미즈타니는 정말 멋진 작은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관찰자의 역할만이 아닌 고뇌와 깨달음을 거쳐 한걸음 성장하는 사토하라의 이야기도 너무 흡입력 있게 전달되었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라고 절대 색안경을 쓰지 않고 읽기를 바란다.

다음 후속편이 나오기를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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