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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21/pimg_7114282153199311.jpg)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사토하라는 미즈타니와 함께 길거리에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를 가지러 자신의 집보다 가까운 할아버지 집에 가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찾는다. 그런데 우유를 꺼내려다 실수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드신 벚꽃절임 병을 쳐서 떨어뜨렸다. 할머니는 작년 여름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벚꽃절임은 할머니가 만드신 남아있는 유일한 벚꽃절임이었다.
할아버지는 올해도 분명 벚꽃차 마실 날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었다.
사토하라는 바닥에 꿇어앉아 엎질러져 먼지와 머리카락이 뒤섞여버린 벚꽃절임을 긁어모아 병에 다시 담아 들고 조용히 할아버지 집을 빠져나와 미즈타니에게로 달려가는데….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은 사토하라의 심경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사건이다.
작년 가을에 전학 온 가와카미는 학교에서 늘 그림의 세계 속에 있다. 다른 여학생들이 그리는 만화풍 일러스트가 아닌 실사를 마치 사진처럼 정밀하게 잘 그린다. 가와카미가 전학 왔을 때 다른 아이들이 가까워지려 했지만 가와카미는 거부하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만의 그림의 세계에 갇혀 홀로 지낸다. 그런 가와카미가 자신의 아버지가 파친코 게임장에 못 다니게 하고 싶다며 방과 후에 미즈타니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초등학교 운동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운동을 못하는 사토하라는 운동회가 평생 오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이다. 5학년이 되기까지 네 번의 운동회에서 이겼는지 졌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아무런 의지 없이 운동회에 참석한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는 마음으로 대충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서로 수준이 비슷하게 팀을 나눴음에도 이번 운동회에서는 청팀과 백팀의 점수 차가 유례없이 벌어졌고 이대로 가다가는 청팀의 참패가 확실했다. 이에 같은 청팀이자 같은 반 중심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난폭하고 드세고 제멋대로인 와타베가 승부욕을 드러내며 5학년 기마전에서 꼭 승리하여 득점을 해야 한다며, 어제 기마전에서 적팀의 모자를 빼앗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손을 뻗지 않고 자신의 모자를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미쓰하시를 다그치며 으름장을 놓는데….
그리고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사토하라는 가와카미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3학기 들어 학교에 퍼지기 시작한 저주의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1학기에 학교에 다녔던 가와카미가 죽었는데 그 가와카미의 귀신이 붙은 책을 끝까지 읽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괴담이 실제인 것처럼 나돌았다.
내용인즉슨 아빠로부터 학대를 당하던 가와카미가 결국은 아빠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그 후 자신을 구해 주지 않은 아이들을 원망하며 저주의 책에 원한이 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즈타니는 소문을 들은 아이들이 흔한 괴담과 도시전설을 적당히 조합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냉정하게 분석했지만 사토하라는 미즈타니의 그런 냉철함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은 반 친구 구로이와가 저주의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 자신에게 벌어진 이상한 일을 이야기하며 해결책을 구하고자 미즈타니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봄방학에도 여전히 미즈타니하고만 어울리는 사토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은 딱히 하는 것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데 멀리서 3학기 말에 전학 갔던 옆반 학생 이다가 미즈타니를 향해 뛰어오더니 자신의 네 살짜리 동생이 행방불명되었다며 찾아달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다의 사건이 해결된 후 드디어 사토하라는 자신을 억누르던 사건의 진실을 대면하게 되는데….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21/pimg_7114282153199312.jpg)
이 소설의 화자는 사토하라로 같은 반 친구인 '신'이라 불리는 미즈타니가 친구들의 곤란한 일을 해결해 주는 과정을 옆에서 보며 독자에게 그대로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네 편의 짧은 단편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고,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토하라와 미즈타니의 1년의 학교생활 중에 나온 이야기들이므로 결코 동떨어지지 않고 예전 사건들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의 고민과 문제 해결을 보여주는 소설이기에 자칫 가볍고 유치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라고 추측한다며 전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소설 속 문제를 해결하는 '신'이라고 불리는 미즈타니는 5학년 중에서 키가 제일 작지만 어른보다도 더 어른 같다. 그는 항상 추리를 시작할 때는 코밑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확실히 수수께끼 냄새가 나는걸."하고 특유의 대사를 한다.
아이들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미즈타니와 상의한다.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푸념 섞인 이야기들도 많다. 그러나 미즈타니는 무슨 이야기든지 아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잘 들어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함께 고민해 준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힌트를 놓치지 않고 찾아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아맞히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것은 아마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부분이 아닐까?
어른들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가볍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치부해 버리지만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길잡이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은 미즈타니를 '신'이라 부르지만 미즈타니는 항상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한다.
사토하라는 그런 미즈타니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미즈타니를 따라다니며 실제 그를 '신'이라 부르지는 않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미즈타니를 '신'같다고 여기고 동경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화자 사토하라의 고뇌의 원인이 되는 가와카미 사건.
사토하라는 세상 풍파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부모의 보호를 당연한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사토하라는 어른들의 보호가 자신이나 일반적인 아이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아빠를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할 만큼 어린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폭력을 휘두른 가와카미의 아빠.
가와카미를 괴롭힌 것은 잠시 참을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자신의 미래의 꿈 따위는 포기해 버릴 수 있을 만큼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었던 아빠로부터의 폭력과 그것으로 인해 아이가 느꼈을 절망과 공포.
가와카미는 고양이가 아빠에게 학대를 당하는 광경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그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그동안은 자기가 맞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되는 모순된 감정을 느끼며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로 인해 생기는 자기혐오로 정신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사토하라는 보호받지 못하는 가와카미를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지만 자신이 한 그걸로 충분했을까, 어딘가에서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까지 가와카미 아빠의 폭력에 휘말릴까 두려워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아직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만 될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왜 이런 고민에 괴로워해야 할까.
아이는 어른에게 의지해도 된다. 아니 의지해야 한다. 아직 미성숙한 단계이니 어른들이 보호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과 세상을 천천히 가르쳐줘서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
고뇌하는 사토하라는 미즈타니는 '신'이니까 항상 옳다고 믿고 싶었고, 그래서 가와카미에 대한 자신의 조치도 '신'인 미즈타니가 동의한 일이었기에 자신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음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리하여 미즈타니가 틀리는 경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미즈타니와 그를 뒤에서 좇는 사토하라의 관계는 미즈타니의 날카로운 지적과 사토하라의 고뇌와 심리적 성장으로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됨을 암시한다.
미즈타니는 자신이 항상 옳지 않지만 두려움 없이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미즈타니는 정말 멋진 작은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관찰자의 역할만이 아닌 고뇌와 깨달음을 거쳐 한걸음 성장하는 사토하라의 이야기도 너무 흡입력 있게 전달되었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라고 절대 색안경을 쓰지 않고 읽기를 바란다.
다음 후속편이 나오기를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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