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는 숙녀 두 사람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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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참가비 남자 7천 엔, 여자 5천 엔만 받고 열린 아키가와 제1중학교 동창회가 동창 중 스캔들 메이커인 국회의원 히사카 고이치의 이미지 세탁을 위한 정치쇼를 연출해 주는 대가로 히사카 고이치의 후원을 받아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호텔 중 하나인 후지미 임페리얼 호텔의 비취홀에서 눈부시게 호화롭고 화려하게 열렸다. 고노시노 호나미는 간사인 무로하시 겐지에게 언짢은 기색을 표하며 동창회장을 국회의원의 쇼장으로 팔지 말라는 말을 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에 빨리 가라는 무로하시의 말에 호나미는 이왕 이런 동창회에 왔으니 본전이나 뽑고 가겠다며 화려한 동창회를 즐길 준비를 했다.

무로하시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히사카의 건배사에 맞춰 동창들은 모두가 잔을 들이켰고, 다음 순간 호나미는 소화기관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자신처럼 쓰러져있는 다른 동창들의 모습을 보았다.

호나미가 어렴풋이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이었고, 병원 관계자로부터 동창회 참석자 중에서 자신을 포함해 세 명만 목숨을 건졌고 나머지 열일곱 명은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6월 20일, 여행사의 '도가리 수타 소바와 온천'이라는 저렴한 1박 기획 여행 상품으로 버스 여행을 떠나는 쓰지쿠라 부부는 자신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70대 부부부터 여성 직장인 그룹까지 주위 남녀노소의 모습들을 관찰했다. 개중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혼자 참가한 여성도 있었다.

버스 가이드 다카하마 유키미의 센스 있는 안내와 원활한 교통흐름으로 순조로운 여행길에 오른 버스는 예정대로 약 3시간 후 마쓰시로 휴게소에 도착했고, 관광객들은 화장실이나 푸드코트, 쇼핑 코너를 돌며 휴식시간을 가진 후 예정된 25분이 지난 후 버스에 승차했다. 그러나 운전석 뒤에 앉았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 승객은 돌아오지 않았고, 버스 가이드가 30분 이상 휴게소를 샅샅이 뒤지며 찾았음에도 찾지 못하자 버스는 그 여자 승객을 남겨둔 채 목적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휴게소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노 인터체인지에 다다랐을 무렵, 쓰지쿠라 부부는 운전석 바로 뒷좌석이 폭발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7월 27일 오후 11시 30분이 넘어 오오쓰카 히사히로는 익숙지 않은 길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걸어가서 목적지인 중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건물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오오쓰카는 그래도 누가 있을까 주변을 잘 살펴본 뒤 담장을 넘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건물에 숨어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절도나 파괴를 위해 숨어든 것이 아니었으므로 오오쓰카는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보수적인 자신의 직업에서 오는 반작용으로 몸속에서는 불법을 저지른다는 배덕감이 피어오르며 희열감이 감돌았다.

오오쓰카는 CCTV나 센서에 걸리지 않고 교무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교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7월 28일 밤 1시 15분, 아키가와 제1중학교에서 대형화재가 일어나 4층 중 1층은 거의 전소되었고, 2층은 절반이 불에 탔다.


8월 10일, 오기노 다에코는 야마기시 목욕탕에서 '야마기시 피트니스 클럽'으로 개조한 헬스장에서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원래 대중목욕탕에서 욕조를 떼어내고 타일 바닥을 플로어링으로 교체한 정도인데다가 자금 부족으로 트레이너가 없어 헬스장은 한산했다. 아마 이곳도 이전 목욕탕처럼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것임이 불 보듯 뻔했다.

다에코가 운동으로 쌓인 피로를 쫓으며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 집중하는 순간 '쿵'하는 소리와 엄청난 진동과 함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벽에 엄청난 속도로 내동댕이 쳐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도 하기 전에 다에코는 정신을 잃고 만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비웃는 숙녀 시리즈가 『비웃는 숙녀 두 사람』으로 돌아왔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두렵고 이질적인 존재인 가모우 미치루에 더해 우도 사유리까지.

이 책에서 가모우 미치루와 우도 사유리는 수사본부를 비웃으며 대규모 연쇄 테러 사건을 저지르는데, 그들은 살육과 파괴에 아무런 공포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희열을 느끼며 즐긴다. 그들이 남긴 히사카 고이치의 숫자 '1', 다카하마 유키미의 '2', 오오쓰카 히사히로의 '3', 후루미 지카의 '4'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들이 대규모 연쇄 테러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가 끝나 가도록 수사본부는 사건의 동기는커녕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의 본질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수사관들의 모습이 너무 무능해 보이며 그들의 답답함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가모우 미치루와 우도 사유리의 잔악함에 머리가 지끈거렸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밤에 자다가 두 번이나 가위에 눌렸으니.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사건을 계획한 진짜 주범과 사건 동기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 〔다음 편에 계속~〕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끝날까 가슴 졸이며 읽어나가는데, 소설의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여 사건 해결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구세주 같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소설을 통해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두 사이코 악녀들의 연합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라는 미코시바 변호사의 말처럼 흔들리고 균열이 가 서로에게 반격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우도 사유리는 당당하게 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밝히며 번호표 '5'의 사건을 예고한다.

그리고 시작된 가모우 미치루와 우도 사유리, 두 악녀 간의 대결.

무엇을 예상하고 상상하든 그 이상의 악의 세계가 『비웃는 숙녀 두 사람』 안에 펼쳐진다.

모두 함께 용기를 가지고 진정한 악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물어뜯어 주마."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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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 - 유전자 가위 3큰술, 창의력 2큰술, 최첨단 과학 풍자 1/2큰술
폴 뇌플러.줄리 뇌플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책세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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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단순한 의문, 호기심, 또는 그냥 도전 정신으로 시작을 한다. 단순히 용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발단은 저자인 폴 뇌플러의 딸이 중학교 과학시간 발표 과제로 '용 만들기 프로젝트: 재미 혹은 세계정복을 위해'라는 주제를 선정하면서부터였다(역시 부모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일까, 중학교 발표 주제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내용이다). 폴 뇌플러와 그의 딸 줄리 뇌플러는 발표 이후 진지하게 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였고, 그 방법으로 줄기세포와 유전자 조작 등을 생각해냈지만 끝내 용을 만드는 것의 윤리적 문제 등을 생각하며 이에 대한 생각을 접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생각의 과정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일련의 생각들을 이 책에 담긴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하면서 정말로 현실에서 용을 만들려고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누가 봐도 용처럼 보여야 하고, 거대하지만 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불을 뿜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용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제시된 문제점 중 하나로는 하늘을 나는 능력이다.

솔직히 말해서 옛날이야기까지 전부 털어 보았을 때 날지 못하는 용이 어디 있던가? 단지 현실에서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에 있는, 사람보다 거대한 수준의 코모도 드래곤조차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거기서 더도 말고 평범한 코끼리 수준으로 크기가 키워진다고 생각해 보라. 자칫 잘못하면 저자가 말한 대로 '투석기에서 쏘아 날아간 소처럼 '철퍼덕' 떨어져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떻게' 날게 만들어야 하는가이다. 그에 대하여 저자는 깃털로 이루어진 새와 닮은 날개부터 날다람쥐나 날도마뱀, 박쥐 등의 것과 닮은 비막을 제시하며 각 방식의 장단점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용이 잘 날지 못할 경우 제트팩을 달아주거나,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해 GPS도 달아주는 편법이 있다는 말로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비행에 대한 내용을 가벼운 유머로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이렇게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완벽한 날개를 만들어주고 또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용 만들기가 끝일까?

이렇게 탄생한 용이 만약 머리가 나빠서 제대로 비행하는 법은 둘째치고 착지조차 잘 못하고, 더 나아가 막대한 덩치와 힘, 그리고 불(만약에 불을 뿜을 수 있게 된다면)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부수고 다니고 '고질라나 킹콩'처럼 난리를 벌인다면, '차라리 용이 없었으면'하고 빌게 되지 않을까?

그런 문제가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용의 지능을 담당하는 뇌이다.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는 이렇게 용 만들기에 관련된 모든 과학적 지식을 본문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윤리 문제까지.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한글로 번역된 제목은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인데, 맨 마지막 단어인 '레시피'에 꽂혀서 앞에 있는 '크리스퍼(CRISPR)'가 '크리스피(crispy, 바삭한)'로 보였을 정도였다. 영어 제목을 읽고서야 그나마 책의 주제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하지만 의아함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보통 '용', '드래곤' 등의 단어는 '마법', '신화', '주술' 등의 단어와 어울리지 '과학', '줄기세포', '유전자' 등의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저자의 의도가 이해가 됨과 동시에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과 이를 과학과 연관 지어 이만큼 세세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을 써낸 창의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누가 용을 판타지 속에만 국한되는 것이라 했던가!

이 책은 과학적으로 용을 낱낱이 분석하는, 매우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에게 선보인다. 그것과 동시에 용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그 실험이 어떠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며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가 용을 만들려는 것도, 또한 용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목적은 단지 새로운 과학 분야를 지나치게 맹신하고 부풀리는 과학을 풍자하고 윤리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 과학적 상상력을 끝없이 펼치는 것이라고 했다.


자! 우리 다 같이 자신만의 용을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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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양승욱 지음 / 오렌지연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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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매일 10분만으로 필요한 인문학 지식을 채울 수 있다니 너무 기대되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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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30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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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여름날 오후 한중간, 영국 시골 저택 터치트 가의 가든코트 잔디밭에서 늙은 터치트 씨와 그의 아들 랠프와 랠프의 친구 워버턴 씨가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그 저택은 에드워드 6세 시절 지어졌으며 위대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룻밤 묵었을 정도로 이름과 역사가 있었다. 크롬웰 전쟁 당시 손상되었으나 왕정복고 시절 복구되고 확장된 후 18세기 개축되면서 꼴사납게 손상되었다. 그러나 20년 전 미국인 은행가 터치트의 손에 넘어가 신중한 관리를 받으며 지금은 저택의 진정한 심미적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하던 도중 터치트 부인이 미국에서 조카딸을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터치트 부인은 금융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남편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것을 살피러 미국에 갔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죽은 여동생의 딸들의 상황을 살펴보러 올버니의 저택에 들렀다. 몇 년 전 여동생이 죽은 후 제부인 아처 씨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뒤 일절 연락하지 않고 지내왔으나, 그가 죽은 후 조카딸들을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침 올버니 저택의 처분을 맡은 첫째 릴리언과 그녀의 남편 에드먼드 러들로가 잠시 외출한 상황이었고, 집에 홀로 있던 이사벨은 서재에서 책을 선택해 사무실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져가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작스런 낯선 여인의 방문을 받은 이사벨은 그녀가 집을 보러 온 부인인 줄 알았지만, 이내 자신의 이모 터치트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모를 무시하는 생각을 갖고 자란 이사벨은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모에게 정신 나갔다는 표현을 쓰며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러나 터치트 부인은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응하며 이사벨에 대해서나 그녀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릴리언은 이미 뉴욕 출신의 변호사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상태였고, 둘째인 에디스 역시 미국 기관 장교의 아내가 되어 있었으므로 릴리언은 이모인 터치트 부인이 자신의 여동생 이사벨을 유럽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랐다.

이사벨은 자만심에 빠지기 쉬운 아가씨였다.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곤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가 찬사를 보내곤 했다. 전체적으로 이사벨의 지식은 빈약했고, 이상은 드높았다. 그녀는 독단적이었고, 남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표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보스턴 출신의 캐스퍼 굿우드를 거절하고 이모인 터치트 부인을 따라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영국으로 떠난다.


터치트 씨 저택에 온 이사벨은 아침나절에 여행해서 기진맥진했지만 영국에 온 들뜨고 흥분된 기분으로 밤이 되도록 쉬러 가지 않고 저택에 있는 그림들을 보여달라고 랠프에게 청했다. 랠프는 저녁이어서 어두워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며 다음 날 화랑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이사벨은 굳이 당장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랠프의 안내로 그림을 본 후 이사벨은 자신이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자신의 얄팍한 배움에 대해 다분히 건방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유럽에 온 이유가 될 수 있는 대로 행복해지기 위함임을 밝힌다.


랠프는 미국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다시 옥스퍼드에 다녔다.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이로 옥스퍼드에서 발군의 성적을 보이며 터치트 씨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옥스퍼드 졸업 후 약 2년간의 여행 후 아버지 은행의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약 18개월 후 그는 독감에서 야기된 폐병으로 자신의 건강이 아주 심각한 상태임을 알게 되었고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이렇게 시들어만 가는 것 같던 랠프의 삶에 등장한 이사벨은 그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갖게 했다.


워버턴 경은 터치트 부자의 초대를 받고 가든코트에서 이틀간 머물렀고 이사벨은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워버턴 경이 돌아간 후 이사벨은 랠프에게 워버턴 경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워버턴 경에 대한 관심을 표했지만 랠프와 터치트 씨는 워버턴 경이 그가 자신의 대단한 위치를 이용해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며 그의 급진주의적 성향에 우려를 표했다.

얼마 후 이사벨은 랠프와 그의 모친과 함께 로클리에 방문했고, 점심 식사 후 워버턴 경은 집을 구경시켜 주면서 자신이 이사벨에게 매료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구애를 했으나 이사벨은 냉정하고 차갑게 대답하는데….



여인의 초상에서 이사벨은 독립적이고 이상이 높고 똑똑한 아가씨로 나온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허영심과 자만으로 가득 찬 여성인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주변인들이 본래 그녀의 모습보다 그녀를 과대 포장해서 보거나 그녀에 대한 소문을 부풀려 내곤 했지만, 그녀는 그것이 잘못된 소문임에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남들이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찬사를 보낼 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남들이 자신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벨은 스스로 독립적임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터치트 부인의 금전적 지원이나 터치트 씨가 남긴 유산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대체 어느 부분이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시대가 달라 현대에서 말하는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의미가 그때 그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 이사벨의 어느 부분을 보고 똑똑하고 독립적이라고 표현하는지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더욱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대체 왜 워버턴 경과 굿우드 같은 사람의 청혼을 거절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집과 독단에 사로잡혀 있으니 상황과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좋은 사람들은 전부 무시하고 마담 멀이나 오즈먼드 같은 최악의 인간에게 끌리는 것을 과연 똑똑하고 현명한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들이 전부 NO라고 말하는 잘못된 길을 혼자 옳다고 주장하며 수렁으로 걸어들어가는 이사벨을 보며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여인의 초상(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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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열린책들 세계문학 243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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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팔리시에는 어린 시절에는 르아브르에 살았지만 의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어머니와 미스 애시버턴과 함께 파리에서 살았다. 그러나 허약했던 제롬을 걱정한 어머니는 매년 여름이면 파리를 떠나 르아브르 퐁괴즈마르에 있는 뷔콜랭 외삼촌 댁에서 머물렀다.

외삼촌 댁에는 외삼촌 부부 외에 제롬보다 두 살 위의 외사촌 알리사와 한 살 아래의 쥘리에트, 가장 어린 로베르가 있었다.

식민지 태생의 외숙모 뤼실 뷔콜랭은 어렸을 적에 보티에 목사 부부가 거두어 르아브르로 데리고 왔었다. 그 후 외국에서 일하던 외삼촌이 집에 돌아왔을 때 보티에 집안의 양녀였던 어린 뤼실을 보고 첫눈에 반해 청혼했다. 보티에 부인은 갈수록 이상해지는 뤼실이 자신의 친자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외삼촌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뤼실은 지금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지만 제롬의 어머니는 그녀의 행실 때문에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제롬 역시 외숙모 곁에 가면 야릇한 거북함과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그녀를 경계했다.


제롬은 알리사에게 이끌렸고, 그것은 그녀가 예쁘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가진 어떤 다른 매력 때문이었다. 제롬은 쥘리에트와 로베르와 주로 같이 놀았고, 알리사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롬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년 뒤의 부활절 방학을 어머니와 함께 르아브르에 있는 플랑티에 이모 댁에서 머물며 외삼촌 댁을 왕래하며 지냈다.

하루는 제롬이 외삼촌 댁에서 점심을 먹고 이모 댁으로 돌아오니 어머니와 이모가 외출 중이어서 제롬은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가 문득 좀 전에 헤어졌던 알리사가 보고 싶어 외삼촌 댁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어준 하녀는 외숙모가 발작을 일으켰다며 제롬이 위층으로 가는 것을 말렸지만, 그는 알리사의 방에 가기 위해 하녀를 뿌리치고 올라갔다. 알리사의 방으로 가기 위해 지나친 외숙모의 방에서 제롬은 외숙모가 자신의 발치에 쥘리에트와 로베르를 세워둔 채 군복 차림의 낯선 사내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알리사는 울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제롬이 본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외숙모는 그 남자와 도망을 가버렸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앓아온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시작된 부활절 방학 동안 제롬은 플랑티에 이모 댁에서 묵었고, 이모는 제롬에게 알리사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그 둘 사이를 돕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모를 따라 외삼촌 댁에 머물게 된 제롬은 이모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 외삼촌 댁에 머물며 그 여름을 지냈다. 그리고 파리로 떠나기 이틀 전 제롬은 쥘리에트와 정원을 거닐며 알리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나 약혼 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예전 자신이 외삼촌과 알리사와의 대화를 엿들었던 지점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감정에 빠져 쥘리에트의 말 속뜻을 알아차릴 겨를 없이 자신의 말만 떠벌렸다. 이야기 도중 쥘리에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롬의 어깨에 기댔고, 제롬은 그녀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 오려는 순간 창백한 얼굴의 알리사가 허둥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알리사의 태도에 걱정이 된 제롬은 고민 끝에 알리사에게 약혼을 하자고 청했지만 알리사는 무슨 까닭인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자며 약혼을 반대했다. 그 후 파리로 돌아간 제롬에게 알리사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거기에는 제롬에 비해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것과 제롬이 다른 여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 자신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너무 괴로울 것 같다는 알리사의 말이 적혀있었다.

이에 제롬은 군을 제대한 아벨 보티에와 함께 알리사를 만나러 퐁괴즈마르에 간다. 알리사는 여전히 차갑게 새침해 있었고, 쥘리에트는 쾌활한 태도로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쥘리에트는 대화 도중 펠리시 고모가 그녀에게 어떤 포도밭 주인의 청혼을 알려왔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제롬은 그 청혼자에 대해 반감을 느낀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알리사와는 대화 끝에 약혼은 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 후 파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열차에서 아벨은 쥘리에트에게 반했다는 고백을 했고, 이 말에 제롬은 온통 숨이 막히고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신년 방학을 보내기 위해 12월 말경 아벨과 함께 르아브르의 플랑티에 이모 댁에 간 제롬은 축제일에 이모 댁에 온 알리사와 쥘리에트를 만났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끝내고 불이 켜진 후 알리사는 제롬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 때문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제롬 곁을 떠나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이에 제롬은 안색이 좋지 않던 알리사가 걱정이 되어 그녀 쪽으로 가려 했지만 문간에서 반쯤 몸을 숨긴 쥘리에트에게 붙잡혀 온실로 불려가 알리사가 제롬과 쥘리에트의 결혼을 바란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데….




『좁은 문』은 제롬과 그의 외사촌 알리사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들은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로 그들의 내면에서 사랑에 대한 욕망과 신앙에 대한 절제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했기 때문이다.

물론 읽으면서 제롬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쥘리에트가 둘의 사이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롬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호감을 품은 남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쥘리에트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뒤에도 알리사는 제롬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아! 슬프게도, 이제야 비로소 나는 너무나 잘 깨닫는다. 하느님과 제롬 사이에는 나 자신 이외의 다른 장애물은 없는 것이다."

p.187


후에 공증인이 제롬에게 준 알리사의 일기장에는 알리사 자신이 제롬이 덕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우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자신도 역시 하느님에 대한 사랑보다 제롬에 대한 사랑이 깊음에 고뇌하고 괴로워했다. 그러한 갈등 끝에 알리사는 결국 신앙을 선택하게 된다.


알리사의 일기는 극단적인 신앙적 윤리에 집착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죄악시해 일종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오로지 하느님 말씀과 윤리 안에서 추구하고 누리는 삶 속에서만 진정하고 궁극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사의 편지를 보면 알리사는 평소 쥘리에트가 누리고 느끼는 행복이 타락했다고 보면서도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품기도 한다.


알리사의 인생처럼 우리의 삶도 늘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알리사처럼 무조건 참고 견디는 삶만이 올바르고 행복한 삶인 걸까?

좁은 문을 선택하고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걸어간 알리사는 행복했을까?

그런 알리사로 인해 홀로 남겨진 제롬은?

평범한 결혼을 통해 현실적인 행복을 찾은 쥘리에트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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