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초상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30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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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여름날 오후 한중간, 영국 시골 저택 터치트 가의 가든코트 잔디밭에서 늙은 터치트 씨와 그의 아들 랠프와 랠프의 친구 워버턴 씨가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그 저택은 에드워드 6세 시절 지어졌으며 위대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룻밤 묵었을 정도로 이름과 역사가 있었다. 크롬웰 전쟁 당시 손상되었으나 왕정복고 시절 복구되고 확장된 후 18세기 개축되면서 꼴사납게 손상되었다. 그러나 20년 전 미국인 은행가 터치트의 손에 넘어가 신중한 관리를 받으며 지금은 저택의 진정한 심미적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하던 도중 터치트 부인이 미국에서 조카딸을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터치트 부인은 금융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남편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것을 살피러 미국에 갔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죽은 여동생의 딸들의 상황을 살펴보러 올버니의 저택에 들렀다. 몇 년 전 여동생이 죽은 후 제부인 아처 씨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뒤 일절 연락하지 않고 지내왔으나, 그가 죽은 후 조카딸들을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침 올버니 저택의 처분을 맡은 첫째 릴리언과 그녀의 남편 에드먼드 러들로가 잠시 외출한 상황이었고, 집에 홀로 있던 이사벨은 서재에서 책을 선택해 사무실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져가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작스런 낯선 여인의 방문을 받은 이사벨은 그녀가 집을 보러 온 부인인 줄 알았지만, 이내 자신의 이모 터치트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모를 무시하는 생각을 갖고 자란 이사벨은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모에게 정신 나갔다는 표현을 쓰며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러나 터치트 부인은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응하며 이사벨에 대해서나 그녀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릴리언은 이미 뉴욕 출신의 변호사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상태였고, 둘째인 에디스 역시 미국 기관 장교의 아내가 되어 있었으므로 릴리언은 이모인 터치트 부인이 자신의 여동생 이사벨을 유럽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랐다.

이사벨은 자만심에 빠지기 쉬운 아가씨였다.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곤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가 찬사를 보내곤 했다. 전체적으로 이사벨의 지식은 빈약했고, 이상은 드높았다. 그녀는 독단적이었고, 남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표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보스턴 출신의 캐스퍼 굿우드를 거절하고 이모인 터치트 부인을 따라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영국으로 떠난다.


터치트 씨 저택에 온 이사벨은 아침나절에 여행해서 기진맥진했지만 영국에 온 들뜨고 흥분된 기분으로 밤이 되도록 쉬러 가지 않고 저택에 있는 그림들을 보여달라고 랠프에게 청했다. 랠프는 저녁이어서 어두워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며 다음 날 화랑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이사벨은 굳이 당장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랠프의 안내로 그림을 본 후 이사벨은 자신이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자신의 얄팍한 배움에 대해 다분히 건방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유럽에 온 이유가 될 수 있는 대로 행복해지기 위함임을 밝힌다.


랠프는 미국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다시 옥스퍼드에 다녔다.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이로 옥스퍼드에서 발군의 성적을 보이며 터치트 씨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옥스퍼드 졸업 후 약 2년간의 여행 후 아버지 은행의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약 18개월 후 그는 독감에서 야기된 폐병으로 자신의 건강이 아주 심각한 상태임을 알게 되었고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이렇게 시들어만 가는 것 같던 랠프의 삶에 등장한 이사벨은 그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갖게 했다.


워버턴 경은 터치트 부자의 초대를 받고 가든코트에서 이틀간 머물렀고 이사벨은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워버턴 경이 돌아간 후 이사벨은 랠프에게 워버턴 경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워버턴 경에 대한 관심을 표했지만 랠프와 터치트 씨는 워버턴 경이 그가 자신의 대단한 위치를 이용해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며 그의 급진주의적 성향에 우려를 표했다.

얼마 후 이사벨은 랠프와 그의 모친과 함께 로클리에 방문했고, 점심 식사 후 워버턴 경은 집을 구경시켜 주면서 자신이 이사벨에게 매료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구애를 했으나 이사벨은 냉정하고 차갑게 대답하는데….



여인의 초상에서 이사벨은 독립적이고 이상이 높고 똑똑한 아가씨로 나온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허영심과 자만으로 가득 찬 여성인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주변인들이 본래 그녀의 모습보다 그녀를 과대 포장해서 보거나 그녀에 대한 소문을 부풀려 내곤 했지만, 그녀는 그것이 잘못된 소문임에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남들이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찬사를 보낼 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남들이 자신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벨은 스스로 독립적임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터치트 부인의 금전적 지원이나 터치트 씨가 남긴 유산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대체 어느 부분이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시대가 달라 현대에서 말하는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의미가 그때 그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 이사벨의 어느 부분을 보고 똑똑하고 독립적이라고 표현하는지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더욱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대체 왜 워버턴 경과 굿우드 같은 사람의 청혼을 거절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집과 독단에 사로잡혀 있으니 상황과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좋은 사람들은 전부 무시하고 마담 멀이나 오즈먼드 같은 최악의 인간에게 끌리는 것을 과연 똑똑하고 현명한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들이 전부 NO라고 말하는 잘못된 길을 혼자 옳다고 주장하며 수렁으로 걸어들어가는 이사벨을 보며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여인의 초상(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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