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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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의 감동을 뛰어넘을 작품이 이번 2022년 뉴베리 상 100주년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도나 바르바 이게라의 작품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이다.

이 책은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뉴베리 대상' 수상뿐만 아니라, 권위 있는 청소년 문학상이자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훌륭하게 표현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인 '푸라 벨프레 대상'을 수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2061년 태양면 폭발로 핼리 혜성의 궤도가 바뀌어 지구에 그대로 충돌할 위험에 처하자 정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 행성 개척단, 지도자들을 사람들 몰래 우주선에 싣고 인터스텔라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가 식물학자이고 아빠가 지질학자인 덕분에 주인공 페트라의 가족은 새로운 행성으로 갈 수 있게 선택을 받았지만 그 안에 사랑하는 할머니는 포함되지 않았다. 할머니를 지구에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웠지만 페트라 역시 엄마, 아빠와 동생 하비에르와는 떨어지고 싶지 않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주선에 탑승한 페트라는 수면 상태 포드에 들어가 380년 후에 깨어나도록 설정되어 수면 상태가 된다. 그 수면 기간 동안 포드에서 엔 코그니토 프로그램으로 식물학과 지질학 수업을 자동적으로 뇌에 주입받아 엄마와 아빠만큼 그 분야 전문가가 되어 새로운 행성 세이건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누군가 포드의 액체를 빼고 페트라를 깨웠을 때, 페트라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고 타고 온 우주선은 콜렉티브들이 이미 지배하고 있었다.

운항 중 페트라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들렸던, 콜렉티브들이 함께 탑승했던 모니터 요원 벤을 제거하고 사람들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려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깨어난 아이들은 수면 상태에서 머리카락조차 세뇌당한 것 같았고, 페트라만이 유일하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페트라는 살기 위해 콜렉티브에 의해 세뇌당해 완벽한 지식과 순종을 지닌 제타1을 연기하기 시작했고, 어딘가에 있을 부모님을 찾아 나설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오래전에 벤과 마찬가지로 제거된 뒤였고, 하비에르는 생사를 알지 못했다.

이렇게 희망을 잃은 페트라는 악몽을 꾼 제타4에게 할머니가 들려줬던 옛이야기 속 블랑카플로르 공주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 또한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며 마음을 굳게 먹는데….



이 소설은 이기적인 한 집단에 의해 인간성을 상실하고 필요성과 쓰임에 의해 생사가 결정되는 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주인공 페트라가 희망을 잃지 않고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이야기에 용기를 얻으며 살아남아 싸우고 우주선에서 달아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는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블랑카플로르 공주 이야기를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페트라는 단지 이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전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제타로 불리던 세뇌되었던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


불일치와 불평등이 인간을 불안과 불행으로 이끈다며 자유의지를 박탈한 채 오로지 복종만을 하게 한다면, 과연 행복한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갈등 없는 세상을 위해 아무 의사 판단 없이 오로지 사령관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것이 과연 불평등과 불일치를 타파한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일하게 지구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페트라는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까?

읽으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꼭 읽어보길 강력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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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신인류가 몰려온다 - 일생 최후의 10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드는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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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체감하지 못했지만 인구 통계 연감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인구 통계 연감을 보면 2010년에서 2020년까지 출생자는 47만 명에서 27만 명으로 줄었으며, 평균 수명은 1950년대 약 48세였던 것이 2010년대 들어서는 약 81세로 늘어났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저출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저자 이시형 박사님은 80세 후반의 초고령 사회의 노인들을 '신인류'라고 명명하고, 신체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제도로부터 취약한 상태에 이른 이들이 어떻게 자립을 이루어 반감, 혐노, 증오라는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진 지금 시대에서 목소리를 내며 행복하고 품위 있고 활력 넘치는 삶을 누릴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정말 서럽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늙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장수하기는 원한다. 장수라는 것은 곧 늙는다는 것인데, 장수는 환영하지만 늙는 것은 거부하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곧 닥칠 초고령 사회에 대한 대비는 언제부터 해야 되는가? 은퇴 후? 혹은 은퇴가 다가와 걱정되는 시기부터?

이시형 박사님은 초고령의 늪을 현명하게 건너려면 아주 어릴 적부터 준비를 잘 해야 된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되는 40대에서 60대까지의 중년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책에서는 고령을 훈장이나 대단한 특권으로 여기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짐을 말하며 고령은 훈장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고령이란 단지 한 생애를 살아가는 데 지나가는 한 지점일 뿐, 무슨 큰 자격을 취득한 것도 공적을 쌓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고령이 마치 공적인 마냥 늪에 빠져 허우적댈 것인지, 그나마 남은 힘으로 자립할 것인지 잘 판단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 덕택에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되었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노인들도 있는데 이시형 박사님은 그럴수록 더욱 노인들 자신이 스스로 사양심을 발휘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시형 박사님은 이 책을 통해 은퇴가 인생의 끝이 아님을 말하며 외국의 은퇴와 우리나라의 은퇴 분위기를 비교해 말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생애 가장 빛나는 최고의 시간으로 기다리는 것이 은퇴인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패배의 순간처럼 생각하고 정년 연장을 위해 결사 투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정년과 은퇴는 찾아오고, 그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중년부터의 준비가 판가름할 것이다.


이 책은 초고령 사회에서 멋진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과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결코 노인들만을 위한 책이 아닌 오히려 젊은이들이 읽고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는 책이다.

은퇴 후, 특히 마지막 10년이 최고의 10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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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후에 죽는다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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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작가 사카키바야시 메이는 이 책에 나오는 「15초」로 2015년 '미스터리즈! 신인상'을 수상한 일본 미스터리계의 젊은 신예 작가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는 아직 알려진 사항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소설은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각의 다른 상황에서도 '15초'라는 어찌 보면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설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번째 단편 「15초」는 책 제목 『15초 후에 죽는다』를 들었을 때 내가 연상한 내용과 제일 딱 들어맞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진짜 곧 죽음을 맞이하는 시골의 평범한 약사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산골 진료소의 약사로 근무하는 주인공은 진료소 증축으로 조제실을 신축 구역으로 옮기게 되어 이전 작업 때문에 야근을 하던 중, 한순간 자신의 눈앞에 총알이 허공에 떠올라 멈춰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총알에 이어져 있는 검붉은 물보라의 궤적.

처음에는 너무 피곤해서 환각이라도 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붉은 물보라의 궤적을 따라가던 약사는 그것이 자신의 구멍 난 가슴에서 총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리고 이 상황은?

그때 그녀를 마중 나왔다며 그녀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그녀에게 다가온 검은 후드를 쓴 사람 키만 한 거대한 고양이. 하지만 고양이가 착오로 일찍 오는 바람에 약사에게는 완전한 죽음까지 15초의 시간이 남게 된다.

자,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약사는 남은 15초 동안 무엇을 할까?


두 번째 단편 「이다음 충격적인 결말이」는 다소 귀여운 전개의 소설이다.

고등학생인 남매가 같이 저녁 시간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평소 드라마나 영화에 별 관심 없던 남동생은 시청 중에 잠깐 잠이 든다.

깨어나 보니 그날 마지막 회를 방영 중이었던 '퀴즈 시공 탐정'이라는 드라마는 이미 절정부에 도입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에필로그만 남겨놓고 중간광고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열쇠를 안 가져간 아빠가 밖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에어컨이 켜져 있던 거실에서 벗어나기 싫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루다가 밖에서 재촉하는 아빠의 부름에 결국 가위바위보로 나갈 사람을 정했다. 동생이 져서 문을 열어주고 온 사이 분명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해피엔딩이었을 것 같았던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쓰러져 있고 남주인공이 비통해하는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체 TV 앞을 떠나 있던 15초 남짓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서 생기발랄하던 여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을까?



「불면증」은 약간은 긴장감이 느슨한 전개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마쓰리는 어머니 고오리 요우와 생활하는 일상 중에 어느 날 갑자기 밤에 차 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마쓰리가 차 안에서 졸다가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해 운전석에 있는 어머니와 대화하는 꿈이었다.

마쓰리는 그 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에서 깬 마쓰리는 사랑하는 어머니 요우를 위해 밥을 차리고 청소하고 장을 보고 목욕물을 준비하는 반복적인 일상을 보낸다. 쉬엄쉬엄하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마쓰리는 존경하는 어머니를 위해 하는 그 모든 일이 고되지 않았고, 오히려 어머니가 자신에게 더 의지해 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던 순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난청을 경험한다.

그리고 하루의 일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예전에 꾸었던 차 안에서 깨어나는 꿈을 다시 꾸는데 꿈속의 상황은 예전과 같지만 어머니의 말이나 반응이 달랐고, 꿈속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꿈은 15초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대체 마쓰리는 왜 자꾸 이런 꿈을 반복적으로 꾸는 것일까?


마지막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우리의 머리 없는 살인 사건」은 정말 독특한 설정을 가진 소설이다.

적토도라는 섬의 주민들은 몸에서 머리가 분리되는 체질을 타고났다. 단순하게 넘어진다고 해서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을 얻어맞거나 머리에 공을 맞는 등 목에 힘이 가해지면 머리가 분리된다.

적토도 선대 주민들은 자신들의 체질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오랜 세월 수많은 실험을 거듭했고, 그 결과 몸과 머리가 15초 이상 떨어져 있으면 죽는다는 중요한 규칙을 발견했다.

적토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에 대한 비밀을 외부인에게 숨기기 위해, 적토도 출신이 아닌 경찰 모로즈미가 머리를 떼었다 붙이는 기예 공연을 하는 마을 축제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 축제 다음날 신사의 창고 안에서 적토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목이 없는 불탄 시신이 발견되었다.

축제 이후 귀가하지 않은 고등학생은 세 명.

대체 목이 없는 시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인 특수 설정을 사용하여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15초'라는 시간적 한정을 두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긴장감이 제일 많이 느껴졌던 단편 「15초」가 제일 재미있었다. 범인을 알고 주인공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15초라는 죽기 전의 시간을 초 이하 단위로 끊어가며 범인과의 두뇌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주인공과 범인의 시점에서 교차되어 그려지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죽기 전 0.61초까지 알차게 쓰는 주인공의 모습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머리가 분리된다는 확연한 비현실적 소재의 매력적인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우리의 머리 없는 살인 사건」은 상상적 요소가 많이 결합된 만화 같은 이야기라서,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봐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편은 만화 같은 소재라도 제대로 된 추리소설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방심하면 안 된다.


네 편의 단편 모두 미스터리 추리라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적 상상이 가미된 소설이기에 아무런 제약 없이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기발한 소재, 필력, 작품의 완성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샤센도 유키의 『낙원은 탐정의 부재』를 읽었을 때처럼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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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 신과 인간 1 -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김원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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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조금만 오래되도 사람들이 금방 싫증을 내는 요즘 같은 시대에 몇 번을 읽어도 새롭게 느껴지고 재미있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워낙 재미있는 책들이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고 새로운 책들을 좀 더 많이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책을 읽을 때 그 책을 읽을 기회는 이번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책이 바로 신화에 관한 책이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는 여러 작가들의 각자의 방향성에 따른 다양한 집필로, 출판되는 각각의 책들마다 개성이 있고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다.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내용도 다소 복잡하지만, 인간과 닮은 신들의 모습과 어쩌면 신들보다 위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영웅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리스 신화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이번에 출간된 <세창출판사>의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역시 신화연구가 김원익 박사님의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설명과 풍부한 시각적 볼거리로 우리를 매료시키고 있다.

아니, 내용을 보기 전에 예쁜 책표지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먼저라고 할까.

내지 또한 광택이 나는 두꺼운 종이로 되어있어 고급스러운데다가, 내지가 두꺼운 만큼 책을 들었을 때 벽돌 같은 묵직한 무게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는 〔신과 인간〕을 다룬 1권과 〔영웅과 전쟁〕을 다룬 2권, 총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1권 〔신과 인간〕에 관한 책으로 '그리스 신화의 생성과 전승 과정'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이르는 '신화와 인간의 심리'까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목차에서 볼 수 있듯 길지 않은 그리스 신화를 하나씩 매일 10여 분, 85일 동안 꾸준히 접하면 어느새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1권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에 통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선명한 컬러로 인쇄되어 있는 그리스 신화 관련 명화와 사진들과 잘 정리된 신들의 계보도와 가문의 가계도 등의 풍부한 볼거리로 읽는 과정은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은 신화의 시작부터 전쟁으로 시작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첫 전쟁은 최초의 하늘의 신이었던 우라노스와 티탄 신족의 우두머리인 크로노스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 티탄 신족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벌어진 전쟁은 티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 사이의 전쟁이었다. 크로노스의 아들이었던 제우스는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잡아먹은 크로노스로부터 형제자매들을 다시 구해내었고, 티탄 신족과의 전쟁 끝에 세상의 지배권은 티탄 신족으로부터 올림포스 신족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후 올림포스 신족은 기간테스, 티포우에스와의 전쟁을 치르며 고전을 치른 끝에 어느 정도 안정적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헤라, 포세이돈, 아폴론이 힘을 합쳐 제우스를 몰아내려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판도라의 항아리' 이야기는 아마 그 자체로 그리스 신화와 연결 짓지 않고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명칭일 것이다. 물론 보통 '판도라의 상자'라고 말하며,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은 개념을 항아리로 바꾸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원래 판도라가 여는 것은 항아리로, 정확히는 피토스(pithos)이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기에 여러 구전 과정 중에 '상자'로 바뀌어 전해진 것이다.



그 상자의 출처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하나는 제우스가 주었다는 것인데,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안 좋은 것들을 담고 판도라에게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여 호기심을 자극해 열어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동물과 인간을 창조하면서 나쁜 것들을 모아서 담아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판도라가 열어본 항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자 속에 어째서 '희망'이 들어있었는지는 의문의 대상이다.

이에 이솝이 우화를 통해 주장한 바를 보면, 원래는 좋은 것들만 담겨 있었는데 그 항아리가 열리자 희망을 제외한 것들이 날아가 버려서 지상에는 안 좋은 것들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희망고문'처럼 희망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보았던 니체처럼, 어쩌면 희망 또한 안 좋은 것들에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아니, 희망이라는 것은 영원히 잡히지 않고 언제나 희망으로만 남아 인간의 고통을 연장할 뿐인 '악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악'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는 원래부터 그리스 신화에 포함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로마 시대의 작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라는 책에 실려있던 것이 그리스 신화로 역수입된 경우이다. 그렇기에 원래 에로스가 아닌 로마식 이름으로 쿠피도(Cupido)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야기는 아프로디테가 인간들에게 자신보다 숭배를 받으며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프시케를 질투하여 에로스를 프시케에게 보내 볼품없는 인간과 사랑에 빠지게 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프시케를 본 에로스는 사랑에 빠졌고, 결국 프시케와 혼인하게 되었다. 비록 에로스가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자신을 만나러 온 언니들의 꾐에 넘어간 프시케가 에로스를 의심하게 되어 얼굴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프시케의 의심에 상처받은 에로스는 떠나가 버렸다.

뒤늦게 후회를 한 프시케는 에로스에게 용서를 구하러 갔고, 아프로디테가 내준 시련들을 다 끝낸 뒤에야 비로소 에로스와 함께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향연들이 풍부한 볼거리와 함께 이 책에 펼쳐져 있다.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어떠한 내용들은 약간씩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는 여러 출처로부터 이야기를 종합하였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책들은 일방적으로 출처에 뽑아낸 내용들을 엮어낸 이야기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러한 여러 출처의 내용들을 설명해 주어 독자들이 맥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하고, 또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의 출처나 '판도라의 상자'가 사실은 상자가 아닌 피토스라는 내용들과 같이 소소하지만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유익한 정보도 알차게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 접하더라도 완전히 빠져들 수 있을 것이며,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의 경우엔 몰랐던 디테일들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부터 잠깐의 시간을 투자해 그리스 신화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를 통해 우주와 자연현상의 기원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치와 속성을 이해하고 서구 문명의 근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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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셔스 - 인류의 진화를 이끈 미식의 과학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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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하기 전엔 『딜리셔스』란 책 제목만으로 요리 연구가나 요리 평론가가 저술한 미식 기행 서적인 줄 알았다. 떡하니 표지에 부제로 '인류의 진화를 이끈 미식의 과학'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보고 싶은 것만 선별해서 해석하는 내 뇌가 『딜리셔스』라는 제목과 맛나 보이는 음식 그림만 인식했다.

뇌야 요즘 왜 이러니. 😅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에 관한 책이 아닌 부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미식의 과학' 즉, 물리학, 화학, 신경생물학, 심리학 분야의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생태학, 인류학, 생태학 분야의 지식들을 토대로 음식과 음식의 향미와 그 향미의 진화와 그것이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미식에 대한 색다른 접근은 이 책의 저자들이 요식업 관계자가 아닌 생태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와 인류학자였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미식의 과학과 인류의 진화를 연대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척추동물의 뇌는 생존과 생식 가능성을 높이는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쾌락을 인지하고, 반대로 불쾌라는 감각을 느낌으로써 생존과 생식을 저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음식 섭취 시 혀에 있는 많은 유형의 미각 수용체를 통해 잠재적으로 독성이 있는 다양한 화합물을 감지하여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선별하여 위험을 멀리하도록 하게 했다. 이때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쓰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위험한 것이며, 이 위험한 것을 섭취하면 구토를 일으키는 반응을 보인다. 반대로 누구도 쓰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안전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동물은 진화하면서 생활방식이 바뀌었고 미각 수용체에도 진화적 변화가 일어났다. 각각의 동물은 입안에서 서로 다른 세상을 인지하게 되었고, 특정 화합물을 감지하는 능력이 각자에게 본질적으로 적합한 대상을 인지하도록 조율되었다. 그 조율이 단순하게는 한계치가 살짝 변하는 정도인 반면, 미각 전체의 상실과 파괴 같은 극단적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요리하는 법과 요리도구를 발달시키면서 어디서든 음식을 만들 뿐만 아니라 더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발견하여, 진화와 퇴화가 그들의 미각 수용체 유전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하지 못한 다른 동물들은 자연이 그들의 유전자들 중에 무엇을 다음 세대로 대물림할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류의 요리가 멸종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있다. 바로 매머드 고기!

매머드 고기는 한때 인류가 사랑했으나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린 향미의 상징이 되었다.

애리조나주 파타고니아 동쪽의 마른 계곡인 커리 골짜기에서 발굴된 구석기 클로비스 창 촉을 통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클로비스 창을 사용해 거대한 땅나무 늘보나 매머드, 마스토돈을 전문적으로 사냥해서 도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창 촉과 같이 발굴된 변색된 흔적이 보이는 뼈를 통해 그들이 요리를 해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사냥의 흔적은 갈비뼈에 클로비스 창 촉이 박혀있는 마스토돈의 발견으로도 뒷받침된다.


클로비스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향미가 있어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 향미를 만든 후 그 요리법을 대물림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계속해서 맛있는 종들을 사냥했고, 많은 사냥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종이 희귀해지게 되자, 오히려 희귀함이 그것의 맛을 더 특별하게 여겨지도록 해, 다시 그 종을 더 많이 사냥하게 되어 멸종을 불러왔다. 마치 지금의 일부 철갑상어처럼.



이외에도 책은 단순한 미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따 먹지 않는 발 냄새 나무의 열매가 어떤 진화의 과정을 겪었는지 그 비밀을 이야기하고, 돼지의 뇌와 송로버섯 향과의 관계성을 이야기하며 송로버섯을 채집하는데 이용하는 개와 돼지의 차이점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향신료의 기원과 그 향신료를 요리에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 중요한 역할은 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구석기 시대 때부터 사용된 치즈 동굴과 치즈의 탄생 등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풀어내고 있다.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혹은 '슬기로운 사람'이란 뜻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의 사피엔스는 원래는 '맛보다'라는 뜻이었다가 나중에 '지혜롭다', '슬기롭다'라는 뜻이 된 동사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생인류를 가리키는 호모 사피엔스는 '맛이나 향미를 통해 식별하는 사람'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동물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먹는 행위와 떼려야 뗄 수 없고, 특히 인간은 맛을 보는 행위를 통해 맛을 발전시킴으로써 미각의 자연적 진화 과정에 본의 아니게 어느 정도 인위적인 간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는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고, 향미 또한 우리의 노력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거듭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끝나지 않은 향미와 인류의 진화의 세계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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