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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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일의 갑작스러운 소련 침공이 있었지만 세라피마가 사는 주민 수가 마흔에 불과한 작은 농촌 마을 이바노프스카야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고, 1942년 가을이 되면 세라피마는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월, 패주하다 길을 잘못 들어 마을로 들어온 독일군 소대에 의해 세라피마의 엄마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무참히 학살당했고, 세라피마 역시 목숨을 위협받던 순간 마을을 찾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구조된다.


하지만 붉은 군대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여성 병사는 공황에 빠진 세라피마를 위로하기는커녕 "싸우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엄마의 시신을 걷어차고 휘발유를 부어 불을 지른다. 처음엔 겁에 질려 정신이 없던 세라피마였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만행에 분노하며 엄마를 죽인 독일군을 죽인 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 여성 병사도 죽여버리겠다고 악을 썼다.

그 대답을 들은 여성 병사는 초토작전을 지시하여 마을 사람들의 시신과 마을 전체를 불태웠고, 유일한 생존자인 세라피마를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그렇게 세라피마가 간 곳은 '중앙 여성 저격병 훈련학교'였고, 세라피마를 데려간 여성 병사는 저격병 훈련학교의 교관장으로, 당시 러시안인들의 영웅인 여성 저격병 류드밀라의 파트너 저격병으로 싸웠던 이리나였다.

그곳에서 세라피마는 각기 지역은 다르지만 모두 똑같이 독일군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소녀들을 만나 함께 피를 토하는 훈련을 반복하며 끝까지 버텨낸 끝에 여성 저격병으로 거듭난다. 그리하여 세라피마와 소녀들은 첫 임무로 전쟁을 좌우할 요지 탈환을 위해 스탈린그라드로 투입되는데….



이 소설은 일본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전쟁이었던 독소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잔혹한 전쟁의 비극을 겪으며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소설 중 하나였기에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판이 출간되어 정말 반가웠다.


소설은 단순히 전쟁의 잔혹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터지면 누구보다 피해가 큰 여성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여성들은 피해자로 남는 것을 거부하며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고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여 자신을 지켜내는 것을 넘어 남을 보호하고 자유를 위하는 등 각자의 신념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세라피마 역시 나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들을 죽이는 것을 넘어 궁극에는 적군과 아군에 상관없이 여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러한 세라피마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한 행동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겹치며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고향을 잃고 가족도 잃고 같이 싸우던 전우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인간성까지 잃어버리는 참혹한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목숨을 걸고 싸워봤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얻을 수 없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욱 큰 것이 전쟁인 것을.


책을 읽는 내내 여성에 대한 폭력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남을 죽이는 행위, 즉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경시되는 것이 당연해지는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게 다가오며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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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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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사람들로부터 '직업 혁명가'라고 불릴지언정 지금은 초푸라(곰보), 게자(절름발이), 인간 백정이라 불리며 살인마 또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 사내는, 1907년, 러시아 제국 변방에 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은행에서 거액을 탈취한 뒤 거리낌 없이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고향을 떠난다.

그로부터 6년 후 러시아에서도 가장 혹한의 땅인 시베리아 투루한스크로 유형을 가게 된 사내는 으레 그랬듯 유형을 떠나기 전날 밤에 어머니 집을 찾았다. 사내로부터 유형지 이름을 들은 늙은 어머니는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느끼며 투루한스크에 얽힌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1835년 몰락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리센코는 뛰어난 천재성으로 일곱 살의 나이에 당시 차르인 니콜라이 황제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서유럽에서 최신 학문, 특히 박물학을 공부한 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자신만의 이론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온다.

그는 새로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2세에게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의 유전'에 입각해 추위를 잘 견디는 형질인 '한랭 내성' 형질의 획득과 유전을 실험하여 황제에게 추위를 타지 않는 러시아 백성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약속하며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황제는 20년의 기한을 설정하며 리센코에게 후작 작위와 아낌없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약속한다.


리센코 후작은 제국에서 가장 추운 투루한스크를 자신의 실험지로 정했고, 그곳에 있는 유쥐나야라는 마을 인근에 자신의 유전학, 우생학을 실험하기 위한 두 개의 쌍둥이 마을 '동서 홀로드나야'를 건설한다. 그것은 리센코 후작이 거주하게 될 수도원 아래를 흐르는 큰 개울을 기점으로 쌍둥이가 마주 본 것처럼 똑같았다. 또한 산속 마을과는 별개로 유쥐나야 안에 500명의 아이를 수용할 기숙 학교도 지었다.



후작은 홀로드나야 완공 후 동서 홀로드나야에 각각 250명의 신생아부터 아홉 살까지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분리하여 수용했고, 마을 내 기숙학교에는 500명의 아이를 입소시켰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후작의 지휘 아래 군인과 하녀, 연구원들의 감시와 보살핌을 받으며 영하 50도의 날씨임에도 얇은 속옷 차림으로 생활하며 매일 두 차례 저수지에서 '입수 기도'라는 의식을 통해 한랭 내성을 키우는 삶을 살아간다.


사내의 어머니 케케 또한 홀로드나야 출신이었고, 그녀는 한 살 갓난아기 때부터 구멍 바구니에 들어가 저수지에 입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케가 들어간 바구니를 들고 입수했던 소녀가 얼어 죽으면서 바구니를 놓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구니는 꽤 오랜 시간 저수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바구니 속 케케는 죽지 않고 살아나 그때부터 그녀는 홀로드나야에서 '기적의 케케'로 통했다.


홀로드나야가 생긴 지 9년째 되던 해 첫 결혼식이 열렸는데, 주인공은 예전에 케케를 저수지 바닥에서 건져냈던 언니이자 엄마 같은 존재인 열일곱의 나타샤와 동홀로드나야의 동갑내기 청년이었다. 케케는 행복한 신부 나타샤를 위해 화관을 만들기로 했지만 꽃을 얻기 위해선 규율을 어기고 홀로드나야의 경계를 벗어나야만 했다. 결국 케케는 금기를 깨고 홀로드나야 바깥 숲속으로 가 아름다운 꽃을 꺾었다. 하지만 홀로드나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던 케케에게 반팔 반바지 내의 차림의 남자 어른이자 훗날 케케의 남편이 될 베소가 다가와 도움을 준다. 그때 케케는 베소에게서 진한 짐승의 냄새를 맡고는 아랫배에서 묘한 느낌을 받는데….



이 소설은 한국 작가가 쓴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 인이 등장하는 한국 소설이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보다 확실히 스토리나 흐름,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이 간단 명료하여 읽기 편하고 가독성이 뛰어났다.(러시아 소설에서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 많아 개인적으로 너무 난해하고 헷갈리는 경우가 많기에)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 놓은 소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칫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

소설은 처음엔 무심한 상황 서술로만 되어 있어 조금 지루한 듯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점점 이야기 속 홀로드나야 시절 케케에 몰입되어 같이 마음 졸이고 가슴 아프고 분노하게 했다.


독재자 스탈린을 등에 업고 자신에 반하는 바빌로프를 포함한 과학자들을 가차 없이 숙청했던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 중 한 명인 리센코와 달리, 소설 속 리센코 후작은 훨씬 이른 시기에 태어나 황제를 등에 업고 나치 수용소 같은 마을에 아이들을 수용해 잔학한 인체 실험을 벌이면서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서히 후천적으로 악이라는 형질을 획득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윤리는 저버리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통계 숫자 조작을 위한 열성 개체 제거에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점점 아이들을 인간이 아닌 실험실 실험쥐로 대하는 경악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설은 그 '악'이란 획득 형질이 유전되는가 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데 소설의 전개 부분에선 책장이 미친 듯이 술술 넘어가며 몰입되다가 끝부분에 이르러 사내의 출생의 비밀을 언급하듯 사내의 발가락을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러 작가의 의도는 알겠지만 '어?'하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무런 DNA 구조 조작 없이 사고로 얻은 외형이 다음 대에 유전이 된다고?

양쪽 귓불 없이 태어난 아이들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어서 현재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박사 친구에게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내가 아는 한 불가함. ㅋㅋ"

결국엔 '작가님이 그냥 소설은 소설로 봐달라는 의미에서 무리한 설정을 넣으셨구나'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내의 정체.


소설은 시중에 떠도는 사내의 유배지 사생아 썰과 친부가 따로 있다는 썰도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사내가 유배지에서 사생아를 여럿 두었다는 썰은 많지만 어디까지 한쪽의 입에서 일방적으로 나온 말들이니 걸러서 잘 들어야 되고, 또한 베소와 사내는 실제 완전 닮은 외형을 가졌다고 하니 친부 썰도 어디까지나 가십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아무튼 후천적으로 획득한 악이 유전되는가?

나의 대답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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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언스 - 의식의 발명 Philos 시리즈 22
니컬러스 험프리 지음, 박한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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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논쟁 중 하나로, 단연코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 사이의 경계와 구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소피스트들부터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 독일의 철학자 칸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장을 펼쳐 왔다.


몇몇을 예로 들자면, 가장 오래전 고대 그리스에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하며 인간의 지각의 중요성을 그 무엇보다도 크게 보았던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인간들이 지각하는 한에서는 동물들의 지각과 인식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제외한 그 무엇도 인지 능력을 지니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비슷한 관점으로는 데카르트가 주장한 심신이원론 사상을 떠올릴 수 있는데, 영혼이 있는 존재만이 정신을 가지고 고통이나 감정을 느끼는 등의 지각적 능력을 구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반대의 입장 또한 여럿 존재하는데, 프린스턴대 교수인 피터 싱어의 주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는 톰 레건과 함께 대표적인 동물권 보호 사상가로 우리나라 중등 교육과정에서도 자주 언급되는데, 이들의 주장은 동물들 또한 고통을 느끼고, 기쁨 또한 충분히 인지할 수 있으므로 이들의 고통을 인간의 것과 다르게 다루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 속에는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들이 지닌 지각 능력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지각 능력을 지녔다면, 이들 또한 인간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인간과 어느 정도는 유사한 감정과 사고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 또한 인식과 지각에 대한 큰 의문의 흐름에 녹여내어 해답을 모색해 나가고, 책의 후반부에 가서는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토대로 동물과 인간의 인식 차이, 그리고 현상적 자아가 동물에게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인간의 자아와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독자들과 함께 찾아나가는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 흐름의 중심이 되는 것이 저자의 반려견 버니로, 저자는 한 앵무새가 여행이 끝난 후 여행 중 있었던 일에 대해 나름의 수다를 떠는 것과 비교해 버니가 산책 전 밥을 다 먹고 갔는지를 상당히 명확히 기억한다는 점을 들어 동물들에게 각각 차이는 존재하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최소한 그것과 관련된 인식이 있다는 추론을 하였다.

또한 저자가 힘들어할 때 버니가 와 위로를 하는 것만 같은 행동을 하였다는 점을 떠올리며 다른 여러 사례들과 연결 지어 동물들이 가질지 모르는 연민과 관련된 인식의 존재를 고민하면서도, 버니가 울부짖는 사슴을 무자비하게 공격하였던 것을 비롯해 다른 동물들 또한 심할 경우 자신의 집단 내의 개체들에게도 잔혹하다 할 수 있는 대우를 하는 점을 비추어 보아 그 연민과도 같은 인식의 확장 범위를 재고해 보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저자는 조금 열린 결말과도 같은 결론을 내리는데, 이는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저자가 보조를 해 주는, 일종의 배려와 같다고도 생각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니컬러스 험프리는 이 책에서 과학과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인간 이외의 생물들의 지각에 대한 연구를 고찰하여 의식과 지각을 분석하고 정의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어떠한 관점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닌, 독자들 스스로가 저자가 질서정연하게 제시한 사례들이며 여러 요소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지각과 의식에 대해 이해하고, 아직도 많은 동물학자와 인류학자, 철학자, 생명과학자 등의 논쟁거리로 존재하는 의식의 본질과 동물에서의 존재 여부와 같은 논점들에 슬그머니 한 발을 직접 올려보게 하고 있다.


그가 말한 현상적 자아와 지각에 대한 논의 과정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흥미를 유발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보는 새로운 개념과 진화적 가치에 대한 통찰에 이르게 한다.


이 책이 인식과 지각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자신의 자아의 근원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몇 가지의 가능성과 해답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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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미 다카히로가 알려주는 환상의 손 그리는 법 - 한눈에 압도하는 독보적 작화법 가가미 다카히로가 알려주는 손 그리는 법
가가미 다카히로 지음, 김종완 옮김 / 이아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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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취미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전 코로나19 사태 때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자주는 아니고 가끔씩요.

따로 배우지 않아 기본기는 없고 그냥 흉내만 내는 수준인데요, 인체는 흉내 내어 스케치를 하는 것조차 정~말 어렵더라구요. 가끔 인체 중 제 손을 보고 그리기도 했는데 결과물은 거의 항상 목각 피노키오의 손 같아서 결국엔 손을 포함한 인체 그리기는 포기한 상태였어요. 강습을 받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죠. 😥


그런데 정말 대박 아이템(?)을 만났습니다.

바로 『가가미 다카히로가 알려주는 환상의 손 그리는 법』입니다.

이 책은 누구나 아는 유명 애니메이션 《유희왕》, 《데스노트》 등의 캐릭터 디자인이나 총작화감독을 맡은 가가미 다카히로가 '손 그리기'를 주제로 저술한 책인데요, 1편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나온 2편이랍니다.


1편이 손 그리기 기본에 관한 책이었다면, 2편은 다양한 상황에 맞는 감정이 담긴 손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요. 거기다가 손만이 아닌 손과 연결된 '팔' 그리는 법과 입체감을 주는 '그림자' 그리는 법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 정말 유용해요.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 1장에서는 손과 팔의 작화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요.

손과 팔의 기본부터 남녀·연령·체격별 구분에 따른 손과 팔 작화법, 그림체별 구분에 따른 차이에 이르기까지 정말 자세하고도 쉽게 손과 팔을 그리는 법을 설명하고 있어요.

저도 책을 보면서 여기에 나온 설명에 따라 그려봤는데 완전 대박 생동감 있는 인간의 손이 완성되었답니다.



2장에서는 정성껏 그린 손이나 팔에 생생한 입체감을 주기 위한 비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바로 그림자 그리는 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광원을 의식한 그림자의 기본부터 다양한 광원에 대한 설명, 사진에서처럼 그림자를 간략화하여 실전 그림자를 그리는 방법, 다양한 손 포즈에 따른 그림자 연출 등 손이 비로소 실제와 같아 보이게 되는 단계랍니다.



마지막 3장에 이르러서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환상의 손 그리기가 나옵니다.

작가는 환상의 손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손, 연출한 손, 박력 있는 손, 구도로 강조한 손' 이렇게 4가지 표현법을 꼭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책을 통해 하나의 동작을 나타내는 손 모양에 셀 수 없이 다양한 감정을 넣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멋진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책에 나온 손들을 따라 그려 보았답니다.

제 실력을 알기에 은근 겁을 먹었는데 그리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더라구요.

'어? 진짜 손처럼 그려지는데? 대~박! 이게 되는 거였어?'하구요. 😆


물론 그림 배우신 분들이 보기에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겠지만 초보자인 저에게는 완전 신세계를 경험한 수준이랍니다.

또한 손그림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제가 그린 손은 이제 더 이상 목각인형의 손이 아니에요~. 😉



책의 마지막에는 114점에 이르는 '손 포즈 사진 자료'가 나와 있어 다양한 손 그리기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QR코드가 있어 '도구 소개와 선화 과정', '그림자 그리기 과정', '애니메이션 작화 연출' 등의 동영상으로 바로 연결해 생생한 그리기 과정과 해설을 볼 수 있어요.

이 책을 보고 열심히 따라 하면 앞으로 더욱더 멋진 손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네요. 그런데 독자는 행복하지만 작가님은 이렇게 비법을 전부 공개해도 괜찮으신 건가요? 🤔


인체, 특히 손과 팔 그리기에 자신 없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전공자뿐만 아니라 초보자, 아니 생초보자들에게조차 확실한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확언할 수 있어요.

어쩌면 이 책을 통해 가가미 다카히로 같은 멋진 애니메이터의 꿈을 이루는 사람이 나올지도….

우리 이 책으로 손과 팔 그리기를 열심히 연습해서 청출어람이 되어보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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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2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2
마치다 소노코 지음, 황국영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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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는 석 달 전 우연히 찾은 모지항에서 들렀던 텐더니스 편의점의 점장을 잊지 못하고 소꿉친구 마키오와 함께 다시 모지항을 찾았다. 텐더니스 모지항 고가네무라점에서 점장 시바 씨를 다시 보고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며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 시작되었음을 절감했다.


<할머니와 사랑에 대한 고찰을>

고1인 시노는 중3 봄 무렵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다이스케의 고백으로 그와 교제 중이었으나, 시노가 식중독으로 이틀간 결석한 동안 2학년 선배의 고백을 받았다는 다이스케에게 무례한 이별 선언을 듣는다. 시노는 다이스케와 그의 현여친의 행태에 오만 정이 떨어져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지만, 배려심 없는 다이스케의 태도와 자신의 이별을 구경거리로 삼는 친구들의 태도에 상처를 입는다.

학교를 조퇴하고 무작정 찾은 모지항에서 시간을 때우던 시노는 핑크 베이지색의 솜사탕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곱게 화장을 한 채 화려한 옷을 입은 자신의 할머니가 수줍어하며 편의점 점장에게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는데….


<히로세 다로의 우울>

텐더니스 모지항 고가네무라점의 아르바이트생인 다로는 고교 시절 야구부 주전으로 뛸 때는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스스로가 잘난 남자라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었으나, 대학 진학 후 개성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쓰바키는 그런 다로에게 고교 시절 먼저 교제를 제안했고 다로가 대학교에 진학한 후엔 시모노세키까지 따라와 동거까지 하지만 얼마 후 다로에게 더 이상 고교 때의 반짝임이 없다며 이별을 고하며 떠난다. 하지만 그 후 쓰바키는 새로운 남친을 사귈 때마다 다로와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언급하는 말을 하는데….


<여왕의 실각>

중학교 시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하트 여왕 같았던 미즈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척했기에 결국은 절친조차 곁을 떠나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래도 미즈키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잔소리에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미즈키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는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 기분전환을 하려 했지만, 친구들은 약속이 있다거나 바쁘다는 대답들을 했고 몇몇은 아예 메시지를 읽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만남을 포기했으나 우연히 간 모지항역 앞에서 만날 수 없다는 친구들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껴 따지고 드는데….



소설은 크게 보면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이야기는 각각 독립적인 듯 보이지만, 각 이야기에서 편의점 직원들 이외에 다른 이야기에 나왔던 인물들이 언급되며 독자에게 모종의 반가운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있다.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2』는 전편이 워낙 히트를 쳤던 데다가 개인적으로 작가의 다른 소설 『52헤르츠 고래들』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역시 소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일단 소설의 소재가 일상적이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미사여구가 없는 글은 가벼우면서도 읽기가 편한 데다 적절하게 나오는 위트 있는 문장은 글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독성 최고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시바 씨의 활약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물론 상처받은 사람들이 편의점으로 우연히 모여들지만, 그곳에서 등장인물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지 시바 씨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시바 씨는 단지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상징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읽다가 가끔은 점장 시바 씨가 인외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전부 똑같지만 연령층에 따라 반응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엔 다로가 시바 씨를 페로몬 샘의 정령 같은 남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진짜…. 이렇게 되면 3편이 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그러한 실수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수와 상처를 방관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치유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긍정적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과 힐링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쉽고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만 어느 무엇보다 일상을 풍요롭게 할 따뜻한 감정을 선물할 보석 같은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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