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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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사람들로부터 '직업 혁명가'라고 불릴지언정 지금은 초푸라(곰보), 게자(절름발이), 인간 백정이라 불리며 살인마 또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 사내는, 1907년, 러시아 제국 변방에 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은행에서 거액을 탈취한 뒤 거리낌 없이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고향을 떠난다.

그로부터 6년 후 러시아에서도 가장 혹한의 땅인 시베리아 투루한스크로 유형을 가게 된 사내는 으레 그랬듯 유형을 떠나기 전날 밤에 어머니 집을 찾았다. 사내로부터 유형지 이름을 들은 늙은 어머니는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느끼며 투루한스크에 얽힌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1835년 몰락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리센코는 뛰어난 천재성으로 일곱 살의 나이에 당시 차르인 니콜라이 황제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서유럽에서 최신 학문, 특히 박물학을 공부한 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자신만의 이론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온다.

그는 새로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2세에게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의 유전'에 입각해 추위를 잘 견디는 형질인 '한랭 내성' 형질의 획득과 유전을 실험하여 황제에게 추위를 타지 않는 러시아 백성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약속하며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황제는 20년의 기한을 설정하며 리센코에게 후작 작위와 아낌없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약속한다.


리센코 후작은 제국에서 가장 추운 투루한스크를 자신의 실험지로 정했고, 그곳에 있는 유쥐나야라는 마을 인근에 자신의 유전학, 우생학을 실험하기 위한 두 개의 쌍둥이 마을 '동서 홀로드나야'를 건설한다. 그것은 리센코 후작이 거주하게 될 수도원 아래를 흐르는 큰 개울을 기점으로 쌍둥이가 마주 본 것처럼 똑같았다. 또한 산속 마을과는 별개로 유쥐나야 안에 500명의 아이를 수용할 기숙 학교도 지었다.



후작은 홀로드나야 완공 후 동서 홀로드나야에 각각 250명의 신생아부터 아홉 살까지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분리하여 수용했고, 마을 내 기숙학교에는 500명의 아이를 입소시켰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후작의 지휘 아래 군인과 하녀, 연구원들의 감시와 보살핌을 받으며 영하 50도의 날씨임에도 얇은 속옷 차림으로 생활하며 매일 두 차례 저수지에서 '입수 기도'라는 의식을 통해 한랭 내성을 키우는 삶을 살아간다.


사내의 어머니 케케 또한 홀로드나야 출신이었고, 그녀는 한 살 갓난아기 때부터 구멍 바구니에 들어가 저수지에 입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케가 들어간 바구니를 들고 입수했던 소녀가 얼어 죽으면서 바구니를 놓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구니는 꽤 오랜 시간 저수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바구니 속 케케는 죽지 않고 살아나 그때부터 그녀는 홀로드나야에서 '기적의 케케'로 통했다.


홀로드나야가 생긴 지 9년째 되던 해 첫 결혼식이 열렸는데, 주인공은 예전에 케케를 저수지 바닥에서 건져냈던 언니이자 엄마 같은 존재인 열일곱의 나타샤와 동홀로드나야의 동갑내기 청년이었다. 케케는 행복한 신부 나타샤를 위해 화관을 만들기로 했지만 꽃을 얻기 위해선 규율을 어기고 홀로드나야의 경계를 벗어나야만 했다. 결국 케케는 금기를 깨고 홀로드나야 바깥 숲속으로 가 아름다운 꽃을 꺾었다. 하지만 홀로드나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던 케케에게 반팔 반바지 내의 차림의 남자 어른이자 훗날 케케의 남편이 될 베소가 다가와 도움을 준다. 그때 케케는 베소에게서 진한 짐승의 냄새를 맡고는 아랫배에서 묘한 느낌을 받는데….



이 소설은 한국 작가가 쓴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 인이 등장하는 한국 소설이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보다 확실히 스토리나 흐름,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이 간단 명료하여 읽기 편하고 가독성이 뛰어났다.(러시아 소설에서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 많아 개인적으로 너무 난해하고 헷갈리는 경우가 많기에)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 놓은 소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칫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

소설은 처음엔 무심한 상황 서술로만 되어 있어 조금 지루한 듯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점점 이야기 속 홀로드나야 시절 케케에 몰입되어 같이 마음 졸이고 가슴 아프고 분노하게 했다.


독재자 스탈린을 등에 업고 자신에 반하는 바빌로프를 포함한 과학자들을 가차 없이 숙청했던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과학자 중 한 명인 리센코와 달리, 소설 속 리센코 후작은 훨씬 이른 시기에 태어나 황제를 등에 업고 나치 수용소 같은 마을에 아이들을 수용해 잔학한 인체 실험을 벌이면서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서히 후천적으로 악이라는 형질을 획득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윤리는 저버리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통계 숫자 조작을 위한 열성 개체 제거에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점점 아이들을 인간이 아닌 실험실 실험쥐로 대하는 경악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설은 그 '악'이란 획득 형질이 유전되는가 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데 소설의 전개 부분에선 책장이 미친 듯이 술술 넘어가며 몰입되다가 끝부분에 이르러 사내의 출생의 비밀을 언급하듯 사내의 발가락을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러 작가의 의도는 알겠지만 '어?'하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무런 DNA 구조 조작 없이 사고로 얻은 외형이 다음 대에 유전이 된다고?

양쪽 귓불 없이 태어난 아이들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어서 현재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박사 친구에게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내가 아는 한 불가함. ㅋㅋ"

결국엔 '작가님이 그냥 소설은 소설로 봐달라는 의미에서 무리한 설정을 넣으셨구나'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내의 정체.


소설은 시중에 떠도는 사내의 유배지 사생아 썰과 친부가 따로 있다는 썰도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사내가 유배지에서 사생아를 여럿 두었다는 썰은 많지만 어디까지 한쪽의 입에서 일방적으로 나온 말들이니 걸러서 잘 들어야 되고, 또한 베소와 사내는 실제 완전 닮은 외형을 가졌다고 하니 친부 썰도 어디까지나 가십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아무튼 후천적으로 획득한 악이 유전되는가?

나의 대답은 '아니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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