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듬기 - 일상을 깨지 않고 인생을 바꾸는 법
히로세 유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수오서재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나다운 삶을 위해 이제는 가다듬기를 실천해야 할 때!

소소하지만 일상의 작은 가다듬기로 인생의 흐름을 바꿔나가다!

 

 

   “의외로 버리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인 거 같아.”

   언젠가 함께 집안 청소를 하면서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버리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었다니, 그날 나는 남편의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집 안 곳곳에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하고 버리는 게 아까워서 쟁여둔 물건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옷장만 하더라도 살을 빼면 입겠다는 핑계로 벌써 몇 해째 꺼내 입지 않은 옷들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냉장고나 아이 방의 자잘한 장난감들은 차마 말로 다 못할 지경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채워 넣는 데 신경 쓰느라 비우고 정리하는 데는 많이 소홀했다. 앞서 읽었던 책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에서 정목 스님이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 사과나무 가지를 쳐내듯 인생의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당신이 하는 많은 것들을 가지치기 해보라’던 말씀처럼, 비료만 열심히 준다고 좋은 과일이 열리지 않듯 이제는 의미 없이 채우기만 했던 것들을 가지치고 가다듬으며 정돈해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 앞에서 책 『가다듬기』는 거창한 계획과 일상을 뒤바꾸지 않고 그저 매일, 꾸준히 작은 가다듬기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삶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다듬기는 자신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만드는 과정이다

 

 

   상쾌하게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오롯이 느끼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때때로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깨달음을 얻고, 내가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하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삶. 매 순간, 마음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행할 수 있는 삶.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삶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에세이스트이면서 편집자이자 현재는 설계 사무소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저자 히로세 유코는 답답하게 반복되었던 일상의 흐름을 바꾸고, 하루하루를 홀가분하고 쾌적하게 살기를 바라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가다듬기’라고 말한다. 감각적인 것부터, 일상에서 매일 할 수 있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가 설명하는 가다듬기에 정답이란 없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나의 일상을 애써 무리하게 바꿀 필요도 없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저 오늘 하루부터 시작해 사흘 그리고 일주일, 현재에 집중하면서 꾸준히 가다듬다 보면 그것이 삶 전체로 이어져 자연히 반듯하게 가다듬어진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서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배우면 된다. 내 마음에도 그와 같은 씨앗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니,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본디 만남은 마음속 씨앗을 키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사람은 가까운 사람에게 시나브로 무언가를 받아들인다. 단정하게 가다듬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언젠가 나도 반듯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를 가다듬다 보면 반듯하게 가다듬어진 사람이 찾아올 것이다. / 16p

 

 

 

   책에는 일과 공간은 물론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다듬기 실천법이 소개되어 있다. 우선 ‘지금, 나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나의 의식을 가다듬는 방법에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평소의 태도를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을 할까?’보다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관점이 달라지고 나의 생각과 행동이 변화하며, 한 걸음 너머에 펼쳐진 새로운 경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또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 ‘언젠가 꼭 해야지’ 하고 생각을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에 의식을 집중하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마음을 기울여보라고 한다. 마음이 흔들릴 때는 흔들림 그 자체를,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되 ‘가다듬어진 기분 좋은 상태’로 최대한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평소 가장 기분 좋은 상태를 마음속에 새기는 연습을 해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았는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시간을 마련하고, 방법을 생각하고, 움직이자. 어쩌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 그저 생각에만 머물고 있던 일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내가 움직이면 할 수 있는 일, 내 의지로는 결정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은 내가 정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금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마음을 기울여보는 일뿐이다. / 20p

 

 

그렇게 생각하면 흔들리지 않는 게 좋은 게 아니라, 흔들리고 난 다음, 나를 어떻게 다잡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스스로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걸 이해하자. 자신의 섬세함을 장점으로 받아들여보자. 거기서부터 가다듬기가 시작된다. / 30p

 

 

 

   2장과 3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가다듬는 법과 구체적인 정리의 기술을 일러준다. ‘이런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마음 다잡아보기, 아침이 되면 가능한 좋은 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가다듬기 의식’ 치르기, 공간을 쾌적하게 만듦으로써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 나 자신을 두지 않기, 좋아하는 물건이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줄 만한 공간 만들기 등이 그것이다. 이때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에 안도감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는지 마음속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과정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과 없어도 좋은 것,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골라내며 가다듬다 보면 삶이 한결 홀가분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손에 들 때마다 기쁨이 느껴지는 물건이 있다. 그런 물건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그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정성스럽게 다루면 정성 가득한 공기가 자리에 감돈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용하면 그 마음이 공간까지 전해진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물건, 정이 가지 않는 물건을 함부로 다루게 된다. 물건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편치 않다. / 94p

 

 

매일 손으로 만지는 물건, 사용하는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일터라면 가방, 신발, 책상 위 풍경, 일상이라면 컵이나 식기일 수 있다. 식기를 닦는 부드러운 헝겊이나 몸을 감싸는 아늑한 이부자리, 몸에 걸치는 옷가지, 생활에 필요한 작고 사소한 물건들, 내 생활의 일부를 구성하는 물건을 하나하나 바라보는 과정은 물건을 통해 그 너머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중략) 내가 소유한 물건이 나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물건은 나를 둘러싼 세계의 존재 방식과 닮아 있다. / 99p

 

 

 

 

 

 

   4장 ‘모든 것은 몸에 남는다’에서는 몸이 전하는 정직한 목소리를 듣고, 먹는 행위 속에서 가다듬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여기에서는 특히 하루하루 몸의 변화와 시시때때로 바뀌는 기분에 따라 각각의 순간에 맞는 편안함을 찾아나갈 것을 추구한다. 끝으로 마지막 5장에서는 ‘나는 매일 무엇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가다듬기 과정 속에서 스스로 묻게 되는 것들에 집중해봄으로써 나를 성장시킬 수 있기를 독려한다.

 

 

글로 적는 행위는 나를 위한 지도를 만드는 작업이다. 지금의 지도와 지금을 포함한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길라잡이다. 지도가 완성되면 눈에 보이는 장소를 목적지로 정하고 그곳에 다다르는 경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중략) 글로 적으면 이리저리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던 것들이 한 곳을 향해 수렴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이 필요성을,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 144p

 

 

 

 

 

 

   저자는 가다듬기란 곧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가다듬을수록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고 시선이 섬세하게 가다듬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건 원래 이런 법’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속단하던 생각, ‘바꿀 수 없다, 바뀌지 않는다’는 선입관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자신의 시선이 변화했음을 알게 되면서 예전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다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가다듬기 실천법이란 그리 거창하지도, 우리가 몰랐던 어떤 특별한 노하우랄 것도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실천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서서히 익혀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좀 더 명료하고 홀가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조언은 새겨봄직하다. 늘 지지부진하고 정체된 일상에 마음이 답답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삶의 변화를 일으킬 방아쇠로 삼아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정갈한 문장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책 속의 이미지들로 하여금 불안하고 복잡한 오늘의 마음을 느긋이 가다듬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독서 시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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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 2020년 전면 개정판
정목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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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주는 따뜻한 말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여느 때보다 뒤숭숭하고 심란한 요즘이다.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까닭에, 두 아이를 돌보며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지 일주일이 넘었다. 2주쯤이면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사태가 이제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니, 뉴스를 볼 때마다 불안감은 커지고 밤잠도 제대로 이루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렇다보니 복잡한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책 한 권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에 담긴 정목 스님의 글은 예민해진 마음을 여미고 하루하루 차오르는 초초함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는 좋은 말씀이 되어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소중함을 느끼고 있는 요즘,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스님의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아로새겨지는 듯하다.

 

 

그러나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듯

근심과 걱정도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물결 같은 것입니다.

파도타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파도가 두렵지 않습니다.

근심과 걱정도 파도타기를 하듯 탈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밀려왔다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밀려왔다가 밀려나가는 파도를 향해

바다 같은 인내심을 가지고 근심과 걱정의 파도타기를 해보세요.

바다는 그 많은 파도를 아무런 불평 없이

매번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근심과 걱정도 받아들이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져보세요.

/ ‘모든 것은 밀려왔다 밀려갑니다’ 중에서 15p

 

 

 

  스님은 우리를 괴롭히는 걱정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은 그냥 일어나는 그대로 너그럽고 다정하게 이해하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안한 감정이 일어나는구나,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그냥 바라보며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파도처럼 말이다. 우리는 파도가 밀려온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근심, 걱정이 밀려오는 순간에는 그것이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이에 스님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듯 근심과 걱정도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물결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너그러이 바라보기를 권한다. 나 역시 지금의 이 곤란한 사태 앞에서 내내 인터넷 뉴스와 댓글을 보며 불안에 떠느라 시간과 마음을 허비하느니 오늘도 생활 전선에서, 의료 최전선에서 애쓰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보려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둘의 힘을 합해 하나로 만들기보다는 하나마저 둘로 쪼개고 나누어 분열시키고 싶어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즉 타인과 내가 분리된 남남이 아니라

똑같은 아픔과 똑같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의 자비심은 커집니다.

/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 중에서 100p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여전히 정치공방에만 열을 올리는 이들로 인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대통령 탄핵 청원이 40만 건에 육박하고, 단체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정부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되고 있다. 물론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관해서는 나 역시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시기야말로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발언이나 행동은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모두가 똑같은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서로를 응원하며 앞서 나라의 위기 때마다 발휘되었던 우리의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때인 듯하다. 그런 뜻에서 너와 나는 똑같은 아픔과 똑같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하나와 같은 존재임을 전하는 정목 스님의 말씀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실수한 적 많으신가요?

돌이켜보면 부끄러웠던 실수, 그러나 그 부끄러움은 실수를 인정했을 때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부끄러움은 그 때 그 실수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던 마음의 찌꺼기입니다. / 176p

 

 

빠른 속도로 질주하듯이 달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면

속도 중독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신봉하느라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호흡을 한 번씩 지켜보며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보세요.

그렇게 하면 마음의 속도가 조금 늦추어집니다.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말입니다.

느린 속도로 보이지만

달팽이는 우주가 정한 자신의 시간에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 238p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마치 스톱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하지 않게 되자, 나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모적이었는지를 돌이켜보게 된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일상의 안녕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간절해지다 보니 평소 나도 모르게 집착했던 것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데 급급했던 것들이 사실은 인생에 있어서 그리 큰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목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신봉하느라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호흡을 한 번씩 지켜보며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보라고. 결국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나를 소모시키는 일에만 매달려왔던 것일까.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 사과나무 가지를 쳐내듯 인생의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당신이 하는 많은 것들을 가지치기해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지금의 이 시기를 기본에 충실하고 나의 마음을 정돈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려 한다.

 

 

 

알고 보면 우리는 매일매일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내거나

풀과 꽃과 나무와 바람과 물소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적 속에 살고 있답니다.

 

 

기적을 기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일상의 권태와 집착과 욕망의 껍질을 훌훌 벗어던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 찰랑거리고 있는 영혼의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는 사람이지요.

/ ‘비갠 뒤 기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중에서 95p

 

 

 

 

 

  불안과 걱정으로 하루하루가 초조한 이때, 정목 스님의 말씀은 들쑥날쑥했던 마음을 한결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모두가 힘들고 민감한 시기를 겪고 있는 만큼 스님의 말씀이 따뜻한 응원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많은 분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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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다니하라 마코토 지음, 우다혜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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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으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침묵 사용법!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활용의 모든 것! 

 

   ‘짤막한 시간에도 남시와 여시가 있기 마련이다.’

   무대 위에서 예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연기자들이 가져야 할 비결을 저술한 제아미의 《풍자화전》에는 이와 같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남시’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때를, 반대로 ‘여시’란 상대에게 유리한 때를 말한다. 책은 남시와 여시는 피할 수 없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며, 대화의 흐름상 상대에게 유리한 여시 때는 굳이 이기려 하지 말고 여유롭게 기다렸다가 ‘바로 여기다!’ 하는 곳에서 전력을 다하라고 권한다. 오히려 남시일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이야기가 유리하게 흘러 자신이 내민 조건이 무엇이든 받아들여지는 듯할지라도 자만해서는 안 된다. 남시에 있더라도 불리한 상황을 대비하며 단숨에 해결할 방안을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화란 무슨 말이든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 법무, 기업 회생, 교통사고, 부동산 문제 등에 관한 사건을 뛰어난 교섭법과 논쟁력으로 해결해 온 일본의 유명 변호사인 다니하라 마코토는 자신의 책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의 서두에서 남시와 여시를 인용하며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간격’을 두면서 대화의 거리를 조정하여 나만의 리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때 ‘말과 말의 사이’ 즉, 적절한 간격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침묵’이다.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는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말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대화 속에서 침묵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역사상 뛰어난 화술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링컨, 스티브 잡스, 오바마 대통령,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침묵을 그 누구보다도 잘 활용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야기 도중에 상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침묵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켰고, 핵심이 되는 말을 반복하고 직후에 침묵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릿속에 문장을 각인시키도록 했으며,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에 침묵함으로써 청중의 기대감과 설득력을 높였다. 찰리 채플린 역시 ‘언어가 없는 팬터마임이야말로 세계 공통어’라고 말하며 침묵하고서도 훌륭히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이렇듯 너무도 당연하게 커뮤니케이션은 말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우리에게 저자는 침묵만큼이나 강하고 묵직한 대화법이 없음을 설명한다.

 

 

 

대화는 자신이 말하거나 상대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의 반복입니다. 말로 하는 캐치볼이지요. 한쪽은 말이 빠른데, 다른 쪽은 말이 느리다면 굉장히 어색한 대화가 펼쳐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소위 ‘흐름이 좋지 못한 대화’이지요. 그럴 때는 적절하게 ‘간격’을 두면서 상대와의 대화 리듬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상대가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것 같다면 상대방의 대화 흐름이 너무 빠르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상대를 가라앉힐 요량으로 일부러 ‘간격’을 두고 천천히 자신의 흐름에 맞추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26p

 

 

 

 

 

 

   저자는 상대로부터 반드시 승낙을 이끌어내야 하는 협상의 상황에서도 침묵이 효과적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한창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대측에서 아무런 말이 없이 침묵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납득이 안 되는 걸까?’, ‘기분이 언짢을 법한 이야기를 했나?’ 하고 불안해진다. 결국 우리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때 침묵은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상대가 침묵하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내뱉기 쉽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 상대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나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활용해보는 것이다. 반면, 상대방에게만 행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도 침묵은 중요하다. 대화를 할 때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가 나서 괜한 말을 하여 나중에 후회하거나 협상 자리가 불리하게 흘러가게 둘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분노의 감정을 터뜨릴 것 같을 때, ‘지금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고 곱씹어보고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핵심은 침묵을 통해 상대의 기분을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즉 서로 간의 ‘호의 잔고’와 ‘신뢰 잔고’를 쌓기 위함이지요. 이 점을 간과하고 테크닉을 남용한다면 오히려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입니다. (중략)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면 말을 많이 해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침묵한 후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 104p

 

 

 

 

 

 

   이 외에도 책은 침묵을 뒷받침하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과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들도 함께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시각 정보가 55퍼센트이고 청각 정보가 38퍼센트인데 반해 언어 정보가 미치는 영향은 7퍼센트에 불과함을 언급하며, 우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만남 후 약 6초에서 7초 사이에 결정된다는 첫인상의 중요성과 동작의 완급과 크기 조절을 통해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또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관계성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과 미러링(상대의 몸짓이나 자세를 거울로 비추듯이 따라 하는 테크닉), 페이싱(상대의 말투나 말의 리듬을 따라 하는 테크닉), 캘리브레이션(상대의 심리 상태를 언어 이외의 사인으로 인식하는 테크닉-자세, 호흡, 표정, 목소리 톤), 백트래킹(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을 이용해 상대와 의식을 교류함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비의식적인 모방을 통해 상대와 의식을 교류할 수 있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라포르’라고 말합니다.

라포르는 ‘친밀한 관계’,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신뢰 관계’ 등으로 표현됩니다. 프랑스어로는 ‘다리를 놓다’라는 의미가 있지요.

당신이 어떤 사람과 교제하는데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있을 때 즐겁다고 느낀다면 둘 사이에는 라포르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42p

 

 

 

 

 

 

   끝으로 저자는 침묵의 중요성과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의미 없는 침묵은 피해야 하고, 침묵으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들을 최소화하여 상대를 위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그러고 보니 평소 말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면 어색해서 곧잘 의미 없는 말을 내뱉거나 눈치를 보며 나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속으로 고민한 적이 많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침묵 앞에서 어색해지는 순간을 모면하려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다음날 ‘이불킥’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휘둘리지 않고 나의 리듬을 찾으면서 대화를 리드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해법이 되어줄 듯하다. 상대방으로부터 호의와 신뢰를 얻으며 더 나은 관계로의 발전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특히 이 책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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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조조 모예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소설!

방황과 오해,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우리 시대의 분열된 가족을 감싸 안는 따뜻한 시도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로부터 어떤 놀라운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그때란, 항상 자신이 제일 영리하다고 믿는 자부심으로 하여금 스스로 멋지게 발화하는 순간일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목소리에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응답해줄 자세가 되어 있는 아이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한 번 더 도전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는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며 조급증을 내고, 현실적인 조건에 순응하거나 혹은 버티면서 살아가는 법만을 가르치며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어른들이 스스로 착각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꿈이 좌절되고 있었던 것인지. 말을 사랑하고 할아버지에게서 마장마술을 배우며 꿈을 키워가던 소녀, 사라의 이야기를 좇아가며 나는 내 아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고민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수많은 불합리와 절망으로부터 우리가 지키고 또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호스 댄서』는 바로 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자 곧 응답이다.

 

 

 

 

 

어떤 동물이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장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뭐든 처음에는 부족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 크세노폰, 『기마술』

 

 

 

   런던의 데이비슨 브리스코에서 아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너태샤 매컬리는 뛰어난 실력으로 착실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부유한 동네에서 번듯하게 지어진 집에서 살며 누가 봐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그녀지만, 일 년 동안 집을 나가 살던 남편 맥이 자신의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뒤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맥은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된 집을 처분하자고 제안하며, 팔리기 전까지는 이 집에 머무르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맥에게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세 번의 유산을 겪는 동안 자신이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지 않아서 화가 났고,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있는 이때에 다시 나타나서 간신히 다져놓은 둑을 무너뜨리려고 해서 또 화가 났다. 무엇보다 더 기분이 나쁜 것은 그가 여전히 매력적인 남자이고, 심리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다시 아파트에서 살 생각을 하니 눈앞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체로 사람들은 30대 중반에 이르면 어느 정도 인생의 기반을 다지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만족스러운 집에 살면서 자기 분야에서도 탄탄한 경력을 쌓을 거라 예상한다. 거기엔 아이도 한두 명쯤 추가될 것이다. 너태샤는 자신의 평평한 배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넷 중에서 하나를 이루지 못한 셈이다. 대단한 성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아마디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경력 분야에서도 결함이 생겼다. / 205p

 

 

  맥이 돌아온 날 밤, 너태샤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슈퍼마켓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곤경에 처한 한 소녀를 구해주게 된다. 게다가 범죄가 잦은 도시 외곽의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소녀를 집에 바래다주다가 집이 도둑맞은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소녀의 이름은 사라, 상황을 살피기 위해 사라의 사정을 파악하던 너태샤는 사라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으며 그런 할아버지마저 얼마 전에 뇌출혈로 인한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맥과 함께 도둑맞은 집을 수습하고 사라를 집으로 데리고 온 너태샤는 오갈 데가 없고, 청소년임시보호소도 마땅치 않은 사라의 사정을 고려해 맥과 의논하여 사라를 잠시 맡아 돌보기로 한다.

 

 

 

너태샤는 거의 매일 그런 애들을 보았다. 난민을 비롯해 문제아들, 쫓겨나거나 방치된 청소년, 칭찬이나 지지, 포용 같은 단어를 알 길이 없는 십 대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 일찍 철면피가 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도록 굳어져 있었다. 너태샤는 거짓말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애들, 성년이 될 무렵에 자라는 까칠하고 텁수룩한 수염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데도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라고 우기는 명명 신청자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뉘우침과 비행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구조 속에서 그 애들이 범죄에 빠지기란 어렵지 않았다. / 49p

 

 

너태샤는 지금도 여전히 부모의 이혼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역 당국과 이민국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줄 것을 강렬히 요청하고 있다. 피해가 심각한 경우에는 학대받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새로운 위탁 시설을 얻어주는 적극적인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방법을 남발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어쨌든 개선된 삶을 사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68p

 

 

 

   한편, 자신이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에게서 엄격하게 말 타는 법을 배우며 자란 사라는 할아버지가 한때 기수로 활약했던 프랑스의 카드르 누아르 국립 승마학교에 함께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이었다. 할아버지의 친구 바르쥐가 카드르 누아르에서 가장 중요하고 경험이 많은 기수인 ‘위대한 신’이 된 데다 여자 기수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언젠가 사라 역시 그곳에서 활약할 날을 기약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사라의 일상은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만다. 집은 도둑을 맞고 할아버지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나마 부를 타고 달릴 때면 사라는 이 절망적인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하는 절망감과 앞으로 갚아야 할 돈, 병든 노인의 냄새를 풍기며 무력하게 침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보는 고통을 그 순간만은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부는 사라에게 이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휩쓸리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 때문에 사라는 부가 있는 마구간과 할아버지의 병원, 학교 그리고 너태샤와 맥의 집을 오가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하고 이내 학교 수업을 종종 빼먹거나, 부의 사료 값과 임대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너태샤의 비상금에까지 손을 대기에 이른다.

 

 

 

당시는 1960년이었다. 조니 알리데를 비롯한 대중문화가 유행하고 경직된 의식을 거부하는 시대가 찾아왔지만, 소뮈르에서는 변화의 기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카드르 누아르 국립 승마학교는 23명의 프랑스 에리트 기수들로 구성되었는데, 일부는 군 출신이고 일부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이들은 해마다 고난이도 승마 공연을 펼쳤고, 바로 이 행사가 카루젤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실제로 승마 공연 티켓은 지역 주민을 포함해 프랑스 유산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팔려나가 며칠이 안 돼 매진되었다. 때로는 루아르강 전역에 나붙은, ‘중력을 거스르는 위풍당당함과 신비로움을 뽐내는 말과 기수’라는 문구가 적힌 공연 포스터에 흥미를 느껴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 10p

 

 

카우보이 존의 축사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람직한 시설이기도 하고 성가신 존재이기도 했다. 시 공무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고, 환경 위생 및 병충해 방제와 관련된 경고문을 끊임없이 발행했다. 하지만 존은 치즈 소스에 범벅이 된 채 밤새도록 이곳에 나와 있어도 설치류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반박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 역시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파트를 짓고 싶어했지만 카우보이 존은 축사를 팔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빅토리아 시대의 잘 정돈된 마구간들이 늘어서 있고 건초와 짚 더미가 쌓여 있는 그곳은 도시의 소음과 혼란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곳이기도 했다. / 38p

 

 

 

 

 

 

   사라를 공동으로 돌보면서 너태샤와 맥은 한 아이를 책임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나 너태샤는 사라와 얘기할 때 적절한 말투를 찾느라 늘 애를 먹는다. 직업상 버릇처럼 의뢰인에게 설명하는 말투를 쓰거나 추궁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질문을 건넬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 사라는 스스로 고립되어 간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사이, 부의 마구간 임대료는 계속 밀려가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마구간 주인인 몰티즈로부터 성적 수치심까지 느끼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마침내 자신의 말인 부가 다른 사람의 손에 팔릴 지경에 처하게 되자 더 이상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게 된 사라는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세상의 전부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부를 타고 멀리 달아나기로 한다. 그렇게 느닷없이 사라진 사라와 부를 쫓으면서 너태사는 그제야 자신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여러 번의 유산을 하며 거부당했다고만 생각한 그 존재에 대해 얼마나 근거 없는 장밋빛 환상을 품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사라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 해보지도 않고 그저 지나치게 엄격했던 태도를 후회한다. 과연 사라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너태샤와 맥은 와해될 수 없어 보였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너태샤는 비좁은 축사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자유롭게 주변을 돌아다니는 닭들을 바라보았다. 신기한 비밀의 장소를 보는 것 같았고 오래전에 없어진 생활 방식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염소들과 덩치 큰 말들, 말라빠진 아이들도 보였다. 높게 쌓아 올린 짚더미 뒤로 환하게 불을 밝힌 날씬한 기차 한 대가 그들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래쪽의 이런 진기한 광경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로 이곳이 사라가 자란 곳이고 사라가 살아온 세상이었다. 과연 이런 곳은 현대 사회의 어느 영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사라와 같은 아이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나갈 수 있을까? / 273p

 

 

카터 부인이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는 바람에 너태샤는 갑자기 사라에 대한 연민이 치솟았다. 너태샤는 눈앞의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지만 말의 동작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라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개한 십 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침착하게 말을 다루는 능력과 자기 일에 대한 애정, 옆에 있는 말과의 조용하고 적극적인 교감만이 돋보였다. 바로 이런 것이 위대한 열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 279p

 

 

“저도 늘 더 나은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쓰는 거예요. 말과 나의 완벽한 소통이나 교감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고삐를 잡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압력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말의 기분이나 제 몸의 상태, 땅바닥의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기술적인 문제가 전부가 아니거든요. 말과 나, 두 마음과 두 심장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해요.” / 288p

 

 

 

 

 

 

   『호스 댄서』는 할아버지와 말이 인생의 전부인 십 대 소녀 사라와 완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데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너태샤, 타인으로부터 늘 호감을 얻지만 정작 아내를 이해하는 데는 서툴렀던 맥이 함께 하면서 가족의 의미와 진정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그 속에서 빈민가의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는 현실, 아동 학대, 공동 운명체로 나아가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사회제도적 시스템, 가족이라는 이상적인 판타지를 위해 여성들에게 더욱 철저히 요구되는 희생과 같은 주제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에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이렇듯 소설은 상당히 두터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개성 있는 인물과 유려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라인,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문장, 가벼운 듯 깊이 있는 시선으로 탄탄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이쯤하면 『미비 포 유』의 조조 모예스가 아니라 이제는 『호스 댄서』의 조조 모예스로 불리어도 좋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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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 - 누구에게나 대인불안이 있다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조경자 옮김 / 상상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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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통해 풀어보는 대인불안의 원인과 해결법!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입버릇처럼 곧잘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아무거나’다. 뭐 하면 좋을까, 뭘 먹으면 좋을까, 어디를 가면 좋을까. 이런 선택의 기회 앞에서 나는 늘 ‘아무거나’ 뭘 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답하곤 한다. 때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난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말해버리기도 한다. 좋게 생각하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맞추려는 배려있는 행동일 수 있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선택과 결정을 상대방에게 미루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가까운 관계이든 처음 만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너 하고 싶은 대로’, ‘아무거나’ 같은 말로 상대의 의견에 따르는 것을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왜 우리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기며 심지어 불편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일까.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무심코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 해’, ‘이런 말을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 친구들의 반응이 내 생각과 다르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걸까?’, ‘내가 괜한 말을 했나?’하고 신경이 쓰여서 솔직한 생각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기도 한다. 대학생과 전문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매우 걱정이 된다’는 79%,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72%,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건 아닐까 불안해 한 적이 있다’는 60%, ‘상대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 걱정이 되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한 적이 있다’는 52%,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한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6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조사 결과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의식하고 때로는 불편함이나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본의 유명 심리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에노모토 히로아키 역시 대학교에서 강연과 상담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감정을 처음 만난 사람뿐 아니라 일정 관계 이상으로 친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느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대인불안’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는데, 『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는 평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이들을 위해 대인불안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이 어떤 심리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이를 완화시킬 수 방법을 살펴보려한다.

 

 

 

   그렇다면 대인불안이란 무엇일까?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의하면 대인불안이란 ‘남 앞에 나섰을 때 느끼는 불쾌감’이다. 그는 ‘처음 참석하는 자리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남이 보고 있으면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수줍음을 잘 타고, 낯을 많이 가린다’, ‘남 앞에서 말할 때는 불안해진다’,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쉽게 지치는 편이다’ 등을 대인불안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는다. 또한 심리학자 베리 슐렝커와 마크 리어리는 ‘현실 또는 상상 속의 대인적 장면에서 타인에게 평가받는 상황 혹은 평가받는 것을 예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안’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너무 강한 탓에 하고 싶은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싫은 것도 싫다고 거절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지 모른다는 불안, 이른바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불안’이 대인불안의 대표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탓인지 많은 이의 마음속에는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과 상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데 사로잡혀서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 28p

 

 

상대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다 보니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이 앞선다. 즉, 나보다 상대의 만족을 우선으로 배려한다. 하고 싶은 말이나 요구사항이 있어도 참는 까닭 역시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뻔뻔한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즉, 상대방과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한다. / 48p

 

 

 

 

 

 

   대인불안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칫 용어 때문에 심각한 병처럼 느껴지겠지만, 저자는 사실 대인불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계의 문화’를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인간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 변화를 끊임없이 살펴가면서 ‘관계’를 지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더군다나 우리는 상대를 의식하고, 관계를 고려해 상대가 상처받거나 거북하지 않도록, 상대가 불만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것보다 우선인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즉, 오랫동안 관계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미숙한 행동이라고 평가받아왔다. 또한 인간은 사춘기 무렵부터 자아에 눈을 뜨고 ‘자의식’을 갖게 되는데,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낮 동안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므로 결코 비관할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이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거절한다고 해서 그게 ‘내가 싫어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72p

 

 

사람에 따라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콤플렉스를 느낄 수도 있고,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따라서 대화 상대가 여러 명일 경우 각각의 인물의 반응을 살피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정해야 하므로 매우 신경이 쓰인다. 상대방에 따라 다른 ‘나’를 설정하게 되니 ‘나는 다중 인격일까?’,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 아닐까?’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일관성이 없는 사람, 불성실하고 요령만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상대방에 따라 다른 내가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109p

 

 

 

 

 

  저자는 내가 느끼는 관계의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고, 대인불안의 속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결코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분을 배려할 수 있다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심리학자인 치비-엘 하나니 팀은 대인불안과 공감 능력의 관계를 검토하는 조사와 실험을 실시한 결과, 대인불안이 약한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타인의 기분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고, 상대의 표정에서 내면의 기분까지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도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불안함이 크다는 말은 ‘조심스럽다’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대인 상황에서는 상대의 심리 상태에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는 심리 경향과 연결되어 오히려 상대의 기분을 배려한 적절한 대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을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라고 표현하기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외에도 대인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누구나, 특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상대도 나와 같이 대인불안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기개시’라는 심리학의 특징을 적극 활용해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개시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이 상대에게 호의와 신뢰의 표현이 되어 자기개시를 받은 쪽은 ‘나를 신뢰하는구나’라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지게 됨으로, 서로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싶다면 나부터 용기를 내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대인불안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대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 대목은 꼭 마음에 새겨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 것인가에 집중하는 대신 상대의 모습에 눈을 맞추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상대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마음을 알아주는 것,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탈피하여 상대 자체를 보려고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인불안을 완화시키는 가장 쉬운 열쇠일 것이다. 

 

 

 

   상대도 나와 같이 대인불안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해보기를 권하는 책 속의 조언들은 그간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라든지,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라는 여타의 대인관계 관련 책들의 조언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남의 눈치 보느라 정작 내 마음은 뒷전인 나를 위해 적절한 위로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살다보면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 혹은 기준이라는 게 생각보다 뛰어넘기 힘든 선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그 기준에 맞추느라 때로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한 채 삼키고, 그에 맞추느라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에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라고만 여겼던 그간의 생각을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어느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큰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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