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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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이 시대 청년의 진짜 목소리를 듣다!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절실하고도 실존적인 문제들에 가장 밀착한 책!

 

 

   밀레니얼 세대를 둘러싼 여러 담론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그 첫 호의 주제를 ‘세대’로 잡아 밀레니얼 세대의 세태를 진단하고, 각종 경제 서적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이에 따른 경제 트렌드를 전망한다. 또 한쪽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소통 문제와 대립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87년생 작가가 직접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쓴 글이 출간되어 주목해볼 만하다.

 

 

 

   그의 책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그간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청년 담론이 실제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개인주의’나 ‘나 중심’, ‘효율성’ 같은 것으로 단순화하는 데서 오는 불편한 인식 등에서 미루어 볼 때 과연 그 수많은 담론들이 진정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청년이자,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구체적이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균형감 있게 써내려가려 한다. ‘나의 시대, 나의 세대, 나의 삶’은 대한민국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가장 유의미한 청년 담론이, 진짜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세대, 젠더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

 

 

   밀레니얼 세대, 그들은 누구일까. 흔히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아울러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라 일컫는다. 이 세대는 온라인 세계가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삶의 일부로 활용하기 시작한 세대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인 세대, 이상과 현실의 극적인 분열을 겪는 ‘환각의 세대’라 정의한다. 84년생인 나 역시 태어나 지금껏 어른들로부터 줄곧 들어왔던 말은 “너희는 뭐든지 도전하면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는데 뭐가 문제냐. 하고 싶은 게 뭐냐. 꿈이 있어야 뭐든 하지.” 같은 것들이었다. 민주화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진 조건이었고,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도 늘어났으며,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문화생활이 가능해지고 해외활동 영역까지 확대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을 좇아야 할 삶, 꿈을 좇아 마땅한 삶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심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 모든 꿈들이 완전히 거짓에 불과하다는 듯이, 우리가 제대로 세상 속에 발 딛고 서서 걷기도 전에 연이어 도래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이제 삶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지각변동과 같은 불안감, 위기의식, 공포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바로 우리의 아버지, 친구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 삼촌, 이모부가 겪은 바로 그 현실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꿈에 대한 강박과 현실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분열증적인 증세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세대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환각에 시달려왔다. 저자는 그 환각의 이름을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 부른다. 우리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 이른바, 인스타그램 속의 ‘이미지’ 혹은 ‘블루보틀 현상’ 같은 것들로, 이 이미지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의 욕망’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소비’로 정체성을 드러내며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고 세상을 낫게 만드는 소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문제는 이러한 ‘환각적인’ 이미지에 제때 도달해야만 안심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이미지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아야만 박탈감을 방어할 수 있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이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이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미닝아웃meaning out’은 이러한 시대에 ‘소비’를 통해 자기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대변한다. 단순히 취향으로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신념에 맞추어 소비를 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자기 안에 숨겨둔 주장이나 취향 등을 표출하는 ‘커밍아웃coming out’의 결합어다. 최근 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신념에 따른 소비’를 드러내고 있다. / 42p

 

 

그레고리 헨더슨은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소용돌이 현상’이라는 은유를 쓴다. 이는 한국사회가 고도로 동질화되어 있고 중앙집중화되어 있으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분야들이 오직 권력의 중심을 향해 상승하고자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과거의 ‘소용돌이의 중심’이 ‘출세’나 ‘자수성가’, ‘부자 되기’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그 소용돌이의 중심은 가장 화려한 최신의 ‘이미지’들이 되었다. / 60p

 

 

 

 

 

 

   한편,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흔히 나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는 것을 ‘이중성’ 즉 ‘시소의 세계관’으로 정정함으로써, 절대적으로 의지할 단일한 신념 대신 이러한 가치관 저러한 가치관을 그때그때 시소 타듯이 무게중심을 옮기며 살아가는 유동적인 세계관을 가진 세대라 옹호한다. 그러면서도 어디에 의지해 자기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할지 모른 채 표류하는 개인들이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채 견뎌나가는 세상일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또 저출산과 비혼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우리 세대의 가치관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싶다’는 지향 자체를 벗어나고 있음을 설명하며 이를 이상의 상향평준화 혹은 가치관과 욕망의 상향평준화와 연결 짓는다.

 

 

 

   우리는 소비자로 자랐고, 세상은 우리가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중요한 것은 제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어느 때건 즉각적으로 저 ‘행복의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혼이든 육아든 그러한 이미지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거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의 ‘정점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지, 그 밖의 전통적인 관습들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이 바로 이러한데, 정부의 저출산과 비혼 관련 대책이라는 것이 물질적 지원만 하면 해결될 거라는 식의 방식은 청년들의 실제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러한 지향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이에 대한 섬세한 정책을 촉구하는 바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청년들의 노력을 ‘노오력’이라 조롱하고, 독서가 의무이고 강요이고 일에 가까워진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드러낸다. 온전한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수립하기 전부터 불안을 위협의 도구로 삼아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구도로 내몬 교육 현실의 허점도 지적한다. 또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끼는 대립의 구도를 통해 ‘세대’ 문제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고독과 박탈감, 소외의 시대에 연애는 우리를 이 세계에 안착시켜줄 통로로 상징된다.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영속하는 어떤 관계 속으로 진입하길 바란다. 나와 당신이 서로를 지켜주기를, 그러한 보호막이 이 불안한 삶을 견디게 해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연애는 우리 시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 54p

 

 

기성세대는 정의에 투신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이기적이라 매도하기 바쁘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자기들끼리의 진영적 이익에 빠져서 싸우기 바쁘다고 환멸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양쪽에서 사회 문제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그것은 자기가 믿는 사회의 정의이자 자기 정체성, 신념과 존재의 문제라면, 청년세대에게는 자기의 생존이자 사다리의 문제이고, 게임의 룰이 공정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 98p

 

 

어떤 종류의 말들이, 어떤 지상명제들이, 어떤 사회적 요구나 강령들이 대세가 되고 당연한 듯 말해질 때면, 늘 그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당연히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만하지 않은 이유, 걸러내야 할 이유도 있을 것이다. ‘포기’라는 트렌드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속에는 우리 삶을 위로해줄 만한 요소도 있겠지만, 우리 삶의 가장 주요한 부분들을 앗아갈 측면 또한 있을지 모른다. / 121p

 

 

 

   이렇듯 앞서 1장이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통해 ‘세대’ 문제와 극복 방법에 대해 모색해보았다면, 2장에서는 또 하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라 할 수 있는 젠더 문제를 살펴본다. 많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면서,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 아래 남성과 여성 모두 구조의 희생자로 바라보며 양쪽을 균형 있게 살펴보려한 저자의 시도가 인상적이다. 또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병리현상인 ‘수직적 권력 구조의 문제’를 전면으로 드러낸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 각 영역의 구조적 폐쇄성과 이에 맞설 수 있는 목소리들이 더 나와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는 부분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온갖 혐오와 비난을 엄마가 감당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실, 사회의 힘에 따라 존재들을 분류(맘충)하고, 엄마들을 가장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 언제든지 혐오하거나 비난해도 좋은 위치에 놓고서 죄인으로 취급하는 오늘을 들여다보는 대목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어쩐지 위로를 받은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쓸쓸한 마음을 가눌 수 없기도 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직적 권력구조와 싸우는 것, 이것은 이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피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그렇기에 이것을 남녀의 대립 문제로 파악하여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형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이는 그동안 공고히 구축되어온 악질적이고 폭력적이며 폐쇄적인 구조와 싸우는 일이고, 적어도 그러한 폭력의 당사자로 마음껏 권리를 누리고 있는 가해자들이 아닌 한 우리 모두의 존재와 밀접히 관련된 문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157p

 

 

결국 성별 간 갈등 문제의 핵심은 구성원을 좌절과 증오로 몰고 가는 사회 및 문화 구조 그자체 있다. 이는 정확히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해진 삶’을 지시한다. 이 불가능성, 균열되고 좌절된 삶의 문제에서 태어난 분노는 사회 모든 곳을 향하다가, 이제 양성이 서로를 증오하게끔 만들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있다.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서로를 향해 증오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낭떠러지 자체’이다. 해야 할 일 역시 그 낭떠러지에서 어떻게든 손을 잡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 185p

 

 

 

 

 

 

   끝으로 3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 주요 화두라 할 수 있는 공동체 문제를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와 편견, 분노와 증오 각종 혐오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다. 그는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당장의 선악을 구분하는 말보다는 전체의 맥락이나 거시적인 구조에 대한 생각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즉,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강물 같은 선의,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깊고 오래된 선의를 아직 믿는다.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인생을 고민하겠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선의 그 자체라는 것. 너무 뻔한 말에 불과할지라도 극복해야 할 것은 선의를 미루고 있는 현재일 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반드시 써야만 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은 저마다의 글을, 소설을 쓰고 있다. 다만 청년들은 홀로 남아 글을 쓰는 골방의 유령들처럼, 각자의 삶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하고 쓰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를, 우리를,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삶의 전제인 동시에 최후 수단이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맺어주고 이어주며 사로의 미묘한 경계를 보듬어줄 심성이다. 때로는 나의 권리를 후퇴시키며 타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하고, 때로는 나와 우리의 권리를 보다 앞세워 잘못된 권리와 싸울 필요도 있다. 그러나 각자가 각자의 권리의 성벽을 치고, 그 성벽에 누가 닿기라도 하면 신경증적으로 몰아내고 방어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심성의 관계’ 혹은 ‘심성의 사회’는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방향이 그러한 심성이 불가능한 사회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타자에 대한 공감, 타자에 대한 허용, 자신의 권리에서 한발 물러나기, 이런 것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성’을 끊임없이 강조할 필요가 있다. / 267p

 

 

그나마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위용을 발휘하던 시대도 지나 가족이란 그 힘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가족이 주는 순기능은 사라지고, 가족 내에서 온통 트라우마를 입고 쫓겨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또 다른 야생을 만들고, 가족의 해체는 흔해졌다. 그런데도 사회는 가족을 대체할 만한 방책을 거의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은 붕괴되어가는데 사회는 여전히 온갖 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긴다. 각자도생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책임의식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 314p

 

 

 

 

 

 

   84년생인 내가 바라본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최근의 여러 책 중에서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절실하고도 실존적인 문제들에 가장 밀착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를 관통하고 있는 욕망과 체념의 정서를 가감 없이, 날카롭게 드러내면서도 선의를 잃지 않고 공동체를 향한 연대를 놓지 말자고 독려하는 말에 담긴 함의가 따뜻하다. 이제 기성세대의 문턱 앞에 다다를 날이 머지않은 까닭에, 나는 내 아이가 이끌고 갈 미래 세대에 앞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미안해지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시대가 그런 걸 어쩌겠느냐고, 너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어른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우리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 아이의 시대에까지 가 닿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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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
슛뚜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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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무게를 뒤로 하고 느른하게 펼쳐진 이국의 풍경에 마음을 맡기다!

페이지 곳곳에 새겨진 여행이라는 그 특별한 감각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나는 여행자의 걸음을 따라가는 마음으로 차례를 쭉 살펴보곤 한다. 거기에는 일상의 무게를 뒤로 하고 떠난 첫 여행지의 설렘이, 늘 꿈꿔왔던 환상이, 낯선 관계로 기억되는 남다른 추억이 발자국처럼 남겨져 있다. 런던, 코펜하겐, 파리, 니스, 로마, 레이캬비크, 포르투, 에든버러, 제주…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그 낯선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감각적으로 여행을 받아들이는 법부터 배우게 된다. 이를 테면 도시와 풍경 아래로 차분히 내려앉은 노을 같은 여운을, 걸음걸음에 밟히는 낯설지만 익숙한 소리를.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 기억에, 마음에 오래 남는 것 역시 어떤 거창한 여행자의 경험이나 풍경이 아니라 그날 내 눈에 들어온 다정한 색감들, 한적한 골목길의 정취와 우연히 마주친 타인의 은근한 미소 따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 속에는 우아, 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멋은 없어도 잔잔히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내내 머물고 싶게 만드는 데가 있다. 여행이란, 꼭 무언가를 얻고 대단한 깨달음을 배우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낯선 일상을 보내는 그 순간이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그 정도의 마음만 얻어도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걷고, 쓰고, 찍고, 머물렀던 여행의 모든 순간

 

   그녀는 여행이 주는 기쁨을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독립해 혼자 살아오면서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학교 행사를 맡아 진행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이나 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그녀였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잠시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떠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달콤한 것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해방되는 것, 비록 돌아왔을 때의 현실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을지라도 잠시나마 그 모든 것을 잊고 숨 쉴 곳을 기대어 찾아보는 것, 바로 거기에 우리가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세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평소에 먹지 않았던 식사를 하고, 거리를 나서면 어제와는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매 순간 사소한 모험과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며 때로는 실수가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그렇게 낯선 일상이 반복되는 곳, 여행지. / 71p  

 

 

 

   유럽 여행을 결심하자마자 그녀는 친구와 함께 휴학계를 내고 아등바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다. 여행을 일주일 남겼을 무렵, 1년 치 월세만큼의 돈을 모았지만 과연 이 돈이 유럽에서의 한 달과 맞바꿀 가치가 있을까 출국을 앞두면서까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그러는 동안에 날짜는 다가오고야 만다.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버티나,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을까. 환상적인 풍경만 펼쳐질 것 같았던 유럽 여행의 시작은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을 뿐, 용기를 내어 숙소 앞 러셀 스퀘어의 잔디밭으로 나간 그녀는 단숨에 런던 공원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마트에 들러 와인과 맥주, 간단한 먹을거리를 들고 공원으로 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나른하게 몸을 뉘어 마음 맞는 친구와 마음 통하는 이야기하기. 참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데,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행은 내내 그렇게 흘러간다. 정류장을 잘못 내려 30분 동안이나 숲길을 걸어가야 했던 브라이튼의 세븐 시스터스, 파리 센강 가운데 위치한 작은 삼각형 모양의 시테섬에 걸터앉아 마신 와인,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들까지. ‘니스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지만 그 기억은 모두 니스로 남았다’는 글처럼, 모두 거창할 것 하나 없지만 오롯이 그 자체로 아름다웠던 여행이 되었다.

 

 

닷새 정도를 조셉의 집에서 머물며 숱하게 로마 시내를 왔다갔다 했지만, 그 험난한 시골길은 끝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여행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숙소가 그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면 로마의 시골길을 낡은 버스로 달릴 일도 없었을 테고, 친절하고 유쾌한 조셉을 만날 일도 없었을 테고, 그가 해주는 파스타를 먹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 77p

 

 

일순간 그들이 사는 그림 액자 속에 갑자기 빨려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좀 전에 일진이 사납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광경.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돌아 서서 다시 걷는 나는 어느새 싱글벙글이었다. 이때부터 여행 하다 길을 잃는 것에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버스 번호라던가,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지, 어느 교통편이 가장 빠른지 등은 뒷전이 되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 버스에 몸을 싣기도 하고, 시선을 끄는 풍경이 있다면 내려서 다시 걷는다. / 85p

 

 

 

 

 

 

   그렇다고 낯선 여행에서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날 리 없고, 또 아찔한 추억 하나 없을 리 없다. 첫 여행 후, 1년이 지나 다시 찾아간 세븐 시스터스로 가는 버스에서 두 정거장이나 일찍 내렸다가 무려 3시간 동안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던 웃지 못 할 추억과 스페인 시체스에서 귀중품이 든 가방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가 가까스로 찾은 사연 같은 것 말이다.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는 잠시 숙소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다가 숙소 안에서 자동으로 문이 잠겨 하마터면 동사 할 뻔한 기가 막힌 에피소드도 있다. 반면, 1년 전 가고시마의 한 가게에서 만난 사람과 또 한 번 그곳에서 만난 특별한 우연과 한국에서 미리 예매한 줄 알았던 기차표가 사실은 버스표여서 망연자실해 있을 때, 친절한 역무원이 도와줘 그것도 공짜로 일등석 기차표를 얻게 된 사연에서는 ‘여행의 완성이야말로 곧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마음이 맞는 이야기들의 끝에,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으러 브라이턴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아까 그 풍경들을 반대로 마주하며 가는 길. 세븐 시스터스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려는 나에게 그 사람이 말했다.

“급하게 안 보내줘도 되니까 지금은 밖을 봐요.” / 98p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를 읽다보면 무엇보다 ‘어디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Best 10’, ‘어느 지역 맛집 리스트’ 같은 것들은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던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남들은 모두 궁전이며 박물관, 유적 등을 보러 간다고 할지라도 내가 별로 내키지 않으면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나라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제대로 된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여행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핫 스폿이라고 추천하는 장소에서 사진만 찍고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하느라 바빴던 그간의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남겼던 것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여행을 떠나면 나는 여유를 배운다. 눈 마주치면 웃어주고, 다음 사람을 위해 기꺼이 문을 잡고 기다려주며, 바쁜 발걸음으로 걷다가도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보면 멈춰서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는 것도 조금 쉬게 된다. 24시가나 어디로든 배달되는 음식이 없으니 장을 봐서 직접 음식을 하고, 신선하고 값싼 과일과 유제품도 잔뜩 먹는다. 사람도, 환경도 여유로우니 그 안에 속해 있는 나도 여유를 가지게 된다. / 314p

 

 

 

 

 

 

   책의 말미에 이르면 QR코드와 함께 트래블로그가 수록되어 있다. 현재 프리랜서이자 크리에이터로, 구독자 45만의 일상 브이로그 채널 ‘슛뚜(sueddu)'를 운영 중인 저자의 여행 브이로그 영상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영상 속에는 먹고, 걷고, 마주한 여행의 순간들이 일상처럼 연속된다. 사진으로는 미처 전해지지 않았던 혹은 글에서 다 마주할 수 없었던 그녀 특유의 감성이 영상 속에 녹아들어있다.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이 일상 같은 여행이 온 마음으로 충족되는 이유를 영상 속에서 한 번 더 확인해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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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 - 청소년에서 성인 독자까지 고전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완벽한 지침서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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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인 독서 훈련법에서부터 고전 필독서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꾸준히 고전을 읽어 나갈 수 있게 하는 최고의 독서 길잡이!

 

  어느 뇌과학 독서법에 관한 책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유전적으로 독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 글자를 익히고 노력과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만이 독서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고난 독서 능력이란 없으며 이는 얼마든지 훈련을 통해서 독서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독서의 즐거움』의 저자 수잔 와이즈 바우어 역시 사실 ‘독서는 훈련이다’고 강조한다. 특히 고전 독서는 다른 어떤 학습보다 스스로의 훈련과 숙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전이라 하면 ‘정신은 굶주려 있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고 자신이 읽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책들 때문에 잔뜩 겁을 먹은 채’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혼자서 양서 목록 전체를 읽어 나갈 수 없으며 이런 일에 파고들 수 없다고 해서 부적합한 정신을 지닌 것도 아니라고 독려한다. 우리는 그저 준비가 안 되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고전 독서는 훈련으로부터 비롯된다

 

 

   『독서의 즐거움』은 국내에서는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시리즈로 알려진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독서법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체계적인 고전 독서 교육법에 따라 독자들이 고전을 읽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해봄으로써 다양한 방법으로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과학 여섯 분야로 분류하여 각각의 역사적 계보와 특징에 따른 독서법 그리고 우리 시대에 꼭 읽어야 할 고전의 목록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는 본문은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그간 여러 독서법 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이렇게 이해(문법)와 평가(논리), 의견 표현(수사) 단계에 따라 한 번에 하나의 탐구 분야(소설, 자서전, 역사…)에 깊이 몰두하게 함으로써 기초에서 심층단계까지 균형 있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독서법 책은 없었던 듯하다.

 

 

 

수많은 초등학교 교재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뭔가를 제대로 배우는 기회를 가지기 훨씬 이전부터 여섯 살배기 아이들에게 내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끈질기게 물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질러가는 사고가 습관이 되어 학습 중인 주제를 이해하기도 전에 의견부터 내세울 태세인 사람들도 허다하다. 성숙한 정신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수사 단계로 곧장 건너뛰는 버릇을 갖게 되면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결론을 이끌어 낼 태세로 플라톤이나 셰익스피어, 토머스 하디에게 다가간 정신의 소유자는 그들의 밀도 높은 관념에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독서 과정에 성공적으로 돌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새로운 관념을 이해하고 난 다음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자신만의 의견을 정립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24p

 

 

 

   일단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고전을 혼자 공부할 때 꼭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독서 기술부터 알아두자. 저자가 손꼽는 독서의 첫 단계는 바로 ‘스스로 꾸준히 독서에 전념할 30분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저녁보다는 아침이 좋고, 일어나는 대로 30분 독서를 시작으로 하여 짧은 시간 동안 집중과 생각에 충실하게 매달리는 습관들이기를 추천한다. 또 한 주 내내 독서하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말아야 할 것이며 독서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고전 독서는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취를 얻는 일이 아님으로 꾸준히 독서 시간을 지키고, 달력이나 하루 일과표 위에 지금 당장 30분의 독서 스케줄을 표시할 것을 권한다. 독서의 두 번째 단계는 ‘속독 연습과 어휘 공부’다. 여기에서는 독서 시간의 매일 첫 15분은 음철법 보충 기술이나 단어를 익히는 등 독서 속도를 향상시키는 방법과 풍부한 어휘력 향상을 위한 조언을 해두었다.

 

 

 

독서 일기는 외적인 정보를 취하고 기록하며, 비망록과 마찬가지로 인용하고, 이윽고 성찰과 개인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 일기를 쓸 때는 세 단계의 과정을 따라야 한다. 마음에 와 닿는 특정 어구와 문장, 문단들을 적는다. 그리고 독서를 마쳤을 때 다시 돌아가서 무엇을 얻었는지 간략하게 요약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반발 지점과 질문, 생각을 적는다. / 54p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는 ‘독서 노트에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연습’을 통해 ‘책을 요약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다. 독서 일기용으로 노트 한권을 마련하고 일주일에 네 차례 독서 계획을 세운 후 꾸준히 지키고, 주요 내용이나 의문점들을 메모함으로써 간략한 요약문을 작성하는 방법이다. 확실히 여러 해 동안 책을 읽고 꼭 감상을 써왔던 나로서는 책을 요약하다보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더 깊이 있게 분석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 일기는 가장 훌륭한 독서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네 단계로 요약되는 독서 기술을 비롯해 각 분야에서 소개하는 ‘이해, 분석, 평가’의 3단계를 걸쳐 꾸준히 고전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렵게 느껴졌던 고전도 쭉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일단 잠정적으로나마 등장인물의 욕구와 충족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된 것이다.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되는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등장인물이 따르고 있는 전략을 무엇인가? 난점을 극복하려고 권력이나 부를 이용하면서 반대에 저항하여 자신의 방식을 강행하는가? 조종하거나 설계하거나 계획하는가? 지적인 능력을 활용하는가? 이를 악물로 묵묵히 나아가는가? 압박에 저항하지 못한 채 말라죽는가? 이 전략이 소설의 플롯을 만들어 낸다. / 소설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117p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서전이 꽃을 피우는 데 한몫했다. 대개 하나의 관점이 다른 관점보다 더 ‘가치 있다’고 꼬리표를 다는 것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교외의 자동차 수리공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기 인생을 이야기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각각의 개인적인 관점이 가치 있다고 칭찬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이에게 진리가 되는 ‘규범적인’ 관점에 대한 집착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도록 도움을 주었다. 독자는 과거 사건에 대한 진리를 찾기 위해 자서전을 읽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다른 사람의 피부 안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 자서전을 읽는다. / 자서전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207p

 

 

 

 

 

  확실히 『독서의 즐거움』은 독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떠나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과학 여섯 분야의 역사적 계보를 살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이를 테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이 19세기 대니얼 디포와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의 손을 거쳐 등장하게 된 것에서 출발하여, 고딕 소설의 형식을 거쳐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역사서의 경우, 고대사에서 중세사과 르네상스사를 거쳐 계몽주의적 접근 혹은 합리주의적 접근에 따라 실증주의와 회의주의를 거쳐 마침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내용에서는, 그간 막연하게 정리되지 않았던 사상에 대한 정의가 뚜렷이 정립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역사가의 전반적인 임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을 가지고 꾸밈없는 윤곽을 구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증거 자체에 대한 사색만이 아니라 대개 다른 역사가들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역사가는 ‘참신한 정신’을 지니고 자료나 공예품 더미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가의 정신은 왜 로마가 몰락했는지 혹은 어떻게 미국 흑인 노예들이 활기 넘치는 고유문화를 계발시켰는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론으로 가득 차 있다. 증거를 검토할 때 역사가는 이미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이론들이 이것을 설명해 주는가? 아니면 내가 더 나은 해석을 떠올릴 수 있는가? / 역사서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278p

 

 

‘1단계 탐구’ 독서로 들어가기 전에, 한 작품을 읽으며 중간에 쉬거나 앞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서 한달음에 통독할 시간을 비워 두기 바란다. 결국 하나의 극은 한 날 저녁에 연기하도록 구성되고 연기는 시간에 맞추어 진행되며 연출은 언제나 앞으로 전진할 뿐 뒤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소설과 자서전, 역사책은 숙고할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읽고, 자유롭게 앞으로 돌아가서 글쓴이의 결론과 전제를 비교하도록 의도된 읽을거리다. 하지만 극작가는 관객이 보는 것에 사치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첫 번째 독서에서 이런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 희곡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432p

 

 

2) 서사가 없는 시라면 시의 착상과 분위기, 읽을 때의 경험만 적어도 좋다. 시가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가? 정서를 표현하는가? 아니면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가? 글쓰기 과정을 그 시의 내용을 곱씹는 방법으로 삼는다. 이때 메모를 완벽한 문장으로 작성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는다. 시가 독자의 지성만으로 이해할 수 있게 언제나 완벽하고 균형 잡힌 생각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호소력 있는 어휘를 서로 근접시켜 놓아서 반응을 불러일으키거나 공포감이나 흥분, 예감이나 평화로운 차분함 등의 감각을 쌓아 나갈 수도 있다. 어떤 단어든 구절이든 그 시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포착한 말을 적어 둔다. / 시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563p

 

 

 

 

 

 

   이렇듯 『독서의 즐거움』은 매우 체계적이고 밀도 있는 독서 기술을 제안하여 고전 교육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다방면의 장서를 넓고 깊게 읽는 다독가이자 자신의 지식을 쉽고 직설적인 문체로 풀어쓴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서양 과학 이야기』, 『세계 역사 이야기』 시리즈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저술가답게 균형감 있는 지식과 네 자녀를 홈스쿨링으로 키운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풍부하고 입체적인 독서 지식을 제공한다. 무려 800페이지에 달하는 장서인만큼, 한 번에 다 통달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느리더라도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따로 발췌해서 읽어보는 것도 이 책을 즐겁게 읽는 방법이 될 듯하다. 독서를 취미로 삼거나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으로 하여금 좀 더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체득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여러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소장 가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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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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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그 커다란 의미에 대하여!

눈물주의! 읽는 내내 먹먹해져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나는 미리 연명치료거부를 신청하고 왔어.”

   명절 날, 한창 전을 부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넌지시 말씀하셨다. ‘연명치료거부’란 회복하기 불가능하거나 장기간의 치료가 불가피해보이는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것인데, 어머니는 자신의 ‘질병’ 혹은 ‘죽음’이 남은 가족을 힘들게 할까 염려되어 스스로 사전의향서를 작성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지속될 삶보다 마감될 삶을 더 가까이 느끼고 있을 어머니와 나의 부모님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아픈 적이라고는 없었던 아빠가 벌써 한 달 째 폐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두 번의 암 투병 생활에 워낙 체력이 약한 엄마가 돌보느라 기력이 쇠약해지셨다. 오늘 아침 통화에서도 거칠게 갈라진 엄마의 목소리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늘 모호하기만 했던 죽음이 조금씩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자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병환이 깊어지고, 기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오래 살아서 뭐하겠어” 하는 한탄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멀게만 느껴졌던 혹은 당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죽음이란 것이 엄마와 아빠에게 찾아올 순간을 나도 모르게 자주 상상하게 되니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부모님의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상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것도 부모의 부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유골이라도 먹고 싶었다던 작가의 고백이, 차라리 당신의 흔적을 내 몸에 어떤 방식으로든 새겨서 지워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그 절박하고 슬픈 마음이 더욱 저릿하게 파고든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토록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사랑을 나도 누군가를 향해 품는 것이 가능했구나’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존재가 바로 ‘엄마’라는 것을, 우리 모두 모르지는 않을 테니까.

 

 

 

 

 

 

죽음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살게 하는 힘에 대하여 

 

 

   다소 충격적일 정도로 독특한 제목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엄마의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만화다. 책에는 엄마의 위암 말기 선고와 함께 찾아온 투병 생활 그리고 임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함께 했던 따뜻한 시간을 추억하고 때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면서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찬찬히 그려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죽음이 예고되었다한들 이별은 믿고 싶지 않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되어 찾아온다. ‘엄마… 내가 이렇게 슬프고 외롭다는 거… 엄마한테도 전해지고 있어?’ 가슴 저편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과 함께 끝없이 눈물이 쏟아지지만 이런 심정이 더 이상 엄마한테 전달되지 않으리라는 현실은 비통하기만 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화장터에서 재가 되어버린 엄마의 유골을 보고, 행여 함부로 버려질까 남은 조각이라도 갖고 싶다고 아니 먹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엄마를 내 몸의 일부로라도 만들고 싶은 그 간절함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유골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의 가장 강렬한 감정이었다고 느꼈고, 제목으로는 이 이상의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토록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사랑을 나도 누군가를 향해 품는 것이 가능했구나’라는, 그런 용기도 생겨나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175p

 

 

 

 

 

 

   그렇게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낸 뒤, 사라지지 않는 쓸쓸함과 외로움 속에서 사소하지만 너무나 그리운 엄마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카레, 엄마의 회복을 기원하며 100일 기도를 드렸던 쪽지 그리고 그 쪽지를 고이고이 간직해두었던 엄마의 지갑, 엄마가 곱게 가꾸었던 작은 마당, 엄마의 손때가 묻어나있는 집안 곳곳까지. 하지만 집안에 엄마가 사라진 순간부터 아버지도, 집도 볼 때마다 시들어가고 약해져가는 듯했다던 대목에서는 어쩐지 평생의 반려자를 떠나보낸 아버지의 상심과 외로움까지 어루만져져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엄마는 곁을 떠났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작가는 엄마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애정과 엄마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고향을 떠나 도쿄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꿈꾸었던 만화가가 되고, 오랫동안 곁에서 함께 해준 아내와 아이를 낳을 결심까지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간다. 그러는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또 새로운 생명으로 연속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우리를 숙고하게 만든다.

 

 

 

네가 몹시 슬픈 이유는 틀림없이 아직 네 안에 ‘죽음’와 ‘외로움’이 뒤섞여 있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1년쯤 지나면 ‘죽음’을 외로움과 떨어뜨려 놓고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 외로움도 조금씩 치유되어 갈 거야. ‘기간이 약’이지. 나는 네가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할수록 ‘죽음’에는 의미가 더해져 간다. 나도 요새 어쩐지 죽음에는 에너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155p

 

 

 

 

 

 

   며칠 전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편지 한 장을 써왔다. ‘가장 좋아하는 엄마. 나는 엄마랑 시장갈 때 기분이 좋아요. 사랑해요’ 라고. 엄마와 함께 걷던 거리, 그 거리에서 마주하곤 하는 익숙한 사람들, 달콤한 사탕, 찬바람이 불 때 서로 꼭 쥐던 두 손을, 우리 아이도 추억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 편지에서처럼 그 기억이 원동력이 되어 삶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 속의 ‘엄마’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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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 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 구본진 박사가 들려주는 글씨와 운명
구본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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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가 들려주는 글씨체에 관한 모든 것!

필체를 성공과 직결시켜 내 삶의 무기로 삼는 법을 일러주는 흥미로운 책!

 

 

 

   누군가의 글씨를 보고 나도 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적이 있다. 바로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의 글씨를 보고난 뒤부터였다. 그녀는 필통이 꽤나 묵직할 정도로 알록달록한 볼펜을 종류별로 가지고 다니는 친구였는데, 수업이 끝나면 꼭 노트에 그날 배운 것을 예쁘게 정리해서 필기를 해두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나는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된 그녀의 노트를 볼 때마다 감탄을 했고, 친구에게 이런 글씨체를 가지고 싶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따라 써보기까지 했다. 이미 절반이나 쓴 노트를 아예 새로운 노트에 다시 정리해 쓰는 수고로움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때 그 친구의 글씨체를 따라 연습하면서 굳어진 게 지금의 글씨체가 되었다.

 

 

 

   한 때는 세 번째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손글씨 쓰기를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글씨를 쓴다는 게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워낙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해져서 손으로 긴 문장을 공들여서 써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글씨체에 관한 책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다소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다. 글씨체가 인생을 바꿀 만큼 대단한 것이었던가, 의아하다가도 내가 아이에게 거듭 강조하던 게 바른 자세로 바른 글씨를 쓰는 것의 중요성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틀린 말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글씨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의 저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필적학자다. 21년간 검사로 근무하면서 살인범, 조직폭력배의 글씨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필적학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필체와 사람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글씨는 손이나 팔이 아닌 뇌로 쓰는 것으로, ‘뇌의 흔적’이 담겨 있기 때문에 글씨체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특히 필체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을뿐더러, 글씨체를 바꾸면 성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사실 글씨와 사람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그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서예의 종주국인 중국은 전통적으로 ‘글씨가 곧 사람’이라 글씨에서 그 사람의 성품과 학식을 짐작할 수 있다고 믿었고, 공자는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이 귀한 사람인지 천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는 “글씨를 쓰기 전에 제일 먼저 뜻을 바르게 세우라.”고 말해서 글씨에 고결한 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퇴계 이황 역시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고 했고, 셰익스피어는 “내게 손글씨를 보여주면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해주겠다” 하기도 했다. 이에 서양에서는 수천 년에 걸쳐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글씨를 크기, 모양, 간격, 기울기 등으로 분석하는 필적학을 발달시켰다. 이는 글씨를 쓸 때 뇌에서 손과 팔 근육에 메시지를 전달해서 선, 굴곡, 점 등을 만들기 때문에 필적이 내적 세계를 반영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필적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필적학에서는 글자 크기, 형태, 압력, 속도, 기울기, 정돈성, 전체적인 인상, 자연스러움, 조화, 리듬 등을 살핀다. 자음과 모음의 세부적인 형태, 글자의 시작 부분 및 끝부분의 형태, 필순, 자획을 이어 쓰는 방법, 운필 방향, 획 사이의 공간, 자획의 굴곡 상태와 꺾인 각도 등 세부적인 운필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한다. / 21p

 

 

 

   다시 말해 필적은 ‘뇌의 흔적’이자 ‘몸짓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근원을 알게 되면, 행동 습관인 필체를 바꾸어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의식적으로 글씨체를 바꾸면 성격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면 행동 패턴이 변하며, 행동 패턴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 따라 저자는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통해 다양한 글씨의 유형에 따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분석하고, 어떻게 꾸준히 쓰고 연습하면 성격과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또 김구, 안중근, 한용운, 역대 대통령, 백남준, 김연아와 같은 유명인의 필체를 수록하여 그들이 어떤 성향을 지녔으며 그것을 어떻게 삶의 무기로 삼았는지를 살펴본다.

 

 

 

필체를 바꾸는 2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 방법은 자신이 모델로 삼는 사람의 필체를 흉내 내는 방법이다. (…) 글씨를 바꾸는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목표 달성, 또는 과제 해결에 부합하는 필적 특징을 부분적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현재의 자신에게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인내심을 기르고 싶다.’,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싶다.’, ‘일을 똑 부러지게 하고 싶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와 같은 목표를 세운다. 그 다음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필적 특징을 따라 쓰는 것이다. / 31p

 

 

필적학자들은 둥근 글씨는 친화적이고 사회성이 있으며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을 의미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또 여성스럽고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으며 적응력이 있고 즐거움과 그것을 위한 돈을 버는 데 애착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각진 글씨는 용기가 있고 열심히 일하며 적극적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이며 신뢰할 수 있으나 무례하고 거칠며 이기적이고 저항적이고 융통성이 없다고 말한다.

모서리에 각이 선명한 모난 글씨는 사회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쓴다. 의지가 굳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비판적이며 유머가 부족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정직하고 고집이 있으며 원칙을 중시한다. 조직 관념이 강하고 품행이 단정하다. 모험을 좋아하지 않고 정의감과 책임감이 있다. 규칙적이고 꼼꼼하며 진지하고 고지식하다. / 51p

 

 

필압이 세다는 것은 정신적 힘이 강하고 의지가 굳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력이 있고 결연함, 열정, 주도권, 용기, 자기주장이 강함, 물질주의, 공격성, 호전적, 저항적, 감각적, 심미적임을 의미한다. 안중근, 박정희 전 대통령, 조선 후기의 송시열, 야구선수 최동원, 선동열과 같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나타나고 유영철과 같은 살인범에게서도 나타난다. 일상 행동 역시 파워풀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과 불화가 있을 수 있다. / 55p

 

 

 

 

 

 

  나의 글씨체는 둥근 글씨체인가, 각진 글씨체인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글씨체인가 내려가는 글씨체인가. 획 사이가 여유 있는 글씨체인가 획이 가까이 붙어 있는 글씨체인가. 혹은 글을 쓰는 속도가 빠른가, 느린가. 책을 읽다보면 내가 쓰는 글씨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봄으로써 나의 성향이나 성격이 이런저런 장단점을 지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이를 어떻게 고쳐 써야 할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무엇보다 공부 잘하는 글씨, 합격하는 글씨, 존경받는 글씨, 큰 부자 되는 글씨 등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상에 따라 꾸준히 연습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봄으로써, 이를 자기긍정이자 특별한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삼아볼 만하다.

 

 

 

훌륭한 글씨체로 정약용의 글씨를 소개하고 싶다. 그의 글씨는 보기에도 멋스럽지만 필적학으로 접근해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는 군자나 대인과 같은 이상적인 인간의 수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형태가 네모반듯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보통 보수적이고 이성적이며 곧다. 하지만 글자의 간격이 충분히 넓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용기도 갖추고 있었다. / 174p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씨를 두고 악필이라 평가하는데, 저자는 일반적으로 예쁘고 단정한 글씨를 잘 쓴 글씨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글씨가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쁜 글씨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잘 쓴 글씨와 못 쓴 글씨는 스스로 추구하는 인간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필적학적으로 악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는 당장에 바른 글씨 쓰기 책을 사서 무조건 따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그에 맞는 글씨체를 지향하는 것에 목표를 두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이 책을 나를 이해하고, 내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해볼 수 있는 좋은 가이드로 삼아보기를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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