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마음공부 : 부모 편 -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 생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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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자엄마이자여성인 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사랑과 더 나은 세상을 주고자 하는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

 

 

 

 

  그 날은 내가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었다아무리 떠올리고 떠올려 봐도 그 날 내가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다만엄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고평소 떼 한 번 쓰지 않던 아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서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그날 저녁나는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을 밥상머리 앞에서 꺼내놓았나 보다당시가 초등 1학년이었으니 아마도 큰 사달이 날 것이란 예상 따윈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아빠는 대노하셨고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나 때문에엄마가 아빠에게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들어야 했다그것은 곧 내 안에 일종의 부채감으로 자리잡았다그렇게 학교를 결석한다는 건 우리 집이 반으로 쪼개지는 위험천만하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후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고 착실히 등교했다학교에서만이 아니었다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아니 그 날 아빠의 얼굴에서 보았던 냉정한 시선과 으르렁댔던 목소리가 내내 나를 따라다니면서 엄격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 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어린이집을 등원하다 또 하지 않기를 반복하던 아이가 어느 날등원복을 보더니 까무러치기 시작했다나는 애원과 윽박을 번갈아가며 아이의 옷을 입혔고겨우 옷을 입혔을 즈음 아이는 신고 있던 양말을 거의 잡아 뜯다시피 벗어던졌다이미 나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나는 이를 꽉 깨문 채 기어코 어린이집 버스에 아이를 실어 보냈다그렇게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니 발목이 잔뜩 늘어난 아이의 양말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양말을 주섬주섬 챙기다보니 눈물이 치솟았다너덜너덜한 양말이 꼭 내 마음 같아서였다가만 생각해보면 아이를 그렇게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는데… 무조건 보내야할 의무도 없었는데 왜 나는 아이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단념하지 못했을까어쩌면 그건 지난 날그 사달이 있어났던 그 날의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었을까엄마인 내가 과거와 화해하지 못한 이유로 오늘의 내 아이가 상처를 입었으니 참 미안한 일이었다.

 

 

 

내 세계의 통행증은 내가 관리한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두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느라 정작 나 자신은 돌볼 줄 몰라 깊은 우울감에 빠졌을 때였다그때 읽게 된 책 하나가 나를 건져 올려주었는데 그게 오소희 작가의 엄마는 20이었다오소희 작가는 세상의 엄마들에게 당신을 든든히 지켜줄 당신의 세계를 가꾸기를 독려하며 엄마라는 자리는 끝이 아닌시작임을 일깨워주었다덕분에 이 책은 줄곧 내가 손에 꼽는 에세이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주변의 많은 엄마들에게 자녀교육서보다 더 많이 권하는 책이 되었다그로부터 몇 해가 흘러 최근오소희 작가의 신작 언니들의 마음공부(부모 편)이 출간되었다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사랑과 더 나은 세상을 주고자 하는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그들의 진정한 자아찾기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기꺼이 대면하고함께 치유하고용감하게 나아간 이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여성들의 아픔까지 함께 보듬으며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모든 글에는 치유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신뢰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방식으로 나누기만 한다면. / 16p

 

 

 

  2019여성들의 활동 플랫폼 언니공동체를 개설한 오소희 작가는 <‘를 찾는 글쓰기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른 배경에서 성장했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약 90퍼센트가 부모라고 답했단다뜻밖이지만한 사람의 성장과 인생에 있어 부모 혹은 가족만큼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결과다.

 

 

 

부모가 아들과 딸을 차별하고 키운 경우

맏이에게 어릴 때부터 어른 역할을 지운 경우

부모의 꿈을 아이가 대리 성취해주길 바란 경우

아이가 보는 데서 부모가 수시로 싸운 경우

아빠가 엄마와 아이를 때리고 강압한 경우

엄마가 아이에게 신세한탄을 하고 때린 경우

 

 

 

  작가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밤낮으로 일해 자식들에게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주셨지만정작 포옹과 응원위로와 지지의 말 같은 것들 혹은 그저 곁에 가만히 앉아 잠시 체온을 나눠주는 공감의 순간 같은 것들이 부모의 역할에 포함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한다결국 그 자식들은 위장의’ 허기는 채웠을지 몰라도 정서적’ 허기를 지니게 되었으니이제라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부모 자식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이에 각 사례마다 참가자가 직접 쓴 자전적 글작가와 참가자가 <치유의 3단계 매뉴얼>로 삶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그것이 다시 참가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확인하는 마무리 글을 통해 상처에서 긍정을 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과 대화를 할 줄 몰랐어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이 다섯 살 어린아이라 해도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해등에 짊어진 의무이거나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잘 지내보고 싶고 그러기 위해 더 알고 싶고더 알아내기 위해 꾸준히 눈을 맞추며 소통의 노력을 하는 독립적인 인격체하지만 그 당시 시절의 부모에게 자식이란 의무나 소유물에 가까웠지.

지금도 어엿이 성인이 된 자식에게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부모님들, ‘중요한 결정은 내가 내려줘야 한다며 개입하는 부모님들이 많은 건 여전히 자식에 대한 정의가 거기 머물러 있어서야. / 32p

 

 

정서적 소녀가장이 한 일은 아무도 눈치를 못 채그 오랜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노동을 혼자 하면서 낑낑댔어무심하고 둔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민감한 주파수로 불행을 시시각각 감지한다는 것몹시 피곤한 일이야어린 깜냥으로 대책을 강구했다는 것무력한 일이야그 수고로움에 아무도 중요한 일을 한다라거나 고맙다거나 애썼다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엄청난 좌절이지. / 190p

 

 

 



 

 

 

  <치유의 3단계 매뉴얼>은 대면과 이해의 과정인 1단계위로와 긍정의 과정인 2단계마지막 3단계인 퉁치기와 경계설정의 과정으로 나뉜다여기서 대면 단계즉 치유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작가는 이를 지구 위에서 보기라고 말하는데우주인이 지구를 내려다보듯 멀찍이서 상처를 받았던 당시를 내려다보는 방법이다새롭게 확보된 너른 시야로 자신이 상처를 받았던 시절의 사회적 특징을그것이 가족에게 준 영향을그 영향 안에서 각 개인들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했는가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이러한 과정 속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를 위로하고 고통에도 긍정의 지점의 있었음을 알아봐줄 수 있게 된다.

 

 

 

실패한 건 실패한 거야.

부모 자식 관계라 해도,

애착관계조차 맺지 못한 관계,

혹은 엉성하게 맺다가 만 관계,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있는 거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치유의 과정이야. / 61p

 

 

이 작업은,

하나엄마와 너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당시에 살아남기 위해 맺었던지금은 필요 없어진 비상시 팀워크를 해체하고,

팀워크를 유지하느라 네가 억눌렀던 맞는 감정과 감각을 뒤늦게라도 불러와 너의 내면아이를 충분히 위로하며,

감정과 감각을 억누른 대가로 얻어낸 생의 자원들로써 억울함을 퉁쳐 보내고,

다섯지금부터는 맞는 감정과 감각을 지니며 살 수 있도록 자원을 여유롭게 활용하는 동시에,

여섯엄마와 새롭게 경계설정을 하는 거야이로써 엄마와 더 바람직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부모님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해야 한다는 조선시대 억압은 변기에 쏟고 물 내려.

부모와의 관계에서 뒤죽박죽된 부분을 정리하지 않고 대충 뭉개서 사랑으로 미화하고 살면 그 잘못된 방식이 다른 소중한 관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돼연인에게배우자에게특히 자식에게 되물림되지. / 114p

 

 

 

  오소희 작가는 말한다어릴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감정과 감각의 이름들을 익히고 시시각각 그것을 알아봐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문제없는 척그런 척들로 나의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려할 때 파묻어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의 감정을 바라봐주라고어린 시절 적정한 말과 스킨십으로 마음 챙김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지금이라도 특정한 상황에 맞는 감정과 감각은 무엇인지그에 알맞은 대처(표현)법은 무엇인지 학습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가 당황한 거구나.’ ‘지금 난 혼란스러운 거야.’ ‘이 감정은 우울이야.’ 2외국어를 익히듯 적절한 감정과 감각의 이름들을 익히다보면비록 더듬거릴지라도 매일 꾸준히 사용하다보면 내 아이에게는 그것이 모국어가 된다고.

 

 

 

  “엄마는 사랑스러워사랑해.” 감정 표현에 서투른 엄마인지라 사랑한다는 말에 여전히 낯설어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서슴없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온다덕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줄 수 있게 된다. “엄마속상해미안해.” 아이가 뭔가를 엎지르거나 실수를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고 있으면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나의 감정을 읽어준다덕분에 나는 속상해하지만 괜찮아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하고 내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된다비록 나는 아이들을 통해 상황에 맞는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만오소희 작가의 말처럼 더듬거릴지라도 매일 사용하다보면 나의 언어가 되고 가족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각각의 사연들은 조금은 사정이 다를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가 겪었던 상처들 중에 하나였다읽는 내내 몇 번이나 마음이 뭉클했고나의 기억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서 울컥했다이 책으로 하여금 많은 여성들이엄마들이딸들이 를 제대로 바라봐주는 법을 배우고 보다 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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